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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애들 신혼집 해준 게 탈세라고?!

  • 2016.10.26(수) 08:03

연간 30만쌍 결혼..국세청 전수조사 불가
증여세 자진신고 안하면 무조건 위법

# 이 기사는 2016년 10월 26일 세무회계 특화 신문 택스워치 2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결혼의 계절 10월이 돌아왔지만, 신혼집을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다. 집값은 여전히 고공행진이고 정부는 가계부채 대책 명목으로 은행대출 규제를 더욱 강화하고있다. 보금자리론과 같은 정책자금대출은 더 까다롭다. 적지 않은 예비부부들이 자의반 타의반으로 부모에게 손을 벌리는 현상이 사라지지 않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강남구 역삼동에서 공인중개사 사무소를 운영하는 손모씨는 “요즘 같은 결혼시즌이 되면 중소형 주택매매 수요가 늘어나는 게 사실”이라며 “어제도 아버지에게 집값 절반을 지원받은 새신랑이 계약하고 갔는데, 그 정도면 그래도 양반이다. 자기 돈 한 푼 없이 은행 대출과 부모 지원만으로 집 장만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전했다.

그런데 자녀 결혼자금 지원은 단순히 인생의 새출발조차 부모에게 기댄다는 비판을 넘어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바로 ‘탈세’다. 부모로부터 대가 없이 현금이나 부동산을 물려받는 것은 불로소득에 해당하기 때문에 당연히 증여세 과세대상인데 제대로 신고하고 세금을 내는 경우는 많지 않다.

2014년 기준 국세청에 증여세를 신고납부한 20~30대는 3만명도 되지 않는데, 같은 기간 결혼식을 올린 부부는 30만쌍을 웃돈다. 부모 자식 간에 증여세를 면제받을 수 있는 금액은 5000만원까지인데 국내 집값 등을 감안하면 상당수는 세금을 내지 않고있다고 봐야한다. 적지 않은 신혼부부들이 세법을 어기고 있는 것이다.

현장에서 느끼는 탈세의 체감도는 더 높다. 경기도 고양시에서 22년째 공인중개업을 해 온 정모씨는“30대 초반에 집을 사는 사람들이 주택자금을 마련하는 첫번째 방법이 부모님으로부터의 융통이다. 대략 60%는 증여세 신고납부를 하지 않는다고 봐야한다”며 “대부분 관습적으로 세금 낼 필요성을 못 느끼는 것이 사실이고, 중개사무소에서도 그런 얘길 잘 하지 않는다. 집 잘 구해주는 게 우선일 뿐”이라고 말했다. 


◇ 연간 30만쌍 결혼..국세청 전수조사 불가

부모의 자녀 결혼자금 증여는 왜 탈세의 온상이 됐을까. 국세청은 모르는 일일까. 아니면 알면서도 용인해주는 무엇인가가 있는 걸까. 정답은 후자에 가깝다. 

사실 국세청도 부모 자식간의 결혼자금 증여에 대한 내용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다만 행정력의 한계 때문에 전수조사를 못하고 있을 뿐이다. 인륜대사인 자녀 결혼을 챙겨주는 부모 마음을 조금이나마 헤아리는 관습법적 측면도 고려됐을 수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조사인력 부족이다.

국세청 직원은 2만여명인데 해마다 30만쌍이나 쏟아지는 신혼부부들의 뒷조사를 다 할 수는 없다. 증여세 말고도 법인세, 소득세, 부가가치세 등 조사할 일이 너무 많다. 경찰이 전국의 도로를 차단하고 음주 운전자를 전수조사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 이유다.

국세청은 이런 한계를 반영하면서도 최대한의 행정집행 효과를 내기 위해 내부적으로 일종의 사무처리 가이드라인을 두고 있다. 특정 수준 이하의 사례는 조사의 우선순위에서 제외시켜 고액의 탈세 사례에만 조사를 집중할 수 있도록 조사대상을 좁혀 놓았다. 바로 증여세 사무처리규정이다.

국세청 상속세 및 증여세 사무처리규정 제31조는 세대주를 기준으로 30세 이상인 경우 주택 취득가액 2억원까지, 40세 이상은 주택 취득가액 4억원까지는 자력으로 재산취득이 가능한 것으로 보고 증여받은 것으로 보지 않도록(증여추정 배제) 하고 있다.

다시 말해 나이 서른이 넘었으면 집값 2억원 정도, 또 마흔이 넘었으면 4억원 정도는 스스로 마련했을 것으로 간주해 굳이 그 돈이 어디서 났는지 묻지 않겠다는 것이다.


◇ 위험한 희망고문 '증여추정 배제'

국세청의 사무처리규정은 부모 자식 간 증여세 면제 한도인 5000만원을 기준으로 보면, 사실상 그 4배 혹은 8배 수준으로 증여세 면제한도가 늘어난다. 상당수 국민이 증여세 신고납부를 하지 않았음에도 적발되지 않는 이유다.

그런데 중요한 대목은 국세청 사무처리규청이 4배 혹은 8배까지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규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일손이 부족해서 그정도까지는 굳이 세무조사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지,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세법은 부모 자식 간에는 5000만원까지만 명확하게 증여세를 면제하고 있고, 그것도 10년동안 증여금액을 합산해서 계산한다.

특히 증여세는 국세청이 알아서 떼가는(원천징수) 근로소득세 등과 달리 납세자 스스로 신고 납부하는 세금이기 때문에 국세청이 세무조사를 나오지 않더라도 신고하고 세금을 내야 한다. 신고와 납부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탈세가 된다.

문제는 당장 세무조사를 하지 않는다는 국세청의 행정지침이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킨다는 점이다. 납세자뿐만 아니라 심지어 상당수 세무대리인들도 국세청 사무처리규정을 근거로 세무신고와 납부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상담을 해주고 있다. 

포털 사이트 지식 검색창에는 이 정도는 세무조사 받을 일이 없다는 것을 알려주는 세무상담 사례가 넘쳐난다. 잘못된 정보는 안 걸리면 그만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더욱 확산시킨다.

이와 관련, 국세청 관계자는 “세무사들이 증여세 사무처리규정을 근거로 잘못된 상담을 해주는 경우도 있는데 명백히 불법”이라며 “이럴 경우 납세자는 세법을 어겨 탈세자가 되고, 세무사는 세무사법을 어겨 탈세 조력자가 된다”고 지적했다.

◇ 법대로 하면 무조건 걸린다

실제로 국세청 사무처리규정만 믿고 증여세를 신고 납부하지 않았다가 화를 부른 경우도 적지 않다. 국세청은 매년 증여세 세무조사를 특별기획해 실시하고 있는데, 강남과 신도시 등에서는 매매뿐만 아니라 전월세 보증금에 대해서도 고액인 경우 자금출처를 확인하는 세무조사를 하고 있다.

서울 강남에서 세무사사무소를 운영 중인 한 세무사는 “최근에 강남에서 20대 신혼부부가 8억5000만원짜리 전세 아파트를 계약했는데, 국세청에 신고한 소득은 둘이 합해 1억원도 안됐다”며 “양가 부모가 보증금 대부분인 8억원 정도를 도와준 것인데, 결국 소명을 하지 못해 억대의 세금을 추징당한 적이 있다”고 소개했다.

조세전문 소송대리인으로 활동 중인 고성춘 변호사는 “국세청 내규는 조사할 것이 너무 많은 국세청이 업무 효율화 차원에서 조사의 우선순위만 정해 놓은 것이라고 보면 된다”며 “이것만 믿고 세금을 안 내면 나중에 법원에서 다투고 싶어도 다툴만한 근거가 없다”고 주의를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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