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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은행이 외환은행보다 복잡했던 이유

  • 2015.07.22(수) 13:59

[M&A와 세금]③-1 '편법'일 뿐 '불법' 아니었던 합병
국민은행, 고의로 회계처리 위반했지만 세금은 합법 결론

1997년 외환위기와 2003년 카드사태를 겪으면서 기업의 인수합병(M&A)은 급증했다. '대마불사'의 원칙이 깨지면서 쓰러진 대기업들의 매각과 합병이 줄을 이었고, 길거리 모집 등으로 신용불량자를 양산한 카드사들은 은행과 합병하면서 부실을 털었다.

 

이 모두는 상당한 연결고리를 갖고 있었다. 외환위기 이후 정부는 기업 부채감축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었고, 기업 대출을 대신해 줄 대상을 찾던 은행들은 신용카드사의 카드채를 매입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은행이란 든든한 뒷배를 업고 영업전선을 무한 확장했던 카드사들로 인해 신용불량자들이 쏟아졌고, 결국 카드사태가 터진 것이다.

 

당시 전업카드사인 삼성카드는 삼성생명 등 그룹 계열사 증자로 위기를 넘겼지만, 다른 카드사들은 계열은행으로 편입되는 방식을 선택했다. 국민카드는 국민은행, 외환카드는 외환은행, 우리카드는 우리은행에 각각 흡수합병 됐다. 이들의 합병은 일부 편법적인 과정을 거쳤음에도 불법이라는 오명은 쓰지 않았다. 정부 주도의 구조조정이 파생시킨 합병이라는 명분이 쟁송 과정에서 유리하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 대손충당금으로 세금 줄인 은행

 

부실기업의 인수합병은 구조조정의 자연스러운 결과물이지만, 문제는 카드사와 계열은행의 합병처리 방식에서 불거졌다.

 

채권 중 돌려받지 못할 외상매출(대손)채권에 대해서는 대손충당금을 쌓아 두고 미래의 손실을 대비할 수 있는데, 이를 과다하게 설정하는 방식으로 분식회계와 탈세를 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대손충당금은 순이익을 차감해 회계처리되기 때문에 법인세를 줄일 수 있다.

 

국민은행의 경우 2003년 9월 국민카드와의 합병과정에서 합병 전 국민카드 회계장부에 없던 대손충당금을 9320억원이나 회계처리해서 법인세를 신고했다. 당시 금융감독원은 국민은행이 탈세를 위해 고의적으로 분식회계를 했다며 중징계를 내렸고, 행장이 퇴진하는 사태로까지 불똥이 튀었다.

 

탈세의혹이 제기됐는데 세무당국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 국세청은 2007년 국민은행을 세무조사했고, 합병과정의 대손충당금 과다계상을 통한 법인세 탈루혐의로 4241억원의 법인세와 이에 부가되는 2억6000여만원의 농어촌특별세를 추가로 부과했다. 단일 세무조사 추징액으로는 역대 최고액이었다. 특수관계자와의 거래를 통해 고의로 소득을 감소시켰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국세청의 이 과세는 잘못된 것이었다. 국민은행은 억울하다며 소송을 제기했는데, 1심과 2심에서 모두 이겼고, 지난 1월 대법원에서까지 최종 승소하면서 부과된 세금이 모두 잘못됐다는 결론을 받았다.

 

법원이 국민카드의 손을 들어 준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법원은 판결문에서 쟁점이 된 대손충당금 설정의 선택권이 납세자에게 있다는 점과 함께 당시 은행의 카드사 합병이 이른바 '카드사태'를 수습하려는 정부의 요구에 따라 진행됐다는 점을 감안했다고 적었다.

 

# 쉽게 돌려받은 외환은행, 갈 데까지 가서 돌려받은 국민은행

 

카드사태 후 계열 카드사와의 합병과정에서 대손충당금으로 세금을 줄인 은행은 또 있다. 외환은행이다.

 

외환은행은 국민은행이 국민카드를 합병했던 것보다 조금 뒤인 2004년 3월 외환카드를 흡수합병했다. 외환은행 역시 대손충당금을 높게 책정해 세금을 회피했다며 국세청으로부터 1290억원이라는 거액의 세금을 추징당했다. 국민은행의 4243억원보다는 적지만 결코 만만치 않은 추징액이다.

