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청과 디아지오코리아는 1940억원이 과세된 1차 행정소송에 대한 법원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판결 결과에 따라 '일단 정지' 상태인 2차 과세 처분(2003억원)과 3차 처분(최소 1500억원 예정)까지 영향을 받게 된다.
이들의 '치킨게임' 승자는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겠지만, 패자는 상처가 꽤 깊을 전망이다. 새 정부의 지하경제 양성화와 세수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는 관세청은 소송에서 질 경우 과세당국에 대한 신뢰와 세수를 모두 잃을 수 있다.
반면 디아지오가 세금을 고스란히 내야 한다면 재무 부담이 크게 늘어나고, 국내 영업에도 차질을 빚게 된다. 다국적기업의 투자 심리가 위축되거나 외교적 문제까지 불거질 수도 있다.
▲ 디아지오코리아의 울트라 슈퍼 프리미엄급 위스키 '윈저 XR'(사진=디아지오코리아 제공). |
◇ 디아지오 세금 내면 '쪽박'
디아지오코리아는 최근 수년간 매출과 수익이 모두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2012년 7월~2013년 6월) 매출액은 3600억원으로 전년보다 450억원 가량 줄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837억원으로 210억원 감소했다. 최근 경기둔화에 따른 주류시장 부진이 원인이다.
현재 소송이 진행되고 있는 세금(3943억원)이 연간 매출보다 더 많고, 영업이익에 비해서는 5배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부채비율은 184%에 달한다. 순수한 영업을 통해서는 스스로 세금을 낼 능력이 크게 부족하다.
서울세관이 준비하고 있는 3차 과세까지 합치면 내야할 세금이 최소 5443억원에 달한다. 지난 6월말 기준으로 디아지오코리아의 자본과 부채를 모두 합친 자산(5434억원)보다도 세금이 더 많다.
거액의 세금을 낼 가능성에 대비해 디아지오 본사에 지급하던 배당금을 줄이고, 잉여금을 쌓고 있다. 2007년까지 연간 1000억원이 넘었던 배당 규모는 2011년 150억원까지 줄였다. 대신 지난해 미처분이익잉여금은 1210억원으로 전년보다 두 배 가까이 늘렸다.
◇ "관세청 패소하면 문 닫아야"
관세청은 디아지오 소송에서 패소할 경우 과세당국으로서의 '존재 이유'까지 위협받을 수 있다. 사상 최대의 관세 소송이 '부실 과세'로 판명난다면, 세금은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애꿎은 다국적기업만 잡은 꼴이 된다.
위스키 수입업체는 물론 다른 수출입기업까지 디아지오 사례를 토대로 저가신고를 통한 '절세 전략'을 활발하게 쓸 수도 있다. 법원의 판례가 남게 되면 유사한 소송이 불거져도 패소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에 관세청의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세수 측면에서도 타격이 만만치 않다. 가뜩이나 박근혜 정부는 막대한 복지재원과 경기 침체로 인해 세수부족 우려가 심각한 상황이어서 과세당국의 역할이 과거보다 훨씬 중요해졌다. 만일 관세청이 5000억원이 넘는 세수를 눈앞에서 놓친다면 국가 재정에도 피해가 상당하다.
3차 추징까지 포함한 디아지오 과세 금액 예상치는 지난해 관세수입(9조8000억원)의 5.6%, 내국세를 포함한 관세청 소관세수(66조원)의 0.8% 수준이다. 올해 저조한 세수 진도 상황과 향후 늘어날 디아지오 세금부과 규모를 감안하면, 과세 비중은 더 커질 전망이다.
관세청 관계자는 "최근 세수 확보가 가장 중요한 상황에서 관세청의 명운을 걸고 소송에 임하고 있다"며 "만일 패소하면 과세당국의 신뢰가 무너질뿐만 아니라, 수입 물품의 저가신고 문제에 대해서도 손을 쓸 수 없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