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정산에 임하는 근로자들에게 불행을 안겨준 원인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정부가 연말정산 환급액을 현실화하고, 각종 공제 방식과 규정을 바꾸는 등 복합적인 요인이 한꺼번에 폭발한 것이다.
세금을 걷기 위한 정부가 양손에 서슬퍼런 가위와 바리캉을 들고 다가오니, 거위털이 제대로 뽑힐 리 없다. 의욕만 앞세운 증세 조치는 오히려 근로자들의 반감만 키우며 '연말정산 대란'을 몰고 왔다.
조세전문가들은 한 가지씩 차근차근 시행했다면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조언한다. 근로자의 민심을 생각하지 않고 세수 확보에 대한 조급증까지 겹치면서 화를 자초했다는 분석이다.
▲ 삽화: 김용민 기자/kym5380@ |
◇ 아무도 몰라주는 간이세액표
2012년 9월 간이세액표를 개정하기 직전 기획재정부 세제실 내에서는 이견이 많았다. 간이세액표를 현실에 맞게 고치면 근로자의 원천징수 세액과 연말정산 환급액이 동시에 줄어들게 되는데, 정작 근로자들에게 필요한 조치인지 의문 부호가 붙었다.
매월 찍히는 원천징수 세액을 줄이더라도 근로자들이 기뻐하기는 커녕, 연말정산 환급액이 줄어든다고 불만을 가질 것이라는 예상이었다. 실제로 총급여 4000만원 직장인(4인 가구)의 원천징수 세액은 매월 10만원에서 4만6000원으로 절반 넘게 줄었다.
근로자 입장에선 월급 명세서에서 5만원의 세액이 감소하는 것보다 연말정산에서 60만원의 세금 환급 기회를 잃어버리는 것이 더 크게 느껴졌다. 연말정산에서 세금을 돌려받는 재미가 사라진 근로자들은 정부의 방침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게다가 2013년부터 소득세 특별공제 종합한도가 신설되면서 의료비와 교육비, 보험료 등의 공제가 많은 직장인들은 세부담이 더욱 늘었다. 아무리 공제를 많이 받아도 2500만원 한도 내에서만 가능해지자 부양 가족이 많은 직장인의 연말정산 환급액도 크게 감소했다.
▲ 출처: 기획재정부 |
◇ 근로소득공제로 '베이스' 확대
이번 연말정산이 근로자의 세부담이 급격히 늘어난 원인은 2013년 세법개정안이 결정타였다. 연말정산 세액을 계산하는 과정에서 초기 단계인 근로소득공제를 건드린 것이다. 당시 기획재정부는 총급여 500만원 이하의 근로소득공제율을 80%에서 70%로 낮추고, 각 구간별 공제율도 하향조정했다.
총급여가 3000만원인 근로자는 1125만원의 근로소득공제를 받다가 2013년 소득분부터 975만원만 공제받게 됐다. 세금 계산의 기준이 되는 과세표준이 150만원 늘어나면서 소득세 부담이 그만큼 커졌다. 과세 베이스가 높아지는 현상은 소득세를 내는 모든 근로자에게 똑같이 나타났다.
지난해까지 총급여 3000만원 수준의 소득세를 내던 근로자가 갑자기 총급여 3150만원에 해당하는 소득세를 내야하니, 세부담이 늘 수밖에 없었다. 근로소득공제율 조정은 간이세액표 개정과 더불어 연말정산 세부담을 늘리는 시너지 효과를 가져왔다.
▲ 출처: 기획재정부 |
◇ 세액공제는 좋은데..공제율 '찔끔'
정부가 기존 소득공제 방식을 세액공제로 바꾸는 방침에 대해서는 전문가들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비용 성격의 소득공제 혜택은 상대적으로 고소득자에게 돌아가는 반면, 세금 자체를 깎아주는 세액공제는 저소득자와 고소득자에게 똑같은 혜택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가령 교육비로 1000만원을 썼다면 최고세율 38%인 고소득자는 소득공제로 380만원의 혜택을 보지만, 최저세율 6%인 저소득자에게 돌아가는 혜택은 60만원에 불과하다. 그런데 정부가 내놓은 세액공제 방식은 소득에 상관없이 똑같이 15%의 공제율을 적용해 150만원씩 세액에서 빼준다.
다만 정부의 시뮬레이션 과정에서 이미 상당수 근로자의 세부담 급증이 예견됐다. 보험료와 의료비·교육비의 특별공제율을 12~15%로 정하고, 출생공제와 자녀양육비·다자녀추가 공제 대신 도입한 자녀세액공제도 1인당 15~20만원으로 정했다. 그 결과 총급여 3450만원이 넘는 근로자는 대부분 세부담이 늘었고, 그나마 조세저항에 대한 '리콜'을 통해 총급여 5500만원 수준으로 세부담 확대 대상이 올라간 것이다.
이번 연말정산에서 세부담에 대한 논란이 거세지자 정치권에선 자녀세액공제율을 늘리고, 출생공제도 부활키로 했다. 야당에서는 의료비와 교육비 등 특별공제율 인상도 추진중이다. 애초부터 세액공제 폭을 지난해와 비슷한 세부담 수준으로 정했다면 연말정산 대란은 막을 수 있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국세청 관계자는 "연말정산에서 세부담이 늘어나는 제도는 정무적으로 시차를 뒀다면 불만을 최소화했을 것"이라며 "다자녀가구를 정책적으로 권장하면서도 설계가 정교하지 못한 부분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