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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de story] 연말정산 '뒷북' 수습, 믿을 수 있나

  • 2015.01.20(화) 15:29

자녀·경로우대 공제 확대..시행은 빨라야 내년
간이세액표 고쳐도 허사..연말정산 신고서는 '구식'

"총급여 5500만원 이하 근로자 1300만명은 평균 세부담이 줄어듭니다. 다만 아주 일부 근로자는 예외적으로 부양가족공제와 자녀의 교육비 공제 등을 적용받지 못해 세부담이 증가할 수도 있습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20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긴급브리핑을 열고, 최근 터져나오는 근로자들의 연말정산 불만에 대해 이렇게 해명했습니다. 근로자의 원천징수 세액을 결정하는 간이세액표를 현실에 맞게 개정하고, 자녀수와 노후대비를 감안한 세제개편도 추진한다고 밝혔는데요.

 

그의 말을 과연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요. 총급여 5000만원인 10년차 직장인 A씨의 실제 사례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A씨는 자녀 1명을 둔 맞벌이부부로 지난해 신용카드와 현금영수증을 2000만원을 넘게 사용했고, 주택담보대출 이자(400만원)와 보험료(400만원), 개인연금(180만원) 등 연말정산 공제 규모도 적지 않은 편입니다.

 

A씨가 지난해 초 연말정산에서 환급받은 금액은 60만원인데, 올해 국세청 연말정산 자동계산기를 돌려보니 환급액이 27만원에 불과합니다. 분명 총급여는 5500만원을 넘지 않고 부양가족도 있는데, 1년 사이 세부담이 33만원 늘었습니다. 최 부총리가 언급한 '아주 일부 근로자'에 A씨도 포함된 겁니다.

 

실제로 주위를 살펴보면 세부담이 늘어난 직장인들이 수두룩합니다. 정부의 시뮬레이션이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얘기죠. A씨의 사례를 기획재정부 담당 간부에게 전달했더니, 고개를 갸우뚱하더군요. 분명 정부는 1300만명의 세부담이 줄어든다고 했는데, 직장인들의 체감 세부담은 확연히 다르게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2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긴급브리핑을 갖고, 연말정산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이명근 기자 qwe123@

 

◇ 자녀 공제 20만원, 경로우대 150만원

 

정부의 계산과 달리 근로자들의 연말정산 불만이 상당한 만큼, 무언가 대책이 필요했습니다. 최 부총리가 이날 새롭게 내놓은 대안은 자녀수와 노후대비 관련 공제항목과 공제 수준을 조정하는 것입니다.

 

현재 자녀세액공제는 1명에 15만원이고, 2명 30만원, 3명 50만원, 4명 70만원 등으로 짜여져 있습니다. 이 규정을 1명에 20만원, 2명 40만원, 3명 60만원, 4명 80만원 정도로 늘리는 방안이 유력합니다. 다자녀만 우대하는 취지라면 1명과 2명의 세액공제액은 현행대로 두고, 3명 이상일 경우 공제폭을 더욱 확대할 수도 있습니다. 이번 연말정산부터 없어진 출산 공제(1인당 200만원)를 세액공제 방식으로 부활시키는 방안도 검토 대상입니다.

 

노후와 관련해서는 가장 대표적인 것이 경로우대 추가공제인데요. 만 70세 이상의 부양가족이 있으면 100만원을 추가로 공제하는 규정인데, 이것을 기본공제 수준인 150만원이나 장애인 공제와 같은 200만원으로 올리는 것이 대안으로 꼽힙니다.

 

직장인이 직접 노후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연금저축 세액공제의 한도를 400만원에서 500만원으로 올리거나, 세액공제율 12%를 15%로 올릴 수도 있습니다. 정치권에선 주로 부모나 자녀에게 지출되는 의료비나 교육비 세액공제율을 현행 15%에서 20% 이상으로 높이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는데요.

 

문제는 시행 시기입니다. 관련 법 개정안이 연내 국회를 통과하더라도 내년 소득분부터 적용되기 때문에 2017년 초 연말정산에서나 혜택이 주어집니다. 근로자 입장에서는 너무 늦게 혜택을 받게 되는데, 1년 정도 앞당기는 것도 불가능하진 않다고 합니다.

