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식품 기업 다 모였다
[방콕=김아름 기자] 한국은 날씨가 어떤가요. 저는 37도의 무더위 속에서 무더위보다 더 뜨거운 열기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지난 26일부터 태국 방콕 임팩트 아레나에서 열리고 있는 '2026 타이펙스 아누가'에 와 있기 때문입니다. 타이펙스는 태국 국제무역진흥부와 상공회의소, 세계 최대 식품 박람회 '아누가'의 주관사인 쾰른메세가 공동 주최하는 아시아 최대 식품 박람회입니다.
올해는 전 세계 60개국 3300여 개 기업이 참가하고, 약 140개국에서 8만8000명 이상의 바이어가 집결합니다. 일반 방문객을 합하면 14만명 이상이 타이펙스 아누가를 찾을 전망입니다. 특히 올해 타이펙스 아누가는 총 전시 면적이 14만㎡에 달하는 역대 최대 규모로 열립니다. 코엑스 전체 전시 면적의 3배 가까운 규모니, 얼마나 큰 박람회인지 짐작이 가시죠.
사실 현장에 도착하기 전까진 규모를 짐작하지 못했습니다. 2024년에 미국 CES를 다녀오긴 했지만 그 때는 전시관이 서로 많이 떨어져 있어서 전체 규모를 가늠하기는 쉽지 않았죠. 각 관과 관을 이동하려면 택시를 타야 했던 수준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이번 타이펙스는 임팩트 아레나 한 곳에서 열렸기 떄문에 그 규모가 단박에 체감됐습니다.
일단 들어갈 때부터 난리였죠. 평소엔 50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였는데 이날은 2시간이 넘게 걸렸습니다. 도로에 늘어선 수많은 차들이 모두 타이펙스 아누가에 방문하려는 사람들이 탄 차였죠. 결국 주차장까지 진입하지도 못하고 내려 걸어들어가야 했습니다.
힘들게 전시관 안에 들어선 뒤엔 그 규모에 압도당했습니다. 총 12개 홀에 전세계에서 모인 수천 개 기업, 수만 명의 사람들이 바쁘게 돌아다니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습니다. 이 모든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식품'이라는 하나의 주제를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묘한 동질감도 느끼게 했습니다.
국뽕 아닌데 뭔가 차오른다
하지만 가장 감동적이었던 건 따로 있었습니다. 이 넓은 공간에 이 많은 기업들이 모여 있는데 가장 눈에 띄는 게 'KOREA'였기 때문입니다. 아무래도 제가 한국 사람이라 그런 걸까, 팔이 안으로 굽은 걸까 많이 고민해 봤지만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았습니다. 실제로 한국 기업들의 부스에 정말 많은 사람들이 모였거든요.
8홀 가장 앞 자리를 큼지막하게 차지한 농심 부스에서는 '신라면' 옷을 입은 직원들이 쉴 새 없이 신라면 김치볶음면을 끓였습니다. 제가 먹어도 꽤나 매콤한 라면이었지만 전세계에서 모인 방문객들은 줄을 서 가면서 김치볶음면을 즐겼습니다. 전시관 어디에서도 빨간 '신라면 가방'을 든 사람이 보였죠.
7홀에 자리잡은 대상은 '3밀 코스'로 방문객들을 대접했습니다. 고추장에 볶은 닭고기와 새콤달콤한 새우·오이 샐러드, 떡볶이였죠. K소스를 자연스럽게 소개하기 위한 고민이 보인 메뉴였습니다. 바로 근처에 부스를 연 하림산업도 장인라면과 수출용 '불소스면'을 선보였는데요. 국내에서보다 더 인기가 많아 보였습니다.
이미 '글로벌 기업'인 삼양식품관엔 당연히도 많은 이목이 집중됐습니다. 거대한 컵라면을 쌓아올린 포토존엔 줄이 늘어섰고, 퀴즈를 맞히면 주는 캐릭터 굿즈를 받기 위해 제품에 대한 설명을 듣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동원F&B관에선 '검은 반도체' 김이 눈에 띄었습니다. 태국에선 원래 김을 스낵처럼 먹는 문화가 발달했습니다. 이에 맞춰 와사비맛, 불고기맛 등 다양한 김을 선보였고요. 'Nori(일본어로 김을 뜻하는 단어)'가 아닌 'Gim'이라는 점을 해외 바이어와 관람객들에게 설명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넓은 전시관 곳곳에 포진한 한국 기업들이 관람객들의 관심을 독차지한 게 우연일까요. 아니면 '긍정' 색안경을 쓴 저의 착각이었을까요. 둘 다 아닙니다. 타이펙스에 방문한 관람객들은 실제로 K푸드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외국 기업의 부스에 방문해도 "한국인이냐"고 물으며 저에게 'Korean style' 제품을 맛보라 하고, 맛이 어떠냐 묻는 곳도 많았죠. '국뽕'이 안 차려고 해도 안 찰 수가 없었습니다.
