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 속 노선'
일각에선 GTX-D·E·F 노선을 이렇게 부른다. 아직 A·B·C 노선도 갈 길이 먼 상황인 만큼 D·E·F 노선이 뚫리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보는 것이다.
현 정부는 오는 2027년까지 예비타당성조사를 마치는 등 속도를 내겠다고 밝혔지만, 순조롭게 진행된다고 해도 정권이 바뀌면 추진 동력을 잃게 될 가능성이 크다.
갈수록 GTX 노선과 정차역이 늘어나는 것도 문제다. 정차역이 많아질수록 '급행' 열차의 취지를 잃어가고 개통이 미뤄지면서 비용과 국민 불편이 커진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F노선까지 만든다고? '언제쯤..'
국토교통부는 지난 6월부터 1년간 GTX-A·B·C 연장 및 D·E·F 신설노선의 최적안과 사업화방안을 연구중이다.
GTX 사업은 4차 국가철도계획망에 따라 △A노선 운정~동탄역 △B노선 송도~마석역 △C노선 덕정~수원역 △D노선 장기~부천종합운동장역 등이 추진중이다.
여기에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 공약으로 내놨던 D, E, F노선이 추가될 예정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D노선은 김포 장기에서 출발해 B노선을 일부 활용, 서울 여의도역을 거쳐 용산역까지 이을 계획이었다.
윤석열 정부는 D노선을 김포에서 인천~부천~서울~하남~남양주로 연결하고 부천종합운동장에서 분기해 인천공항으로, 삼성역에서 분기해 경강선을 따라 수서~성남~광주~이천~여주로 잇는 '더블 Y자 노선'으로 건설하겠다는 구상이다.
신규 노선인 E노선은 수도권 북부와 동·서를 연결하고 F노선은 서울 외곽을 순환할 예정이다.
E노선은 인천(검암,계양)~서울(김포공항, 디지털미디어시티, 신내)~구리~남양주(다산,양정)를 잇는다.
F노선은 고양~서울~부천~시흥~안산~화성~수원~용인~성남~하남~남양주~의정부~양주~고양 등으로 수도권 거점도시(경기) 순환노선으로 만든다.
다만 이들 노선은 어디까지나 대선 공약에서 나온 '구상' 수준으로 현실화 여부는 미지수다.
내년 6월 연구용역 결과에 따라 정차역뿐만 아니라 노선 자체가 수정·삭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현재 사업성이 확보되는 최종 노선을 선정하는 과정으로 여러 부분에서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며 "(노선 삭제 등 가능성에 대해선) 연구 중이라 말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곳곳에서 현실화 우려가 나오자 국토부는 오는 2027년까지 D·E·F에 대한 예비타당성조사(예타) 통과 및 후속절차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빠른 개통을 위해선 정부의 계획보다 사업 추진 속도를 더 앞당겨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정훈 아주대 교통시스템공학과 교수는 "D·E·F의 예비타당성조사는 2027년까진 되겠지만 이는 윤 정부의 임기 마지막 해여서 사업 추진력을 높이려면 더 앞당길 필요가 있다"며 "적어도 2025~2026년으로 조기화해서 임기 내 기본계획이 시작돼야 2035년까지 개통을 기대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완행 열차' 안 되려면
GTX 노선과 정차역이 계속해서 추가된다는 점도 우려를 사고 있다.
GTX는 대표적인 교통 호재인 만큼 정치권 및 지자체의 '단골 공약'으로 선거 때마다 이슈몰이를 하며 추가 노선 신설에 대한 목소리를 키웠다.
그 여파로 이미 GTX A 노선의 창릉역, C노선의 왕십리역, 인덕원역, 의왕역, 상록수역 등이 추가로 생겼지만 여전히 지자체 곳곳에서 정차역 신설 요구가 나오고 있다.
경기도는 GTX A·B·C 추가, D·E·F 노선 신설을 골자로 한 'GTX 플러스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A노선은 동탄에서 평택까지, B노선은 마석에서 가평까지, C노선의 북부 구간은 동두천까지, 남부 구간은 병점·오산·평택까지 연장하는 식이다.
서울시도 광화문역(A노선), 시청역(A노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B노선) 등을 만들어줄 것을 요구한 바 있다. 최근엔 천안시까지 가세에 C노선에 '천안역'을 추가해줄 것을 건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자체들의 요구대로 GTX 역사 추가가 이어지면 '급행 철도'가 자칫 '완행 열차'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아무리 빠른 속도로 달려도 정차역이 많으면 표정속도가 느려지는 게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표정 속도는 목적지까지의 거리를 목적지까지 걸린 시간으로 나눈 속도 개념이다. 소요 시간엔 정류장에 정차한 시간도 포함된다.
GTX는 당초 정차역을 줄이는 대신 표정속도 100km/h 이상의 빠른 속도로 주파가 가능하도록 설계됐다. 그러나 지하철 등과 노선을 일부 공유하는 C노선의 표정속도는 이미 기본 계획상 시속 80km로 떨어졌다.
이런 식으로 표정 속도가 떨어지면 결국 일반 광역철도 노선만 늘어나는 꼴이 될 수 있다. 가뜩이나 GTX는 대심도로 건설하기 때문에 환승, 출입 등에 시간이 오래 걸려 소요 시간이 더 늘어날 수 있다.
역을 많이 지을수록 건설비가 증가하고 개통이 늦어지면서 탑승 요금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이에 급행 철도로써의 역할을 수행하려면 정차역을 최소화하고 개통을 앞당겨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유정훈 교수는 "GTX가 고속 운행하려면 역간 거리를 7km 내외 수준의 간격을 둬야하는데 법제화를 놓치면서 민원에 따라 신설역이 추가된 부분이 있다"며 "정차역이 늘어날수록 표정속도 100km/h 이상의 고속 급행을 유지하기 어려워진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GTX 탑승 요금도 물가상승률을 반영하기 때문에 개통이 늦어지면 요금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며 "추가역 신설 등에 대한 지자체, 주민 등의 요구에 대해 국토부가 수도권 전체 효율성을 위해 적극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시리즈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