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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무산시킨 1조 7천억원의 추징

  • 2015.07.23(목) 08:35

[M&A와 세금]③-2 기록적 세금 부른 '역합병'
과세당국이 스스로 논리 무너뜨려..결국 과세철회

돌이켜 보면 합병과세와 관련해 '전무후무'한 사례가 있다. 최종적으로 세금을 추징하기 전에 부과취소가 됐을 뿐, 과세가 예고됐던 금액은 '경악'할 수준이었다. 국세청이 지난 2008년 하나은행에게 부과하려던 1조 7000억원의 세금이다.

 

국민은행-국민카드 합병과 관련해 4000억원대의 세금이 부과돼 역대 최고액이라 불렸지만, 하나은행에 대한 과세가 현실화됐다면 비교 자체도 되지 못했을 것이다. 1조 7000억원은 현대자동차가 지난 1분기 내내 차를 팔아 벌어들인 영업이익(1조 5880억원)보다도 큰 금액이다.

 

 

# '역합병' 대명사가 된 하나은행-서울은행 합병

 

하나은행은 한일월드컵이 열리던 2002년에 서울은행과 합병했는데 그 방식이 좀 독특했다. 적자 법인인 서울은행이 흑자 법인인 하나은행을 흡수하지만 합병 법인의 이름은 하나은행이었다. 피인수기업이 주인공인 합병, 흔히 '역합병'이라고 부르는 합병방식이다.

 

역합병은 세법에서 기본적으로 세금회피를 위한 수단으로 규정돼 있다. 결손이 난 기업은 결손 이후 5년 동안 발생한 이익에서 결손금을 공제한 후 세금을 낼 수 있는데, 이익이 있는 기업과 합병하게 되면 갑자기 많은 이익이 생겨 5년까지 기다릴 필요 없이 한번에 많은 공제를 받을 수 있게 된다. 5년 간 나눠서 공제를 받는 회사와의 형평성의 문제가 발생하는 것. 그래서 역합병은 이월결손금 공제를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하나은행 이전에 신한은행과 조흥은행의 합병 역시 조흥은행이 존속법인이었고, 이름은 신한은행으로 남긴 역합병이었다. 하지만 신한은행과 조흥은행은 둘 다 흑자법인이어서 이월결손금이 문제가 되지 않았다. 때문에 하나은행의 합병은 어느 때보다 이목을 집중시켰다.

 

국세청은 합병이 이뤄진 지 6년만인 2008년 3월에 하나은행에 대한 세무조사를 실시했고, 2002년 합병과정에서 역합병을 통해 탈세했다고 보고 가산세를 포함해 무려 1조7000억원을 추징하겠다고 예고 통지했다.

 

# 역합병 조건 갖췄지만 역합병은 아니다?

 

천문학적 세금을 군말 없이 낼 기업이 있을까. 하나은행은 즉각 반발해서 과세전 적부심사(과세가 이뤄지기 전에 국세청에 다시 한 번 적법한 과세인지를 심사해달라는 요청)를 청구했다.

 

역합병 자체가 사실상 탈세를 위한 수단으로 규정돼 있었기 때문에 하나은행과 서울은행의 합병은 결손금을 어떻게 처리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애초에 역합병이나 아니냐에 쟁점이 있었다. 하나은행은 역합병이 아니라고 주장했고, 국세청은 역합병이기 때문에 그동안 공제받은 세금을 토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법이 규정하는 역합병은 ▲적자회사가 흑자회사를 합병하는 형식이어야 하고 ▲합병법인의 이름을 흑자회사 것을 사용해야 하며 ▲합병당사자가 특수관계자여야 한다는 세가지 조건을 갖춰야 한다.

 

하나은행과 서울은행의 합병은 앞의 두 가지 조건은 확실하게 갖췄다. 합병 당시 적자법인인 서울은행을 등기부상의 존속 법인으로 남기고, 흑자 법인인 하나은행을 소멸시켰고, 합병 본계약 체결 후 석달여 만에 합병 서울은행은 하나은행으로 이름을 바꿨다. 결국 문제는 마지막 조건인 특수관계자냐 아니냐였다.

 

지금은 세법에서 사라졌지만 2002년 당시 세법에는 '동일인이 2 이상의 법인에 대한 발행주식 총수 또는 출자총액 30% 이상을 각각 소유하고 있는 법인간의 합병'이라는 '특수관계자' 요건이 정의돼 있었다. 하나은행과 서울은행은 서로 지분관계가 없었지만, 합병 당시 예금보험공사가 서울은행 지분 100%와 하나은행 지분 54.6%를 보유하고 있었던 것. 예보를 매개로 하면 무조건 특수관계가 되는 사이였다.

 

문제는 예보의 보유주식이 보통주가 아닌 우선주였다는 것인데, 하나은행 측은 의결권이 없는 우선주는 특수관계자 요건인 30%에서 빼야 한다고 주장했고, 국세청은 법인세법상 우선주를 배제하는 규정이 없고, 2006년 세법개정으로 특수관계자요건이 빠진 점을 감안해 과세가 가능하다고 봤다.

 

 

# 정부가 발목잡은 정부의 과세

 

결과부터 말하면 국세청은 하나은행이 제기한 과세전적부심에서 하나은행의 이의제기를 받아들였다. 1조7000억원의 세금은 과세처분도 되기 이전에 취소됐다. 결정을 내리는데 걸린 시간은 딱 3개월이었다. 국세청이 왜 과세를 취소했는지에 대해 구체적인 설명은 하지 않았지만 과세취소의 가장 큰 근거는 아이러니하게도 정부의 유권해석이었다.

 

하나은행은 합병이전에 당시 재정경제부(現 기획재정부)와 국세청으로부터 역합병이 아니라는 유권해석을 받아뒀는데, 이 것이 훗날 정부 과세에 걸림돌이 된 것이다. 게다가 당시 서울은행 민영화를 추진하던 정부가 공적자금관리위원회를 통해 서울은행을 존속법인으로 하는 합병을 할 경우 이월결손금 공제가 가능하다는 의견까지 제시해 놓은 상황.

 

국세청이 합병 5년 뒤 특수관계여부를 따져 과세하려 했지만, 이미 국세청 스스로를 포함해 권한이 있는 정부기관의 유권해석이 기업의 방패막이로 버티고 있었던 셈이다. 스스로가 만들어준 방패를 깨고 과세할 경우 '신의성실의 원칙'에 어긋나게 되는 것이다. 정부가 기업 구조조정을 진행하면서 발생한 세금문제는 스스로 과세하기 어렵다는 결과가 또 나온 것. 국민은행 등 은행들의 카드사 합병때와 같은 결론이다.

 

앞뒤가 다른 논리를 제공해 사상 초유의 부실과세를 만들뻔 했던 정부는 1조7000억원짜리 소를 잃고 나서 뒤늦게 외양간을 고쳤다. 정부는 2009년 세법개정을 통해 기업 간 합병 시 결손금은 합병법인이 원래 영위하던 사업의 소득에서만 덜어낼 수 있도록 이월결손금 공제제도를 개편했다. '역합병'을 통한 절세는 이제 쉽지 않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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