 

납세자에게 손해를 끼치는 게 아니라 이익을 주는 법안인 만큼, 소급 적용하더라도 기술적으로는 문제가 없다는 얘깁니다. 실제로 월세 세액공제의 경우 지난해 말 국회를 통과했지만, 소급 입법을 통해 올해 초 연말정산(2014년 소득분)부터 근로자들이 혜택을 받은 사례도 있습니다.

 

▲ 연말정산에서 세액을 환급받는 근로자는 2년 연속 줄어든 반면, 세금을 더 납부하는 근로자는 점점 늘고 있다.

 

◇ 정부는 간이세액표만 '만지작'

 

정부와 국회가 뒤늦게 연말정산 논란을 잠재울 대안을 마련하고 있지만, 당장 올해 연말정산에선 근로자들에게 아무런 혜택도 없습니다. 연말정산 후 오히려 세금을 납부하는 근로자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분할 납부'도 검토하고 있는데, 이 마저도 법 개정 사항이라 최소 1년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렇다고 정부가 마냥 손 놓고 관망할 순 없기 때문에 부랴부랴 내놓은 것이 '간이세액표 개정'입니다. 간이세액표란 회사에서 매월 근로자에게 지급하는 원천징수 세액의 기준표인데, 이걸 조정하면 연말정산 환급액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관련기사☞ [Inside story] 공포의 연말정산, 간이세액표로 해결될까

 

매월 원천징수 세액을 1만원씩 올리면 연말에 12만원을 더 환급받을 수 있지만, 실제 세부담이 달라지는 건 아니라서 별다른 효과는 없습니다. 기재부 당국자들도 간이세액표 개정이 '조삼모사'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일단 정부가 권한을 쥔 시행령 개정사항이기 때문에 한번 들여다본다는 건데요.

 

기재부에선 일단 간이세액표를 계산할 때 근로자의 의료비나 교육비 등 각종 공제항목들을 넣어서 시뮬레이션한 후 현실에 맞게 조정할 계획입니다. 하지만 어떤 결과가 나와도 근로자의 불만을 해소할 근본 대책이 아니라는 점에서 정부로서도 고민이 많다고 합니다. 괜히 간이세액표를 개정한다고 발표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 '받아쓰기' 된 연말정산 신고서

 

연말정산에 대한 기대 심리가 크게 위축된 만큼, 근로자 입장에선 소득공제 신고서를 작성하는 것도 더 귀찮아질 수 있습니다. 요즘 연말정산은 국세청의 간소화 서비스로 인해 한층 수월해졌지만, 반대로 국세청이 모든 자료를 갖고 있으니 굳이 근로자가 해야하는지 의문스럽다는 반응도 있습니다.

 

막상 연말정산 신고서를 쓸 땐 대부분 국세청에서 받은 자료를 기반으로 하는데, 굳이 근로자에게 '받아쓰기'를 강요하는 것은 넌센스입니다. 국세청에서 다운받은 자료를 다시 국세청에 제출하는 시스템 역시 불필요한 행정력 낭비라는 얘기가 나오는데요.

 

지난해 9월 국무회의에는 '정부 3.0 발전계획'의 일환으로 국세청이 연말정산 초안을 작성해 근로자에게 통보하고, 해당 근로자가 확인해 일부 수정해서 다시 제출하는 아이디어가 보고됐습니다. 소득세의 '자진신고' 개념을 흐트리지 않으면서도 1000만명이 넘는 근로자들의 불편함을 덜어줄 수 있겠죠.

 

근로자 1000만명의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 획기적 아이디어지만, 아직 정부 내에선 무르익지 않았습니다. 기재부 관계자는 맞벌이 부부의 부양가족이나 교육비 지출 내역 등 근로자가 확인하고 공제받아야 할 부분이 있기 때문에 연말정산은 직접 하는 게 좋다고 합니다. 연말정산에 대한 근로자의 불만과 불편함을 해소하려면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 많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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