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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불 났으니 고기 굽자'는 코레일

  • 2018.12.12(수) 15:12

코레일, 시설공단 부실시공·인력감축 등 '남의 탓'
조직 이해·논리 우선시, 철도안전 불신만 증폭

'부실시공, 상하분리(한국철도시설공단과 한국철도공사 분리체제), 인력감축, 예산축소…….'

 

이런 것들이 최근 KTX 강릉선 탈선 사고의 근본 원인이란다. 코레일 여러 관계자들 사이에서 사고원인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 보면 결국 이런 단어들로 귀결했다.

 

코레일측은 사고 원인으로 선로전환기 제어시스템의 회로가 잘못 연결돼 있었던 점이 거론되자 당장 공단의 부실시공에 초점을 맞췄다.

 

사고가 난 강릉선은 지난해 12월 22일 개통했다. 올해 평창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박근혜 정부 시절부터 서둘러 개통일에 맞추려다 이같은 사단이 났다는 얘기도 흘러나왔다. 이 과정에서 공단에서 인수인계 당시 시운전이나 연동시험 등이 허술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어 지난 정부부터 이어진 지난 10년간의 철도업계 전반의 구조조정과 민영화도 거론됐다. 10년 전보다 선로는 10% 이상 늘었지만 정비 예산과 인력은 줄었다는 것이다.

 

급기야 철도업계의 해묵은 논쟁인 상하분리 문제까지 꺼내들었다. 건설은 공단이 맡고 운영은 코레일이 맡는 이원화된 상하분리 시스템에서 근본원인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통합을 해야 한다는 논리로 이어지는 식이다.

실제 이같은 인식은 어제(11일) 오영식 코레일 사장이 사퇴를 발표하는 보도자료에도 그대로 나타났다. 1페이지 4개 문단으로 작성한 짤막한 자료였다.

 

그 말미에 오 사장은 "그동안 공기업 선진화라는 미명아래 추진된 대규모 인력 감축과 과도한 경영합리화와 민영화, 상하분리(공단과 코레일 분리) 등 우리 철도가 처한 모든 문제가 그동안 방치된 것이 이번 사고의 근본 원인"이라고 언급했다. 가장 하고 싶었던 얘기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코레일 내부의 어느 한두 사람의 생각이 아니란 얘기도 된다. 결국 이번 사고를 바라보는 코레일과 오사장의 인식이 고스란히 투영된 것이다. 그 어디에도 코레일의 잘못과 반성은 없었다. 이런 인식이라면 오 사장의 사퇴 자체가 이율배반적일 수밖에 없어 보인다.

 

▲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지금 이 시간에도 열차를 이용하고 있는 국민들의 인식과도 크게 벌어져 있다. 코레일은 인수인계 과정에서도 완전한 제품을 설치하지 못한 공단에 잘못이 있고, 인수인계 이후에도 연동실험 주기가 돌아오지 않았다는 얘기만 되풀이 하고 있다.

 

국민 생명·안전과 직결되는 사안인데도 인수인계 과정에서 이를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점이나, 이후 1년이 넘도록 오류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점, 더욱이 사고 직전의 오류 발견과 이에 대한 대처과정 등은 일반적인 상식으론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코레일의 논리대로라면 애초에 부실시공을 하더라도 인수인계나 운영하는 과정에서 이를 걸러낼 길이 없다는 얘기가 된다. 결국 이같은 참사는 언제든 되풀이 될 수 있다는 얘기로밖에 들리질 않는다. 사고 이후 일관되게 조직의 논리를 앞세우고 조직의 이해를 먼저 생각하는 듯한 인상도 지울 수 없다.

 

물론 이번 기회에 해묵은 상하분리를 포함한 철도체계 전반과 지난 10년간 이어진 구조조정 등의 이슈 역시 사회적 합의 등의 과정을 거쳐 바로잡을 것을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다만 그에 앞서 지금 당장 이같은 사태가 벌어지는 과정에서 지적돼 온 비전문가의 낙하산 사장 인선이나 부실한 관리, 기강해이, 안이한 대처 등 일차적인 사고 원인과 책임을 묻는 것이 우선돼야 할 것이다.

 

어느 철도업계 관계자의 말마따나 '불이 났는데 고기 구워 먹을 생각'만 하는 듯한 모습은 국민들의 불신과 불안감만 더욱 키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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