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교통부 관행혁신위원회가 부동산 공시가격의 낮은 현실화율을 지적하면서 이를 둘러싼 논란이 다시 한 번 쟁점화 될 것으로 보인다. 국토부가 혁신위 지적을 받아들여 공시가격 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까닭이다.
공시가격이 상승하면 세(稅) 부담이 늘어나는 동시에 복지대상자 탈락자가 대거 발생할 수 있다. 공시가격이 조세 기준과 복지 대상자 선정 등 다양한 분야에 사용되고 있어서다.
이와 함께 국토부가 공시가격 현실화율을 높일 수 있는 준비가 돼있는지에 대한 지적도 나온다. 공시가격의 근거가 되는 주택 거래 통계 등이 여전히 미흡한 탓이다. 시세를 정확히 반영하지 못한 공시가격 상승은 오히려 국민 혼란만 가중시킬 수 있다는 우려다.
▲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
◇ 고가주택 보유세 증가 vs 복지수급자 탈락
11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국토부 관행혁신위원회는 지난 10일 발표한 ‘국토부 주요 정책에 대한 2차 개선권고안’에서 부동산 공시가격이 실거래가와 차이가 커 현실화율이 낮다고 지적했다.
특히 고가 부동산의 경우 실거래가와 공시가격 차이가 커 부자들의 세부담을 줄여주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공시가격은 종합부동산세와 재산세 등 조세 부과 기준이 되는 까닭이다.
실제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위치한 반포래미안퍼스티지 전용 84㎡의 경우, 올 3월 보고된 실거래가는 24억원(20층)인데 반해 올해 공시가격은 12억1600만원에 불과하다. 실거래가 반영률은 50.1%, 공시가격과 실거래가 차이는 11억8400만원에 달한다.
반면 은평구 구산동 경남아너스빌 전용 84㎡ 6월 실거래가는 3억8000만원(2층), 공시가격은 2억2500만원이다. 실거래가 반영률은 59.2%, 가격 차이는 1억5500만원이다.
혁신위원회에서 실거래가 현실화율이 낮다는 점과 가격대별 형평성 문제 등을 지적한 이유다.
이에 국토부는 현실화율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연내 마련하겠다고 밝힌 동시에 고가‧특수 부동산 등은 더 빠른 속도로 개선될 수 있도록 조치한다는 방침이다. 이렇게 되면 고가 부동산 보유자들의 보유세 부담이 커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최근 공정시장가액 비율을 올린다는 내용의 종합부동산세 개선안에 이어 공시가격 현실화율을 개선한다면 내년 보유세(재산세‧종합부동산세) 인상은 불가피하다"며 "9억원 이상 고가 아파트와 고급 단독주택, 비사업용 토지 등 세금 과세표준이 되는 공시가격과 공시지가 상향으로 보유세 부담이 커질 전망"이라고 말했다.
공시가격 현실화율 개선은 시장 투명성을 확보하고 공시가격 정확성이 높아진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는 평가가 많다. 하지만 건강보험료 증가로 부자들 뿐 아니라 일반 서민 부담도 커지고, 기초연금 등 복지대상자에서 제외되는 취약계층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공시가격이 조세 부과 뿐 아니라 건강보험료 산정과 기초노령연금 수급대상자 결정 등 복지 분야에서도 활용되기 때문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복지 혜택을 받았던 저소득층이 공시가격 인상으로 대상자에서 제외되는 상황도 발생할 수 있어 단기간에 현실화율을 끌어올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 여전히 미흡한 통계, 공시가격의 또 다른 이면
혁신위는 공시가격 현실화율이 낮은 이유 중 하나로 통계 문제를 꼽았다. 현실화율 지표인 실거래가 반영률의 경우 실거래가 건수가 부족하고 시기‧지역의 편중, 매년 표본이 불연속적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또 당사자간 특수 사정이 개입된 거래와 허위신고 등으로 인해 명확한 통계를 파악하고 관리하지 못했다는 게 혁신위의 설명이다.
주택 거래량 등 통계문제는 이전부터 지속적으로 제기돼왔다. 김현미 장관 전임인 강호인 장관은 2015년 11월 취임사에서 주택 통계에 대한 문제를 꼬집기도 했다.
당시 그는 "정확한 통계 인프라 구축이 매우 중요하다"며 "가격 동향만 파악하고 거래량 정보가 없어 부동산 가격 상승이 투기수요에 의한 것인지 경기 활황에 따른 실수요에 의한 것인지 구분이 어렵다"고 말했다.
▲ 서울 아파트 매매거래량 기준 |
하지만 지금까지 주택 통계 문제는 개선되지 않고 있다. 주택 거래 통계 정보를 제공하는 서울부동산정보광장과 한국감정원의 지난해 5월 이후 1년간 아파트 매매 거래량은 월 평균 5891건의 차이가 발생했다.
한국감정원의 경우 거래 계약 이후 신고를 기준으로 집계한다. 계약 후 60일 이내에 신고하면 되는 까닭에 거래와 신고 시점간 시차가 발생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반면 서울부동산정보광장은 계약일 기준으로 거래 정보가 잡힌다는 점에서 감정원 통계와 차이가 발생한다. 과거에도 지적된 부분이지만 논의만 있을 뿐 여전히 나아진 부분은 없는 상황이다.
여기에 시장에서는 소유권 이전을 통한 매매 뿐 아니라 지분 매각과 신탁, 증여와 경매 등 다양한 형태의 거래가 존재한다. 이같은 현실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한다면 공시가격 현실화율 개선은 숫자만 올라가는 것으로 오히려 시장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부동산 시장 전문가는 "공시가격 현실화율 개선을 위해서는 통계 시스템도 함께 고쳐나가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샘플링(표준지 등) 등을 기반으로 정확한 가격 산정이 어렵고 이런 현상이 쌓이면 시장에 부정적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국토부 관계자는 “주택 거래량 등은 부동산 시세에 영향을 줄 수 있지만 이번 개선 내용인 공시가격에는 크게 연관성이 없다”며 “당장 주택 통계 시스템 개선은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