 

다만 외환은행은 법원까지 가지 않고도 낸 세금을 모두 돌려받았다. 외환은행은 2007년 6월 국세청으로부터 세금을 부과받고 두 달 뒤 국세심판원(現 조세심판원)에 심판청구를 진행했으며, 심판원은 2009년 9월에 외환은행의 손을 들어줬다.

 

흥미로운 것은 국민은행 역시 법원으로 가기 전 국세심판원의 문을 두드렸었지만 외환은행과는 전혀 다른 결론을 얻었다는 점이다. 국민은행도 외환은행과 같은 시점인 2007년 8월에 국세심판원에 심판청구를 냈지만 심판원은 국민은행의 청구가 이유 없다며 기각했다. 외환은행의 손을 들어 준지 불과 6개월 후에 내린 결론이다.

 

심판원은 왜 외환은행의 대손충당금은 괜찮고, 국민은행의 대손충당금은 안된다고 했을까.

 

 

# 괘씸죄 적용받은 국민은행, 과세당국 자극했다

 

외형적으로 국민은행과 외환은행의 합병과세 쟁점은 유사하다. 대손충당금을 법에서 정한 범위를 넘어서서 과도하게 쌓는 방법으로 세금을 탈루했다는 혐의로 세금을 추징당했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 보면 둘의 차이가  적지 않다.

 

당시 국세심판원의 결정문을 보면 국민은행은 일종의 괘씸죄를 적용받은 것으로 보인다.

 

기업의 결손금은 해당 사업연도가 지난 후에도 일정기간 법인소득에서 공제가 가능한데, 국민은행은 국민카드와의 합병에서 세법상 국민카드의 결손금을 이월해서 공제받지 못하게 되자 국민카드의 부실채권을 승계해 공제처리한 후 법인세를 신고했다. 결과적으로 이 부분은 대법원의 결정에 따라 국민은행의 선택권임을 인정받은 부분이다.

 

문제는 국민은행이 대손충당금 계상방법으로 이월결손금 대신 채권승계를 결정하게 된 배경이었다.

 

국민은행은 합병과정에서 발생할 세금문제를 예방하기 위해 세금을 신고납부하기 전에 국세청에 유권해석을 받아뒀는데, 이때 질문 자체가 거짓이었다. 국민은행은 대손충당금이 이미 적립돼 있는 국민카드의 부실채권을 승계하는 것처럼 사실과 다르게 질의했고, 이에 따른 국세청의 답변을 과세불복(심판청구)의 근거로 삼았다.

 

게다가 금융감독원도 2004년 국민은행 종합감사 후, 법인세 회피를 위해 국민카드 채권에 대한 대손충당금을 임의로 적립하지 말고 결산할 것을 요구한 적이 있다. 물론 국민은행은 이것 또한 위반해 당시 은행장 징계를 비롯해 과징금까지 부과받았다.

 

 

# 대손충당금 쟁점 해소돼..제2의 국민은행 없을 듯

 

결과적으로 회계처리기준을 위반해 처리한 내용을 바탕으로 과세당국까지 속이는 거짓 질문을 했고, 이를 근거로 세금을 못 내겠다고 불복한 것이다. 쟁점의 핵심이 되는 대손충당금 설정방식의 결정권이 납세자인 국민은행에 있다는 법원의 결론이 있지만, 과정을 볼 때 과세당국으로서는 과세는 물론 1, 2, 3심까지 가서 끝장을 보지 않고서는 안 될 내용이었던 셈이다.

 

외환은행의 경우는 좀 달랐다. 외환은행도 대손충당금 한도액과 관련해 납세자의 선택권을 인정하느냐 마느냐의 문제였지만, 둘 중 어느 하나에 회계처리 위반 사실이 있었거나 과세당국을 기만하는 거짓 유권해석 요청도 없었다.

 

기획재정부 세제실과 국세청 출신들이 잔뜩 포진돼 있는 국세심판원이 외환은행과는 다른 결론을 내렸던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논란이 됐던 국민은행이나 외환은행의 카드사 합병과 같은 과세쟁점은 다시 나오기는 어렵게 됐다. 정부는 국민은행 합병 사건 이후 세법개정을 통해 대손충당금의 손금산입의 범위를 구체적으로 제한하는 내용으로 규정을 정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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