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4월 3차 선정 발표에서는 당초 한 곳에 불과했던 사업자 대상자 수가 윗선의 지시로 위법하게 4곳으로 늘어난 정황이 드러났다. 그 결과 특허를 받은 대기업 면세점인 현대백화점·신세계·롯데 등 세 곳도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이처럼 총 3차례의 심사가 총체적 부실로 드러난만큼 이 과정에서 부여된 5개사에 대한 특허를 취소내지 반납토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하지만 관세청은 특허를 취소할 계획이 없다는 입장이다. 이번 사건과 별개로 오는 12월 31일 특허기간이 만료되는 롯데면세점 코엑스점에 대해서도 현행법의 범위 내에서 사업자 공고와 선정을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 대기업 계열 면세점 7곳 중 5곳 연루
2017년 현재 서울 시내면세점은 13곳이다. 이중 대기업이 10곳을 운영하고 있다. 호텔롯데·HDC신라면세점·호텔신라·한화갤러리아타임월드·두산·신세계DF·현대백화점 등 7개사가 특허를 가지고 있다. 나머지 3곳은 동화면세점과 SM면세점, 탑시티면세점 등 중소·중견기업 몫이다.
기업별로는 호텔롯데가 코엑스점·소공점·월드타워점 등 3곳으로 가장 많은 면세점을 운영 중이다. 신세계DF가 명동점과 신규 센트럴시티점 등 2곳의 특허를 보유해 그 뒤를 잇고 있다. 나머지는 5개사가 각각 1곳씩 운영 중이거나 개장을 준비 중이다.
이 가운데 HDC신라면세점과 호텔신라 등 2개사를 제외한 대기업 계열 면세점 모두가 이번 관세청 비리 사건에 연루됐다. 가장 직접적인 타격을 받은 곳은 두산과 한화다. 롯데와 현대백화점, 신세계DF도 3차 심사에서 간접적으로 이득을 본 것으로 드러났다.
◇ '엎친 데 덮친' 면세점업계
검찰은 12일 감사원의 수사 의뢰를 받고 수사에 착수했다. 중국의 사드보복 영향으로 지난 몇달간 수천억원대 매출손실을 입은 면세점 업계는 때아닌 수사로 당황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책임공방 과정에서 기업 간 비방도 난무하고 있다.
롯데는 이번 감사원 감사 결과를 내심 반기는 분위기다. 관세청이 임의로 특허 발급수를 늘리기로 한 결정이 신동빈 그룹 회장과 박근혜 전 대통령 간 독대보다 앞서 이뤄진 것으로 드러나서다. 또 1, 2차 심사에서는 오히려 부당하게 탈락한 것으로 밝혀졌다. 롯데는 이번 감사원 감사 결과가 면세점 특허 관련 뇌물 공여 혐의를 받고 있는 신 회장의 재판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반면 일각에서는 두산과 한화를 추궁할 것이 아니라 롯데가 왜 높은 점수를 받고도 떨어졌느냐는 데 주목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1차 심사 당시 롯데는 소공동 본점의 특허만료를 앞둔 상황에서 독과점 문제가 불거지자 참여 자체를 고민한 것으로 안다"며 "공고가 끝날 무렵까지 사업보고서 제출을 저울질했다. 떨어지고 나자 오히려 잘 됐다는 소리를 했다는 소문이 돌았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이후 2차 심사에서도 떨어지자 경각심을 갖고 3차 심사를 앞두고 청탁을 고려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으리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 관세청 "현행법따라 실무 계속"
업계에서는 이번 사태로 향후 면세점 업계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 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우선 특허 취소 가능성이다. 현행 관세법 제178조상 '거짓이나 그 밖의 부정한 방법으로 특허를 받은 경우' 면세점 특허를 취소하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관세청은 "특허 취소는 없다"며 선을 긋고 있다. 관세청은 행정법상 '신뢰보호의 원칙'과 대법원 판례 등에 따라 취소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관세청 관계자는 "감사원의 특허 취소 권고가 나온 것도 아니고, 우리도 취소할 계획이 없다"며 "업체들은 특허만료 시기까지 사업을 하면 된다"고 말했다. 이어 "행정청의 잘못된 행정행위로 누군가 이득을 봤다고 하더라도 선의의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그 이득을 거둬들일 수는 없다"고 밝혔다.
아울러 관세청은 검찰 수사에 협조하는 한편 본래 업무는 종전 그대로 진행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올해 말 특허가 만료되는 롯데면세점 코엑스점 관련 신규 사업자 공고도 원칙대로 추진한다. 다만 시점은 불투명하다. 관세청 관계자는 "롯데면세점 코엑스점 공고는 법 규정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진행한다"면서 "원래 이맘때쯤 공고를 내야 하는데 상황이 상황인만큼 시점을 검토 중이다. 시점은 장담해 말하기가 어렵다"고 밝혔다.
다만 시기가 늦어지는만큼 차질이 빚어지는 것이 불가피한데다 이번을 계기로 관련 정책을 전면 수정해야 한다는 것이 면세점업계의 시각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사업부서에서 제안서를 만들고 이를 다시 경영자에게 넘겨 손익 등을 따져 결정하는 과정에 적어도 두 달은 족히 걸린다"며 "이렇게 제출된 사업보고서를 관세청이 검토하는 데도 현장실사와 논의 등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통상 6~7개월은 잡아야 한다. 미뤄지면 또 '졸속 검토' 이야기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심사제도에 문제가 있다는 점이 드러난 것"이라면서 "이번 사건을 계기로 현행 면세점 정책을 원점 재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면세점 심사주기를 종전처럼 10년 단위로 되돌려놓거나 아예 시장에 맡겨 신고제로 운영하는 것이 어떨까 싶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