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베일에 싸여있던 '청년 원가주택'의 청사진을 공개하면서 건설사들이 긴장하고 있다. 시세보다 훨씬 저렴한 주택이 공급되면 민간 아파트 청약 수요가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에서다.
작년까지 뜨거웠던 분양시장의 열기는 이미 한풀 꺾인 상태다. 수요가 풍부한 서울에서조차 준공 후 미분양이 발생했고, 무순위 청약은 자연스러운 절차가 된 분위기다. 270만 가구 공급이 가시화되면 청약 양극화 현상이 심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시세보다 30% 저렴…저리 장기 대출까지
정부는 지난 16일 '국민 주거안정 실현방안'을 통해 '청년 원가 주택'과 '역세권 첫 집'에 대한 구체적 계획을 처음으로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의 공약대로 공급 규모는 총 50만 가구, 공급금액은 시세의 70% 수준이다.
도심에는 원룸·소형 주택을, 신도시 등에는 중소형 규모의 공공분양 주택을 공급하는 제도다. 19세~39세 이하 청년과 결혼한 지 7년 이내인 신혼부부, 생애최초 주택구입자 등이 공급 대상이다. 주택을 분양받을 땐 40년 이상의 장기 대출을 저금리로 제공한다. ▷관련 기사:[8.16 주택공급]청년원가, 올해 3000가구 청약…시세의 70%(8월16일)
대출 규모는 아직 공개하지 않았다. 다만 작년 8월 대통령선거 당시 윤석열 대통령은 분양가의 80%까지 대출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수분양자는 일단 분양가의 20%만 마련하면 되는 복지 정책에 가깝다.
윤석열 대통령도 공약 발표 당시 "많은 청년층이 결혼과 출산을 기피해 인구 절벽의 우려가 심화하고 있고, 이들의 어려움이 주택시장은 물론 사회경제에도 불안요인이 되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5년 동안 거주하면 공공에 환매할 수 있다. 다만 환매 시 시세차익의 70%만 확보할 수 있으며 나머지 30%는 공공에 귀속된다. 청년들은 주거 공간 확보와 자산 형성의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게 되는 셈이다.
박원갑 KB국민은행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이번 방안 발표로 내집마련 실수요자들은 기존 주택시장보다 분양시장에 더 관심을 쏟을 것"이라며 "특히 주택시장의 핵심축인 2030세대는 신규 분양으로 내 집을 장만하려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민간분양 어쩌나…"청약 양극화 심해질 것"
최근 싸늘한 분양시장에 고전하고 있는 건설사 등 민간 공급 주체들에겐 난감한 소식이다. 집값 고점 인식에 금리 인상 등 하방 압력이 작용해 민간분양 아파트는 올해 들어 인기가 크게 식었다.
그나마 분양가가 저렴한 공공분양, 사전청약 등으로 수요가 이동한 탓인데, 청년 원가주택이 공급되면 수요자들은 더욱 분산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최근 분양시장은 지역, 입지별로 양극화가 심해진 상황"이라며 "금리 인상 등으로 부동산 시장이 전반적으로 조정기에 들어서면서 지방부터 점점 분양이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청년 원가주택 등 정부가 저렴한 주택을 공급할 것이라는 기대심리에 수요가 더 분산되고, 건설사들도 분양에 좀 더 보수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실제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진행한 7월 공공 사전청약은 평균 13.5대 1의 경쟁률로 마감했다. 남양주왕숙2(42.2대 1), 화성태안(33.5대 1), 고양창릉(20.3대 1) 등이 인기였다.
반면 민간 아파트는 올해 들어 경쟁률이 꾸준히 감소하는 추세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7월 전국 민간 아파트 청약 경쟁률은 평균 7.26대 1이었다. 대기 수요가 풍부한 서울에서조차 악성 미분양으로 불리는 준공 후 미분양까지 발생한 상황이다. ▷관련 기사:'줍줍이라 부르지 마세요' 무순위청약에 건설사들 "제발 좀~"(8월4일)
전문가들 역시 청약 양극화 현상이 심화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공급 물량이 많았던 대구 등은 미달 현상이 지속하고, 서울 등 공급이 적은 지역은 분양가, 입지 등에 따라 '옥석 가리기'가 이뤄질 것으로 내다봤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청년 원가주택 등은 소득 대비 주거비 부담이 큰 사회초년생과 2030세대의 종잣돈·내 집 마련에 큰 도움이 될 전망"이라면서도 "비교적 차익 기대가 큰 입지로 수요가 쏠리는 청약 양극화 현상이 극명할 전망"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