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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번가가 지난해 목표였던 적자 감축에 성공했다. 1200억원이 넘었던 적자 규모를 700억원대로 줄였다. 다만 대가는 컸다. 매출이 30% 넘게 빠졌다. 특히 지난해 4분기엔 절반 가까이 감소했다. 1차 목표인 흑자전환을 이루기 위해 이커머스로서의 경쟁력을 모두 내려놓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계획대로야"
11번가는 지난해 4분기에 매출 1339억원, 영업손실 230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손실은 전년 4분기 348억원보다 110억원 이상을 줄이는 데 성공했지만 매출이 2635억원에서 1339억원으로 49.1% 급감했다. 매출이 절반으로 줄었음에도 영업손실은 30%가량밖에 줄이지 못한 셈이다.
4분기는 사이버먼데이와 십일절, 크리스마스, 연말 등 대목이 겹치는 최대 성수기다. 11번가는 2023년 4분기에 연중 최대 분기 매출인 2635억원을 기록했다. 전분기 대비 39%나 매출이 늘었다. 영업손실도 348억원으로 분기 중 가장 컸지만 매출 증가세를 감안하면 '허용범위 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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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난해 4분기는 달랐다. 매출은 전분기 대비 9.8% 늘어나는 데 그쳤음에도 적자가 50% 넘게 증가했다. 허리띠를 졸라매긴 했는데, 막상 목표였던 영업손실 감축은 이뤄내지 못했다. 실제로 4분기는 지난해 4개 분기 중 매출이 두 번째로 적은 분기였지만 영업손실 규모는 가장 컸다.
4분기의 부진은 연간 실적에도 고스란히 반영됐다. 11번가는 지난해 5618억원의 매출과 754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매출은 35.2% 줄었고 영업손실은 40% 줄였다. 3분기까지만 해도 30%를 밑돌던 매출 감소폭이 4분기의 부진에 35%대로 올랐다. 영업손실 감소폭도 42%에서 40%로 소폭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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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11번가는 전년 대비 수익성이 개선됐다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실적 발표 때도 7개 분기 연속 전년 대비 영업손실을 줄이는데 성공했다는 부분을 가장 먼저 드러냈다. 또 매출 감소는 리테일(직매입) 부문의 사업구조 효율화에 따른 것, 즉 수익성 개선 전략에 따른 감소세라는 점을 강조했다.
11번가는 올해에도 영업손실 개선을 최우선 목표로 삼고 있다. 정확히는 에비타(EBITDA, 법인세∙이자∙감가상각비 차감 전 영업이익) 기준 흑자전환이다. 안정은 11번가 사장도 연초 타운홀 미팅에서 "안정적인 수익성 확보를 위한 성장 모멘텀을 마련해 전사 EBITDA 흑자를 달성해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가늘고 길게
11번가의 '흑자전환 목표'에는 숨은 뜻이 있다. 올해에도 11번가의 매출이 반등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의미다. 11번가의 영업손실 개선은 매출 감소를 담보로 하고 있다. 매출이 감소하는 만큼만 수익성이 개선되고 있다. 이는 11번가가 손실을 내는 부문이 리테일 부문이기 떄문이다.
11번가는 오픈마켓 부문에서는 지난해 EBITDA 기준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영업이익 기준으로도 3월부터는 쭉 영업이익을 내고 있다. 문제는 리테일 부문이다. 리테일 부문은 직매입 상품을 다룬다. 따라서 거래액이 곧바로 매출로 연동된다. 따라서 리테일 부문의 적자를 줄이기 위해 비용 절감에 나서면 곧바로 매출이 하락하는 구조다.
문제는 이커머스 업계의 미래 생존이 이 직매입 서비스에 달려 있다는 점이다. 전체 판매 상품의 90% 이상을 직매입으로 채운 쿠팡이나 컬리는 물론 다른 이커머스들도 직매입 서비스를 주력으로 삼고 있다. 새벽배송과 당일배송, 근거리 배송 등을 구현하기 위해서다. 11번가도 '슈팅배송' 등의 핵심 서비스가 리테일 부문의 서비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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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에선 11번가가 올해 흑자전환 목표를 달성하더라도 곧바로 매출 개선 움직임을 보이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한다. 섣불리 나섰다가 다시 손실이 나기라도 하면 11번가가 추진 중인 매각 작업이 멈출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커머스 업계가 쿠팡을 중심으로 네이버쇼핑, G마켓, SSG닷컴 등 일부 대형 업체만 살아남는 방향으로 재편되는 상황에서 몸집을 30% 이상 줄이고 있는 11번가가 올해에도 계속 외형이 줄어든다면 생존이 어려울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11번가의 장점은 십일절 등으로 쌓아온 브랜드 파워"라며 "매출이 지속적으로 줄어들며 브랜드 파워가 감소한다면 살아남기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