외국 기업도 'K뽕'
한국에서 왔으니 한국 기업을 중심으로 하는 건 당연하지만, 그러면 국제 박람회에 온 의미가 퇴색될 수밖에 없습니다. 평소에 보기 힘든 현지 기업들의 부스도 열심히 둘러봐야 멀리까지 온 보람이 있겠죠.
전세계 기업들이 참여했다고는 하지만 동남아에서 열리는 만큼 '동남아 기업 강세'는 어쩔 수 없습니다. 유럽이나 미국 기업들의 부스는 상대적으로 빈약했습니다. 반면 동남아, 중국, 일본 등 아시아 기업들은 꽤 많은 기업들이 큰 부스를 열었죠.
그 중에도 가장 눈에 띄는 규모로 부스를 열었던 건 아무래도 '홈그라운드'인 태국 기업들이었는데요. 태국 최대 라면 기업인 '마마(MAMA)', 태국 최대 소스 기업인 '수리(SUREE)' 등은 한국 기업들을 능가하는 거대한 부스를 차렸습니다. 멀리서 봐도 '와 저긴 뭐 하는 데야?'라는 생각이 들 만큼 크고 화려한 부스였죠.
하지만 거기서도 'K뽕'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마마부터 볼까요. 태국에 여행을 와 보신 분이라면 아마 '마마 라면' 하나쯤은 드셔보셨을 겁니다. 수많은 동남아식 라면 중에도 한국인들의 입에 딱 맞는 브랜드라 인기가 많죠. 이 마마가 이번 타이펙스 아누가에서 신제품을 여럿 선보였는데요. 그 중 당당하게 '김치맛 라면'이 있었습니다.
수리의 부스는 올해 '크라잉 타이거(Crying Thaiger)'라는 온갖 다양한 플레이버의 스리라차 소스를 내놓는 브랜드를 메인으로 선보였습니다. 강렬한 호랑이 디자인, TIGER를 재치있게 바꾼 Thaiger라는 브랜드명이 우선 눈길을 끌었습니다. 크라잉 타이거는 일반적인 칠리 스리라차 외에도 머스터드·케첩·터메릭·와사비·마요 등 다양한 소스와 결합한 스리라차 소스를 내놓는 브랜드입니다.
올해 타이펙스 아누가에서는 허니 머스터드·고추장·케토·코리안스타일·스파이시바베큐·마라 등 무려 여섯가지 신제품을 선보였는데요. 보시다시피 이 중 두 가지가 K소스 맛입니다. 직접 맛본 고추장맛 스리라차는 '이거 한국에서도 먹히겠는데?'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매콤하면서도 달콤하고 새콤하기도 한 데 우리에게 익숙한 초고추장과는 또 완전히 다른 맛이구요. 스리라차와 고추장을 잘 배합했다는 느낌입니다.
또 다른 느낌으로 '국뽕'이 든 곳들도 있습니다. 불닭볶음면의 인기 덕분에 여러 나라의 라면 브랜드들이 '코리안 스타일 누들' 혹은 '핫 스파이시 치킨 누들'을 선보였는데요. 몇 군데서 시식을 했는데 '아 이래서 K라면이 잘 팔리는구나'라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매운 것도, 달콤한 것도 아닌 소스에 면의 식감도 퍼석해서 당황스러웠죠. 현장에서 증정받은 어떤 컵라면은 맛은 나쁘지 않았지만 안에 물 양을 재는 눈금조차 없어서 감으로 물 양을 재야 했습니다. 이런 것 하나하나가 '노하우'인 셈입니다.
이번 타이펙스 아누가에서 가장 크게 느낀 건, K푸드 열풍이 일시적인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많은 나라의 바이어와 기업들이 K푸드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였고 또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에 맞춰 우리 기업들도 현지인들의 니즈에 맞추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K푸드가 일식이나 중식처럼 전 세계인에게 오랫동안 사랑받는 '스테디셀러'가 될 수 있다는 선언이 '국뽕'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