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장품 1세대 가두점(로드숍)들의 지난해 성적이 엇갈렸다. 일찌감치 유통 채널을 다변화하고 해외 시장을 집중적으로 공략한 업체는 웃은 반면, 뒤늦게 체질 개선에 나선 업체는 웃지 못했다. 1세대 로드숍은 전 세계적으로 K뷰티 열풍이 부는 만큼 올해는 영토 확장에 속도를 내 저력을 입증하겠다는 생각이다.회복 기지개
화장품 로드숍들은 최근 수년간 성장세가 크게 꺾였다. K뷰티의 높은 인기에도 로드숍이 부진했던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급격하게 변화한 시장 트렌드에 빠르게 대응하지 못해서다. 오프라인 가맹점이 중심이 된 탓에 온라인으로 옮겨간 수요를 잡지 못했다. 여기에 헬스앤뷰티(H&B) 스토어의 등장으로 한 브랜드만 판매하는 단일 브랜드숍에 가는 발길도 현저히 줄었다. 이에 따라 로드숍의 재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쏟아졌다.


이랬던 로드숍들의 분위기가 급반전한 것은 체질 개선과 글로벌 시장 공략 덕분이다. 로드숍들은 침체기를 겪는 동안 국내에선 오프라인 매장을 축소하고 유통 채널을 다변화했다. 다이소, 올리브영 등 'K뷰티 성지'로 꼽히는 곳에 입점해 소비자 접점을 늘린 게 대표적이다. 내수 시장만으론 성장에 분명한 한계가 존재한다는 점을 고려해 적극적인 해외 진출도 단행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지난해 미샤를 운영하는 에이블씨엔씨의 영업이익은 114억원에서 203억원으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아직 실적 발표 전인 토니모리 역시 두 자릿 수 성장세가 유력하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토니모리의 작년 영업이익은 159억원으로 1년 전보다 65.3%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웃지 못하는 로드숍도 있다. 아모레퍼시픽그룹의 주력 브랜드 중 하나인 이니스프리다. 이니스프리는 한때 단일 브랜드 처음으로 국내외 매출 1조원을 달성했다. 그러나 이제는 코스알엑스와 라네즈 등이 아모레퍼시픽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자리 잡으면서 이니스프리의 브랜드력이 현저히 약화됐다는 분석이다. 이니스프리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16억원으로 전년 대비 84.1% 감소했다.
업계에선 신속한 의사결정 여부가 이들의 실적을 엇갈리게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일례로 이니스프리는 2023년에야 올리브영에 입점했다. 미샤와 토니모리가 각각 2020년, 2022년에 생존을 위해 올리브영 입점에 나선 것과 비교하면 늦은 감이 없지 않다. 승부처는 해외
이니스프리가 국내외 인지도를 제고하기 위해서는 더 이상 뒤처져선 안 된다는 의견이 나온다. 이른바 '맨땅에 헤딩'으로 영토 확장에 나섰던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디지털 전환에 따라 K뷰티의 해외 진출 장벽이 낮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대기업은 촘촘한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어 브랜드 진출 이후 안정적인 운영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업계 관계자는 "대기업이 화장품 하나를 상품화시키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게 사실이지만, 기업의 규모와 상관없이 해외에 진출하는 속도에선 별반 차이가 없다"며 "시장에 없던 브랜드가 글로벌로 나가기 위해선 판매처랑 사전소통도 필요하고 입점하기 위한 전략과 절차도 필요한데, 이런 부분을 에이전시가 대행해 훨씬 빠른 진출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이니스프리는 올해 해외 판로 확장에 주력할 예정이다. 아모레퍼시픽그룹이 추진 중인 글로벌 리밸런싱 가속화의 일환이기도 하다. 코스알엑스와 라네즈가 고성장을 이어가고 있는 미국, 일본, 유럽은 물론 신시장인 인도, 중동 등이 주요 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세포라와 아마존 등 주요 유통 채널에 입점한 만큼 이들과의 파트너십을 강화해 브랜드와 고객 접점을 확대하고 멀티브랜드숍(MBS), 틱톡샵 등과의 협업도 추진할 계획이다.
미샤와 토니모리도 K뷰티 인기에 힘입어 해외에 초점을 맞춘 전략들을 구사하고 있다. 미샤는 기존 진출 시장에서 직수출을 확대하고 신규 국가 개척을 통해 장기적인 성장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이다. 토니모리 역시 글로벌 영토를 넓히고 공격적인 마케팅, 유통 채널 다각화를 통해 재도약을 노리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지금까지는 중소 인디 브랜드들이 K뷰티의 성장을 주도했지만 어느 정도 시장이 성장하면 아모레퍼시픽처럼 인지도 있는 브랜드가 앞서 나갈 것"이라며 "K뷰티 제품 여러개를 두고 입점사에게 어떤 제품을 선호하냐고 하면 대부분이 어느 정도 이름이 있는 제품을 택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