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TX만 뚫리면...'
수도권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해봤을 법한 생각입니다.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만 개통하면 한 시간 넘게 걸리던 이동 시간이 20~30분대로 단축되기 때문인데요.
하지만 곳곳에서 잡음이 많아 속도를 통 못 내고 있습니다. 최근엔 강남 은마아파트 주민들이 단지 지하를 관통하는 GTX-C 노선 구간을 변경해달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데요.
주민들은 '안전 문제'를 꼬집고 있지만 정부나 시공사는 "문제 없다"고 맞서고 있어 한동안 대립이 이어질 전망입니다. GTX-C 노선, 이대로 괜찮은 걸까요?
GTX-C 은마 구간…"안전 위협"vs"문제 없다"
GTX는 국내에서 최초로 시도하는 도심 고속전철로 최고 시속이 180km에 이르는데요.
빠른 속도를 내기 위해 가급적 직선 노선을 설계해야 하기 때문에 지하 깊이(40~60m) 파서 철로를 내는 '대심도' 방식으로 공사를 진행합니다. 서울 지하철 평균 심도가 30m인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깊습니다.
지하철 노선이 대부분 지상의 차선을 따라 정해진다면 GTX는 주거지 아래를 지나는 게 불가피한데요.
경기 양주와 수원을 잇는 GTX-C 노선(약 74km)은 삼성역~양재역 구간에서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지하를 관통하게 돼 잡음이 커지고 있습니다.
통상 지하철이 주거지를 지나갈 땐 스치듯 통과하는데 해당 구간은 은마아파트 단지 정중앙을 지나거든요.
이에 은마아파트 주민들은 가뜩이나 오래 된 아파트의 지하를 GTX가 통과하면 안전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노선 변경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은마아파트는 1979년 준공해 벌써 45년 된 노후 아파트인데요. 지금도 벽이 갈라지고 내부에 싱크홀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데 지하로 급행 열차가 지나가면 단지에 영향을 미칠 거라는 우려가 나옵니다.
그러나 안전과 관련해선 정부와 시공사, 업계 전문가 모두 "문제 없다"는 입장입니다.
원 장관은 지난 23일 은마아파트를 찾아 GTX-C 공법의 안전성을 설명하며 "은마아파트 구간은 발파방식이 아닌 첨단 기술력이 총동원되는 TBM 공법으로 계획돼 있다"며 "단순히 지하를 통과한다는 사실만으로 위험하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고 밝혔습니다.
터널 공사 공법은 크게 '발파 공법'과 'TBM 공법'으로 나뉘는데요. 발파는 바위나 대상물 속에 폭약을 넣어 폭파시키는 공법이고, TBM은 기계식 굴착으로 바위를 잘게 부수면서 나아가는 공법입니다.
시공사(우선협상대상자)인 현대건설컨소시엄 관계자는 "발파작업 시 소음, 진동, 무너짐 우려가 있지만 은마 구간은 60m 아래인 데다 지하 암반 상태도 양호하고 TBM 공법으로 진행할 거라 문제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4400가구 이상의 대규모 단지 지하라는 점에서도 우려가 나오는데요.
현재 GTX 노선 중 은마아파트 수준의 대규모 단지를 지나는 노선은 없습니다. 앞서 GTX-A 노선이 강남구 압구정동 '압구정 현대아파트'를 통과할 계획이었다가 집단 민원 등에 따라 노선이 변경되기도 했고요.
지반공학에 정통한 한 업계 관계자는 "단지 규모보다는 건물이 높을수록 하중을 더 많이 받는데 GTX-C노선 은마 구간의 심도보다 더 얕게 건설된 지하철 9호선을 보면 높은 건물이 많은 신논현역 등에서도 전혀 문제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GTX가 먼저? 재건축 또 멈출라
은마아파트 주민들은 무엇보다 오래 기다려 온 재건축 사업에 차질이 생길까 가슴 졸이는 분위기입니다.
이 단지는 20년간 재건축을 추진했으나 각종 이유로 나아가질 못하다가 지난달 겨우 서울시 문턱을 넘었습니다.▷관련기사:[집잇슈]은마, 강남 재건축 신호탄?…서울 전역 확산은 '글쎄'(10월21일)
향후 아파트를 재건축하는 과정에서 GTX 공사가 영향을 미쳐 사업에 또다시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면서 불안감이 더 커진거죠.
이제 재건축 시작 단계라 앞으로 처리해야 할 인허가와 심의 절차가 많고요. 주민 내부 갈등, 층수 변경 등 굵직한 현안도 산적한데 주민들이 GTX 문제에 매달리다가 정작 중요한 재건축 사업의 추진 동력이 약해질 수 있다는 건데요.
더군다나 층수 변경 이슈는 GTX 공사와도 맞물려 생각해봐야 할 문제로 꼽힙니다.
은마아파트는 35층으로 재건축 계획안이 통과됐지만 '35층 높이 제한' 완화를 선제적으로 반영해 최고 50층으로 계획 수정을 준비중인데요.
이 경우 지하주차장을 기존 계획(지하 3층)보다 더 늘려야 하는데, GTX 공사를 하면 지하 공간을 충분히 마련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거죠.
다만 이는 지하주차장을 얼마나 늘리느냐에 따라 다를 것이란 분석이 나옵니다.
업계 전문가는 "한 층당 넉넉히 3m라고 잡았을 때 지하 7층까지 늘려도 약 20m 수준이라 GTX 터널과 거리가 멀다"며 "터널 굴착할 때 지반에 영향을 주는 반경은 철도 단면 직경(통상 9m)의 4배 정도로 보는데 그렇게 쳐도 공학적으로 여유 공간이 충분하다"고 말했습니다.
정부의 입장도 단호합니다.
GTX가 개통하면 국민 편의가 크게 높아질 전망이라 하루 빨리 사업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이유에서 입니다.
C노선은 양주 덕정역을 출발해서 의정부역, 창동역, 광운대역, 청량리역, 삼성역, 양재역, 정부과천청사역, 금정역, 수원역 등에 정차할 예정인데요.
이 노선이 개통되면 수원에서 삼성까지 78분 걸리던 소요 시간을 22분으로 대폭 단축하게 됩니다.
원 장관은 "매일 30만명 이상 시민의 발이 될 GTX-C가 더이상 미뤄져선 안 된다"며 "막연한 불안감을 확산시키고 국가사업을 방해하고 선동하는 부분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밝혔는데요.
C 노선의 경우 민자사업 형태라 정부가 노선 변경 등 직접적인 개입은 어렵습니다. 다만 지하 40m 이하는 '지상권'이 없기 때문에 일일이 주민 동의를 받을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사업을 밀어붙일 수 있는 상황이죠.
지상이라면 부지 매입도 해야 되고 소음 등 설명회를 연 뒤 동의 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지하 40m 이하는 지상권이 없어 지상의 모든 분들의 동의를 받진 않거든요.
다만 집단 민원 등이 이어지면 설명회나 공청회 등을 거치면서 새 국면을 맞기도 하는데요. C노선 제대로 속도를 낼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