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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스토리]'6억 초과' 주택에 남겨진 선택지

  • 2017.12.29(금) 15:50

"팔든가, 아니면 임대 사업자로 등록하든가"

 

부동산 시장에서 '올해의 말' 한마디를 꼽으라면 전 이겁니다. 문재인 정부 첫 주택당국 수장을 맡은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취임 직후부터 수 차례 한 말인데요.

 

시장 안정을 목표로 한 정부의 '다주택자와의 전쟁' 모토라 할 수 있습니다. 애초엔 "직접 살지 않는 집은 팔라"는 메시지를 던졌다가 민간임대 확보를 위해 살짝 톤을 낮춰 임대 등록이라는 '퇴로'를 추가한 게 이 말이죠.

 

 

정부가 지난 13일 내놓은 '임대주택 등록 활성화 방안'이 이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임대주택으로 등록하는 다주택자 소유 주택에 각종 세금과 건강보험료를 미등록보다 '4분의 1' 수준으로 줄여준다는 게 내용이었습니다.

 

제도권내 임대주택 등록을 유도해 주택 임대차 시장의 안정을 도모한다는 목표입니다. <관련기사 ☞ [임대등록 인센티브]세금·건보료 '4분의 1'로 줄여준다>

 

그런데 임대주택으로 등록해도 인센티브를 받지 못하는 집이 있습니다. 공시가격 6억원 초과 주택 입니다. 임대로 등록하는 집이 국민주택 기준 규모인 전용면적 85㎡ 이하여도 이 가격 제한에 걸리면 양도소득세, 종합부동산세, 임대소득세 등 주요 세금 감면을 받지 못합니다.

 

애초 정부는 인센티브를 주는 등록 임대주택 가격 범위를 넓힐까 검토도 했습니다. 하지만 막판에 이를 접었습니다. 국토부 관계자가 밝힌 표면적 이유는 "주택임대차 시장 안정에 실익이 없어서"라고 합니다. 그렇게 비싼 집은 정부가 세금이나 건보료를 깎아줄 때 생기는 '재정적 손실'이 임대주택으로 잡아둬서 생기는 '공공의 효익'보다 크다는 겁니다.

 

공시가격 6억원 초과 주택이면 실제 시세는 8억~12억원 수준(공시가격 실거래가 반영률은 공동주택 70%, 단독주택 60% 안팎)이고, 이런 집 전세가격은 6억~8억원이 됩니다. 이런 높은 가격대 전세 시장까지 주거안정이라는 울타리 안에 넣기는 무리라는 게 국토부 얘깁니다.

 

예를 들어 보죠. 서울 송파구 잠실동 리센츠 전용 59.99㎡ 아파트의 경우 올해 공시가격이 6억4800만원이어서 임대주택으로 등록해도 인센티브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올해도 가격이 급등한 이 아파트는 현재 매매시세가 12억5000만원, 전세는 7억~7억5000만원, 반전세로는 보증금 3억원에 월세 130만원가량 하네요.

 

 

하지만 정부가 공시가 6억원 초과 주택에 임대등록 혜택을 배제한 실제 이유는 따로 있어 보입니다. 수차례 대책에도 강남권 매매시장에서 지속되는 주택 가격 상승세를 잠재우겠다는 게 '행간의 목표'로 읽힙니다.

 

임대 등록 인센티브는 다주택자에게 주어진 '매도냐, 임대 등록이냐'라는 선택지중 임대 등록쪽 퇴로를 넓혀 보유 여지를 남겨준 것이 핵심입니다. 다시 말해 정부가 공시가격 6억원 이상 주택에 인센티브를 주지 않는다는 것은 '매도' 외에 퇴로를 주지 않는다는 의미죠.

 

종합하면 공시가격 6억원(지방 3억원) 초과 주택은 투자용도가 아니라 실거주 용도로만 살아야 지금보다 과한 세금을 내지 않습니다. 내년 4월 이후 10~20%포인트 중과되는 양도세 부담을 지기 싫다면 내다팔라는 거죠.

 

이에 더해 정부는 내년 경재정책방향을 통해 보유세(재산세·종부세 등)까지 인상할 수 있다는 방침을 내놨습니다. 고가주택 보유자들로서는 부담이 점점 더 커지는 셈입니다.

 

고가의 강남권 아파트가 주식시장의 '대장주'처럼 서울 전역의 시장을 선도하고, 또 전국적 흐름까지 이끄는 게 일반적이었으니 이 시장을 잡으면 남은 집권기간동안 주택시장 걱정은 없겠다는 생각이 깔려 있는듯 합니다. 

 

 

하지만 이런 고가주택에만 다른 기준을 두는 게 옳은지는 의문이 듭니다.

 

그리스 신화에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Procrustean bed)'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행인을 자신의 여인숙으로 유인해 쇠 침대에 묶은 뒤 침대보다 크면 머리나 다리를 자르고, 모자라면 반대로 신체를 늘려 죽이는 해괴한 악당 얘깁니다. 최근에는 일방적 기준으로 다른 사람이나 집단, 현상을 재단하는 경우를 비판할 때 많이 쓰는 말이죠.

 

원칙은 소중합니다. 주택시장에 투기를 걷어내고, 집에 대한 인식을 돈 버는 수단이 아닌 '사는 곳'으로 안착시키겠다는 정부의 부동산 정책 철학은 존중받기 충분합니다.

 

하지만 배려 없는 원칙은 때에 따라 폭력일 수 있습니다. 퇴로도 없이 집을 팔라는 압박을 받고 있는 다주택자 중 상당수는 선의의 경제적 판단으로 집을 산 이들입니다. 더 여유있게 살기 위해서든, 노후 준비를 위해서든 말이죠. 과연 이들이 모두 대가를 치러야 할 이른바 '적폐'일까요?

 

■ 임대 인센티브 못 받는 집 '67만가구'

 

올해 공시가격 기준으로 공동주택 28만8454가구, 단독주택 6만5462가구 등 35만3916가구다. 가격공시 주택 총 1638만7364가구(공동주택 1242만7559가구, 단독주택 395만9805가구) 중 2.2%에 해당하는 비율이다.

 

하지만 범위를 좁히면 비율은 크게 높아진다. 수도권에서는 4.5%(33만3064가구), 서울에서는 10.5%(28만8958가구)다. 서울서는 10채중 1채가 임대 등록을 해도 인센티브를 받지 못한다는 얘기다. 국토부는 매년 1월1일 기준으로 4월께 공시가격을 발표하는데, 올해 서울 중심으로 집값이 크게 오른 것을 감안하면 내년에는 공시가 6억 초과 주택이 크게 늘 것으로 보인다.

 

또 수도권 외 지역에서는 공시가격이 3억원만 넘어도 임대 등록을 하더라도 양도세, 종부세 감면을 받지 못한다. 이런 주택(3억~6억원)은 공동주택만 21만8656가구, 단독주택은 약 10만여가구다. 이를 감안하면 임대 인센티브를 못 받는 주택은 67만여가구로 추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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