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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세점, 왜?]④ 그들만의 리그, 불편한 진실

  • 2015.11.25(수) 18:05

해외브랜드유치, 거액의 투자자금과 리베이트
대기업에 특화된 산업, 경쟁이 관건
전매특허방식 자체의 경매방식 전환도 요구

면세점 산업은 대기업에 특화된 산업이다. 현실적으로 중소기업이 살아남기 어려운 환경이고, 규모의 경제가 먹히는 시장 구조 때문이다. 그동안 대기업이 독과점하고 있는 면세점 시장에 변화를 주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다양한 시도가 있었지만 대부분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2012년에는 중소·중견기업 지원을 위해 이들에 한해서만 신규 시내면세점 13개를 추가로 허가해주기로 했지만 살아남은 곳은 절반이 채 안된다. 막상 입찰이 진행되니 요건을 갖춘 업체가 적어서 11개의 특허만 허용됐고, 그마저도 4개 업체는 개업도 못하고 자진해서 특허를 반납했다. 또 충남 지역 1곳은 1년동안 개업을 못하다가 결국 특허가 취소됐다.

 

 

# 해외브랜드, 투자금, 그리고 리베이트..'불편한 진실'

 

중소기업이 면세점 시장에서 성공을 거두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해외 유명브랜드가 면세점 시장을 좌우하는 구조적인 문제에서 출발한다.  면세점 매출의 80%를 해외 유명브랜드가 차지한다. 이른바 명품이다. 면세점에서 명품가방이나 화장품 하나씩은 사 들고 들어와야 해외여행했다는 소릴 들을 정도로 소비문화로 자리잡은 상태다.

 

외국인들도 마찬가지다.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들도 면세점에서 주로 구매하는 것은 한국산 제품이 아니라 유럽산 명품 화장품과 가방, 명품 시계 등이다. 그나마 중국인들에게 한국 화장품이 인기를 끌면서 일부 국산 화장품 브랜드가 선전하고 있지만 해외 명품 브랜드와 비교하면 상대가 안 된다. 관세청이 집계한 2013년 원산지별 면세점 매출순위를 보면 수입품이 77.4%로 압도적이다.

 

중소기업들도 해외 브랜드 제품을 팔면 되지 않겠느냐는 질문은 업계의 현실에 비춰보면 비상식적이다. 해외 유명 브랜드의 콧대는 대기업들조차 바짝 엎드릴 정도로 높다. 루이비통 회장이 내한할 때면 재벌가의 면세점 사장들도 공항까지 직접 뛰어가는 것이 현실이다.

 

“해외 브랜드는 물론 국내 유명브랜드 유치도 불가능했다. 입점 자체를 거부당했다”는 중소기업 면세점 관계자의 말은 불편하지만 사실이다.

 

중소기업이라도 서울에서 하면 좀 다르지 않을까라는 질문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서울에서 면세점을 개업하려면 지방에서보다 훨씬 많은 투자금이 필요하다. 이번에 서울시내 면세점 특허를 따낸 신세계는 약 2700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그마저도 신세계가 원래부터 백화점을 하던 자리에 리모델링을 할 계획이기 때문에 비용이 적게 드는 축에 속한다.

 

리베이트로 먹고사는 면세점의 생태도 중소기업을 살아남기 어렵게 만드는 부분이다. 국회와 관세청에 따르면 롯데면세점이 여행사들에게 리베이트로 지불한 돈은 2013년 1392억원이고, 같은 기간 신라면세점도 1180억원을 리베이트로 지불했다. 여행사들을 통해서 관광객을 끌어와야 사업이 된다는 것이다. 지난 7월 하나투어가 파라다이스와 유진그룹을 제치고 중소·중견부문 특허 하나를 따낸 것도 같은 이유로 분석된다. 물론 하나투어의 성공조차 장담하긴 어렵다.

 

# 대기업들끼리라도 경쟁해야 공정

 

정부는 2008년 1월에 면세점과 관련한 중요한 논의를 한 적이 있다. 신규면세점 허가에 대한 기준을 정하는 문제였다. 당시 내국인의 면세점 매출비중이 50%를 넘겼고, 이용자수로는 내국인이 70%를 넘기는 상황까지 왔다.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해 특혜를 주는 산업인데, 본래 취지에 어긋나게 왜곡 운영된 셈이다.

 

이후 면세점의 신규 설치 요건은 대폭 강화됐다. 외국인 관광객의 면세점 매출비중이 50%를 넘거나 지역 외국인 관광객 수가 전년대비 30만명 이상 증가해야만 신규 면세점을 허가해 주게 됐다.

 

덕분에 면세점 시장은 커지는데 롯데와 신라의 독점은 더욱 강화됐다. 신규 설치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2010년대 들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큰손으로 불리는 중국인 관광객이 급격히 늘었고, 매출 50%와 30만명이라는 규제가 뚫렸다. 정부가 무려 15년여만에 처음으로 올해 서울 시내면세점을 신규로 허용해준 이유다.

 

경쟁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어차피 중소기업의 진출이 어려운 산업이라면 어떻게든 진출이 가능하도록 바꾸는 것도 중요하지만 대기업끼리라도 경쟁하도록 해야만 독과점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 특혜산업을 특정 기업만 무한정 누리게 되면 '독점'에 대한 공격은 계속될 수 밖에 없다.

 

현재의 특허방식에 대한 변화를 주문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경매방식으로 바꿔서 경쟁을 유도하고 대신 특허 기간에 대해서는 사업자들의 의견을 반영해서 유연하게 가자는 것이다.

 

서울대 행정대학원 박상인 교수는 “면세점은 특허보다는 경매제로 가야한다. 그래야만 공정한 경쟁이 될 수 있다”며 “경매를 통해 입찰가를 높게 써내는 곳에 사업권을 주면 국가에서는 특혜에 맞는 수수료가 발생하고 업계도 경쟁적으로 발전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면세점의 특허수수료는 매출의 0.05%에 불과하다. 무선전화·와이브로 등의 주파수 이용 기간을 두고 재할당 심사를 받는 통신업체들은 매출액 대비 1~2%씩 할당 대가를 지불하고 있다. 면세점 특허수수료는 5년마다 심사를 받는 홈쇼핑 사업자들이 부담하는 방송발전기금에 비해서도 10분의 1이 채 되지 않는다.

 

이와 관련 관세청 관계자는 “면세점을 특허제가 아닌 경매제나 등록제로 전환하자는 목소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그러나 시장상황이나 여러 가지를 고려해야만 한다. 현재 면세점제도에 대한 연구용역이 진행중이니 결과가 나오면 관계부처와 협의해서 제도변화를 꾀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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