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공제 150만원, 경로우대 100만원 공제, 대학생 자녀 교육비 900만원 공제, 월세 500만원 공제, 신용카드 300만원 공제, 청약저축 120만원 공제, 보험료 100만원 공제...
직장인들은 매년 1월쯤 되면 회사 경리부서에서 연말정산하라는 안내를 받는다. 지난해에 무슨 지출이 있었는지 기억을 더듬어가면서 국세청의 연말정산 간소화 서비스를 통해 영수증도 챙겨놓는다. 매년 조금씩 편해지는 느낌은 있지만, 신고서를 작성하는 일은 여전히 번거롭다.
마음을 다잡고 연말정산 안내문을 읽어보지만, 1년에 한번씩 볼 때마다 새롭다. 각각의 공제마다 정해진 요건과 한도는 직장인을 혼돈에 빠뜨리는 주범이다. 신용카드 많이 쓰면 300만원 주고, 보험료 낸 건 100만원까지 돌려준다는 얘기였나? 물론 아니다.
▲ 국세청의 소득공제 신고서 예시 |
◇ 환급 많으면 행복할까
매월 월급에서 자동으로 뗀 소득세로 끝나면 깔끔할텐데, 귀찮은 연말정산을 왜 하는 걸까. 이유는 사연이 많은 직장인들을 구제해주기 위함이다. 기업의 경우 투자나 고용을 통해 비용이 많아지면 이익에서 공제해 세액을 줄일 수 있다. 직장인도 마찬가지로 부양할 가족도 많고, 부득이하게 들어간 의료비나 교육비 등이 많다면 세금이라도 덜 내도록 배려해주는 것이다.
연말정산 환급액에도 너무 민감할 필요가 없다. 직장 동료가 연말정산으로 거액을 환급받았다면 그만큼 다사다난(多事多難)했다는 의미다. 반대로 연말정산을 괜히 해서 세금을 토해냈더라도 이미 원천징수한 세액이 적었을 뿐, 본연의 생활 지출은 크지 않았다고 생각해볼 수 있다.
그렇다면 얼마나 지출해야 연말정산으로 '13월의 보너스'를 받을 수 있을까. 개인별로 사연이 제각각이기 때문에 일률적인 추정은 불가능하지만, 사례를 통해 자가진단을 해볼 수 있다.
월급통지서에 나온 소득세 내역이 10만원이라면 1년간 낸 세액은 120만원이 된다. 3인가족의 외벌이 직장인일 경우 월 소득세 10만원을 내려면 연봉(총급여)이 4560만원 수준이다. 만약 자녀 교육비로 1년간 300만원을 지출했다면 실제 연말정산에서 줄일 수 있는 세액은 33만원이다. 세금 1만원을 환급 받으려면 10배를 더 지출해야 하는 셈이다.
이 직장인은 신용카드로 1000만원을 써도 연말정산에선 아무런 혜택을 받을 수 없다. 신용카드 공제의 문턱인 총급여의 25%(1140만원)를 넘지 못하기 때문이다. 연봉보다 많은 5000만원을 신용카드로 결제해도 줄어드는 세액은 78만원에 불과하다. 아무리 의료비나 교육비 등으로 지출이 많았다고 해도 이 직장인이 환급받을 수 있는 세액은 기존에 원천징수한 120만원을 넘을 수 없다. 고작 120만원을 환급받으려고 수천만원을 써야 할까?
◇ 직장인은 세금 자판기
연말정산에 대한 기대감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정부는 매년 간이세액표를 조정해 원천징수와 실제 세액의 차이를 줄이고 있다. 과거에는 매월 떼는 세액을 많이 가져가는 대신 연말정산을 통한 환급의 재미를 부여했지만, 최근 적게 떼고 덜 돌려받는 추세로 바꾼 것이다.
올해부턴 보험료나 의료비, 교육비 특별공제 방식을 세액공제로 전환하면서 전반적인 환급 규모가 더 줄어든다. 연말정산 환급액이 예전같지 않다거나, 오히려 세금을 더 냈다는 직장인들이 많아진 것도 이 때문이다.
기획재정부는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전환하면서 내년 7650억원의 세수를 더 걷을 것으로 추산했다. 직장인 1인당 5만원 정도의 세금을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 정부는 아니라고 하지만, 직장인들에겐 증세의 기운이 스며들고 있다.
2015년 예산안에 따르면 내년에 걷을 소득세는 57조5000억원으로 올해 예산보다 3조원 늘어난다. 지난해에 비해서는 10조원이 증가한 수치다. 내년 법인세와 부가가치세의 증가액을 올해보다 1000억원과 5000억원씩 늘려잡은 점을 보면 정부가 소득세에 얼마나 큰 기대를 갖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세금을 짊어진 직장인의 어깨는 앞으로도 계속 무거워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