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와! 공포의 집 같아"
녹슬고 육중한 철문을 열자마자 마치 공포의 집에 들어가는 것마냥 어둡고 음침한 복도가 나온다. 그 끝에 역시나 불안해 보이는 작은 문의 엘리베이터. 출연자들은 집주인에게 여러차례 안전을 확인하지만 그래도 불안하다. 1948년 스탈린 시대에 지어진 70년된 아파트라는 집주인의 설명이 나온다.
종편에서 방영 중인 '짠내투어' 블라디보스토크 편의 한 장면이다. 출연자들이 정한 숙소는 숙박공유서비스를 통해 예약한 한 낡은 아파트였다. 외관은 물론이고 엘리베이터, 현관까지 이어지는 복도, 도저히 사람이 살 것 같지 않은 모습이다.
이어 공개된 집 내부의 모습은 반전을 안겼다. 외관을 보고 실망과 걱정에 가득찼던 출연자들 역시 내부의 깨끗하고 깔끔한 모습에 안도하는 모습이 화면에 담겼다.
▲ '짠내투어' 화면 캡처 |
러시아에서 공부 좀 하고 온 지인의 얘기를 들어봤다. 러시아 역시 다른 유럽의 여러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다운타운 등 중심가에 위치한 건물에 함부로 손을 못대게 하는 규제가 엄격하다는 것이다.
사회주의 국가이다보니 애초부터 철저하게 계획돼 지어진 경우가 많다. 그 이전에 지어진 건물 역시 문화강국을 자처하는 러시아의 정책적인 의지를 반영해 건물 외관을 그대로 보존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오로지 내부 리모델링만 허용하고 있어서 러시아 주요 도시에 가면 이처럼 겉은 허름하고 속은 번듯한 건물과 집을 흔히 볼 수 있다고 한다.
겉보기엔 허름하지만 엄청 튼튼하게 지어진 것이 특징이란다. 외벽 콘크리트 두께도 우리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두껍다고. 사회주의의 특성상 이윤을 남겨먹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100년 된 집이라도 안전에 대한 염려 없이 내부 수리만 하면 쾌적하게 살 수 있는 집이고, 대부분 이런 집에서 산다는 것이다.
사실 문화재 혹은 문화적인 가치가 있는 곳이 아닌 '그냥 100년 된 건물(?)'이 도심에 버젓이 버티고 있다는 점 자체가 우리에겐 낯설다. 내부 수리만으로 멀쩡하게 살 수 있다는 점 역시 놀랍다.
문화 경제적으로 너무나 다른 러시아와 단순비교하긴 어렵다고 해도 우리의 집에 대한 인식과는 너무나 큰 차이다. 재건축연한 30년만 채우면 허물고 다시 짓는 재건축이 당연시됐던 게 사실이다. 이로 인해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인식도 여전히 지배적이다.
▲ 짠내투어 화면 캡처 |
정부가 올해들어 안전진단 요건을 강화한 점 역시 이런 재건축, 혹은 집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자 한 점이 반영이 됐다. 정부의 이런 규제가 발표되자 당장에 무너질 정도의 집이 아니면 재건축하기 어려워졌다는 볼멘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실제로 30년 됐다고 당장 무너질 정도로 안전상 문제가 생기는 아파트는 거의 없을 것이다. 강남 재건축 아파트의 상징인 은마아파트는 40년이 됐다. 다만 이들 아파트에선 균열 누수 결로 층간소음 등 크고 작은 문제들이 빈번하다. 어떤 집에선 녹물이 나오고 어떤 집은 윗집에서 누수가 발생해 천장에서 물이 떨어지기도 한다.
과연 우리나라에서 50년, 60년, 100년된 아파트를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심지어 일부 신축 아파트에서도 이런 현상들이 발생하면서 민원이 빈발하는 상황이다.
주무당국인 국토교통부 손병석 제1차관은 올해초 업무보고에 앞서 브리핑에서 "현장에 나가보면 부실과 관련해 심각한 수준"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공사비 절감을 위해 많이 쓰는 수법이 공정기간을 줄이는 것"이라며 "적정공기가 30개월이라고 할때 6~10개월 정도 현장을 쉬면 간접비가 줄어드는데 그 여파로 소비자들이 밀접하게 느끼는 마감부분 등에서 하자가 발생한다"고 꼬집었다.
물론 러시아와 우리는 여러 면에서 극과 극이라 할 정도로 다르다. 콘크리트 두께에서조차 사회주의의 속성이 묻어나올 정도로 거리가 있다.
하지만 해외의 이런 사례를 보면 우리도 주택시장 해법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 아닌가 싶다. 강한 규제만으로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은 이미 수차례 확인했다. 물론 집을 거주가 아닌 투자 관점에서 바라보는 인식이 변해야 한다는 '어려운' 전제가 필요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