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를 맞은 동부그룹 구조조정에 김준기 회장의 장남인 김남호 동부제철 부장이 보유한 동부화재 지분이 주요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
채권단은 김남호씨의 동부화재 지분 14.1%가 구조조정 과정에서 담보로 제시돼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동부그룹은 이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채권단이나 동부그룹 양측 모두 물러서기 힘든 싸움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 왜 김남호씨 지분인가
동부그룹은 크게 제조와 금융으로 분리돼 있다. 제조분야 정점에는 동부CNI, 금융분야는 동부화재가 최상단에 자리잡고 있다. 동부CNI는 공동관리 예정인 동부제철 지분 13.34%, 매각예정인 동부하이텍 지분 12.43%를 가지고 있다. 동부건설 지분도 22.01% 들고 있다.
동부화재는 동부생명 지분 92.72%, 동부증권 지분 19.92%를 통해 금융계열사들을 지배하고 있다. 동부증권은 동부저축은행과 동부자산운용 등을 보유하고 있다.
김준기 회장과 김남호씨는 제조와 금융의 두축인 동부CNI와 동부화재 지분을 통해 그룹 전체를 지배하는 구도를 만들었다. 김준기 회장은 동부CNI 지분 12.4%, 동부화재 지분 7.9%를 가지고 있고, 김남호씨는 동부CNI 18.6%, 동부화재 14.1%를 보유중이다.
그룹 지배구조 측면에서 가장 중요한 두개 회사의 경우 아들인 김남호씨의 지분이 김 회장보다 많다. 동부그룹이 일찌감치 그룹 후계구도를 정리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이런 구조 때문이다.
현재 동부그룹에서 가장 알짜 계열사로 평가받고 있는 회사가 바로 동부화재다. 동부화재는 손해보험시장에서 빅3로 평가받는 회사다. 지난 회계연도에 3000억원 가량의 순이익을 냈다.
일부에서 동부그룹 유동성 위기를 일거에 해소할 수 있는 카드가 동부화재 매각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채권단이 김남호씨의 동부화재 지분을 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 김준기 회장, 선택의 기로
김남호씨의 동부화재 지분을 둘러싼 채권단과 동부그룹의 입장은 극명하게 엇갈린다. 채권단은 위기를 겪고 있는 그룹의 정상화를 위해 오너 일가가 협조해야 한다는 생각인 반면, 동부그룹은 제조부문의 문제에 금융부문을 끌어들여선 안된다는 입장이다.
채권단은 최악의 경우 동부그룹이 제조부문을 포기하고, 금융부문만 가져가는 구도가 생길 것을 우려하고 있다. 김남호씨의 동부화재 지분을 요구하는 것도 이를 방지하기 위한 일종의 안전장치 차원이다.
동부그룹은 동부화재 지분을 담보로 요구하는 것은 사실상 금융부문의 경영마저 포기하라는 의미가 아니냐는 입장이다. 일단 구조조정 계획의 조속한 실행을 통해 제조부문 정상화를 추진하면 된다는 생각이다.
실제 김준기 회장은 지난 23일 산업은행과 만난 자리에서 동부제철 자율협약에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김남호씨 지분 문제에는 반대 입장을 고수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앞으로도 김남호씨의 지분을 둘러싼 채권단과 동부그룹 간 갈등은 계속될 전망이다. 김 회장 역시 머지않은 시간안에 선택의 기로에 설 것이란 관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