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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스토리]'금의환향' 포켓몬빵의 행동경제학

  • 2022.03.18(금) 06:50

출시 3주만에 450만개 팔려…제조사 주가 들썩
추억 보정·사회 위축 속 '부활 마케팅' 전성기
"미래로 이어지는 현재 만들어야" 아쉬운 목소리도

/그래픽=비즈니스워치

가끔 TV를 보다 보면 시간이 20년 전으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듭니다. 예능 프로그램마다 추억의 가수가 얼굴을 비추고, 이들의 노래가 음원 차트 상위권에 오릅니다. 주말마다 본방을 챙겨 보는 한 드라마는 1990년대 후반의 청춘을 다루고 있고요.

이제 편의점마저 이 시절로 돌아갔습니다. 초등학교·중학교 시절 즐기던 포켓몬빵이 다시 팔립니다. 최근 포켓몬 캐릭터인 '뮤' 띠부띠부씰을 얻은 대학 친구는 단톡방에서 엄청난 부러움을 샀습니다. 수많은 커뮤니티에 포켓몬빵을 찾는 호소문이 올라옵니다. 편의점은 위트 있는 품절 안내문을 내걸었죠. 당근마켓에서는 띠부띠부씰이 몇 배 가격에 팔리고 있습니다. 저도 돈 좀 벌어볼까 하고 편의점 수십 곳을 돌아봤지만 '득템'에 실패했습니다.

포켓몬빵의 기세는 어마어마합니다. 출시 20일만에 450만개가 팔렸습니다. 제조사 SPC삼립의 주가마저 끌어올렸죠. 실제로 SPC삼립은 지난 15일 장 초반 52주 신고가를 새로 썼습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국내·외 주식 시장이 침몰하는 가운데 드물게 주가가 올랐죠. 누군가는 "포켓몬빵이 전쟁마저 이겨낸다"는 농담 섞인 분석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사실 포켓몬빵은 '흥행 보증수표'입니다. 오리지널 포켓몬빵은 1999년 출시됐습니다. 당시 주요 고객이었던 학생들을 지배하던 것이 포켓몬 애니메이션·게임 등이었고요. 이들은 지금 소비 시장의 핵심인 20대 후반~40대 초반 MZ세대로 성장했습니다. 포켓몬과의 추억이 한가득이면서도 구매력까지 든든한 어른이 됐죠. 포켓몬빵의 품귀 현상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포켓몬 띠부띠부씰은 웃돈을 줘야 구할 수 있습니다. /사진=당근마켓 캡처

MZ세대는 왜 포켓몬빵에 열광할까요. 심리학자 등 전문가들은 인간의 본능에서 이유를 찾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과거를 보다 아름답게 기억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안 좋은 기억보다는 좋은 기억을 오래 남기는 것이 사람의 기억 시스템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가운데 가장 아름답게 '추억보정'이 일어나는 시기가 청소년기에서 20대 초반이라고 합니다. 이를 '회고 절정'이라고 부릅니다.

이들에게 1990년대 말~2000년대 초의 기억은 더욱 깊게 각인돼 있습니다. 이 시기는 현대 한국사에서 가장 역동적이었죠. 외환위기 등 어두운 기억과 2002년 월드컵 4강의 영광 등 다양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스타크래프트와 함께 e스포츠가 생기고, 일본 문화가 개방되는 등 문화적 변화도 활발했죠. 이 시기에 가장 친숙했던 콘텐츠인 포켓몬에 대한 기억도 각별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저도 마찬가지고요.

다만 포켓몬빵을 비롯한 최근의 레트로 마케팅의 영향력은 과거보다 더 큽니다. 단순한 추억의 상품이 아니라, 현재의 젊은 층까지 그 시대 문화로 끌어들이는 마력이 있죠. 실제로 '진로 소주'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는 세대가 '진로 이즈백'에 열광하고 있습니다. 1990년대 당시 좀 특이한 가수로 기억됐던 양준일이 '힙함'의 상징으로 떠오르기도 했고요.

이는 사회 분위기의 영향이라는 분석이 많습니다. 이제 막 20대로 접어들고 있는 이들은 기성세대 대비 경제적 혜택을 받지 못할 것으로 예상되는 세대입니다. 자연스럽게 취업·결혼·출산 등 '전통적 루트'에 대한 관심은 줄어들고, 순간을 즐기는 문화가 자리잡았습니다. 자연스럽게 레트로 마케팅과 같이 '밈'을 만드는 전략에 반응한다는 설명이죠. 기성세대의 추억을 자극하는 마케팅 전략이 젊은 세대에게는 새로움을 주는 셈입니다.

레트로 상품들은 오래 전 상품을 사랑했던 고객들을 주요 타겟으로 합니다. /사진=각 사

코로나19가 레트로 마케팅이 유행한 계기가 됐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야외 활동이 막히며 '개인적 취미'가 중요해졌습니다. 하지만 취업 시장이 위축됐고, 부동산 가격은 범접할 수 없는 수준이 됐습니다. 지난해부터는 소비재 가격마저 폭등하고 있습니다. 미래를 예상하기 어려워진 만큼 취미에 큰 돈을 들이기 어려워졌죠. 소액으로 즐거움과 수집욕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레트로 상품이 젊은 세대에게 인기를 끈 이유입니다.

이렇게 포켓몬빵은 사회 현상이 됐습니다. 인기가 식을 기미를 보이지 않습니다. SPC삼립은 포켓몬빵 생산량을 확대해 고객 수요에 대응하기로 했고요. 나아가 국진이빵·핑클빵 등 제품들도 재출시되는 것 아니냐는 기대감도 감지됩니다. 제조사들의 반응도 긍정적입니다. 레트로 상품은 신상품과 달리 과거에 기획·생산했던 데이터가 남아 있습니다. 인지도는 이미 높으니 마케팅 부담도 적죠. 기업들이 재출시를 마다할 이유가 없습니다.

다만 레트로 마케팅을 씁쓸하게 바라보는 시선도 있습니다. 포켓몬빵은 첫 출시 당시 젊은 세대에게 인기를 끌었습니다. 돌아온 포켓몬빵은 어른이 된 이들이 타겟입니다. 실제로 포켓몬은 이미 9세대가 나왔지만, 포켓몬빵에는 1세대 포켓몬의 띠부띠부씰만 들어 있죠. 싸이월드 등 다른 레트로 콘텐츠·상품의 전략도 비슷합니다. 지금의 젊은 세대는 철저히 소외시키죠. 단기 매출을 노리는 '과거 소환'이 새로운 상품·콘텐츠의 자리를 빼앗는다는 지적입니다.

물론 이는 과한 걱정일 수 있습니다. 포켓몬과 같은 콘텐츠가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으니까요. MZ세대가 포켓몬빵을 찾아 편의점을 뒤지듯, 미래의 3040세대는 뽀로로 음료수를 찾아 헤맬 수도 있겠죠. 그럼에도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는 있을 것 같습니다. 과거를 돌아보게 만드는 추억만큼 지금 한 발 전진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래야 먼 훗날 우리의 아이들도 포켓몬빵에 버금가는 추억의 아이템을 가질 수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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