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회장이 갑작스런 건강이상으로 경영일선에서 물러난지 1년이 넘었다. 이 회장의 건강이 회복되는 과정에 있다고 하지만 과거처럼 경영에 전면 복귀할 가능성은 낮은 것이 사실이다. 이에 따라 재계는 지난 1년간 이재용 부회장의 역할 확대에 주목해 왔다. 사실상 삼성 경영 전면에 나선 이재용 부회장의 승계작업, 사업성과와 전망 등을 3편에 걸쳐 정리해본다. [편집자]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그룹 경영의 전면으로 부상한 이후 가장 큰 변화는 과거와 달라진 사업전략이라는 평가가 많다. 부친인 이건희 회장 시절, 삼성은 사업확대 과정에서 인수합병(M&A)보다 자체 육성 전략을 주로 구사해왔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 부품은 물론 스마트폰과 가전 등의 사업분야를 갖추는 과정에서 삼성은 주요부품사들을 수직계열화했다. 이런 전략은 그룹 수뇌부의 빠른 의사결정과 함께 세계시장을 석권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지금도 이런 구도는 유지되고 있다. 다만 과거보다 활발한 인수합병을 통해 빠른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는 점이 더해진 상태다. 지난해 이뤄진 한화와의 빅딜 역시 과거와는 달라진 삼성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특히 최근 금융사업에서의 행보에도 재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 과감한 선택, 그리고 집중
이재용 부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선 시점을 전후로 삼성의 사업재편이 신속하게 진행됐고, 인수합병 전략도 변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패션과 소재사업이 공존하던 옛 제일모직은 패션부문을 삼성에버랜드로 넘겼고, 소재사업은 삼성SDI와 합쳐졌다. 삼성에버랜드 역시 건물관리사업을 에스원으로 매각했다. 이후 에버랜드는 제일모직으로 사명도 변경했다. 비록 무산되긴 했지만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의 합병도 추진됐다.
이같은 작업들은 각 사업부문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선택과 집중'에 나선 결과라는 해석이다. 특히 이같은 전략 변화는 지난해말 한화그룹과 빅딜에서 대표적으로 나타났다.
삼성은 방산과 화학분야를 떼어 한화에게 넘기며 이 사업에서 손을 뗐다. 삼성이 자발적으로 사업매각에 나선 것은 극히 이례적인 사례다.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사업까지 끌고가지 않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조직재편과 함께 인수합병은 더 활발해졌다. 주로 주력사업의 경쟁력 강화와 미래사업 준비에 초점이 맞춰졌다. 삼성전자는 지난 2012년이후 20여건에 가까운 인수합병이나 해외지분투자에 나섰다. 올들어서도 이미 3건의 인수합병이 이뤄졌다.
삼성의 인수합병 대상은 반도체 등 핵심 부품사업은 물론 사물인터넷, 기업간거래(B2B) 사업 확대를 위한 포석으로 보인다. 이 전략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필요하다면 공격적으로 인수합병에 나서겠다"는 것이 삼성전자 최고경영자들의 말이다.
이런 변화는 이 부회장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게 재계의 시각이다. 재계 관계자는 "한화그룹과의 빅딜같은 사안이 이 부회장의 결정없이 이뤄질 수 있겠느냐"며 "최근 삼성의 변화는 사실상 이 부회장의 생각이 반영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 새 먹거리는 금융?
특히 최근 이 부회장의 눈에 띄는 행보는 금융분야에서 이뤄지고 있다. 이 부회장은 올해 들어 삼성생명과 화재, 증권 등 금융계열사 사장단 회의를 자주 열고 있다.
삼성의 금융계열사들은 지난해 이미 지분정리를 통해 삼성생명이 삼성자산운용을 자회사로 편입하는 등 변화 준비를 마친 상태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10월 일본과 중국 손해보험 대표들을 삼성의 영빈관인 승지원에 초청해 만찬을 하기도 했고, 올초에는 세계 주요 카드회사 대표들도 만났다. 지난 3월에는 직접 중국 CITIC그룹과 금융분야 협력을 논의하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삼성증권을 창구로 다양한 금융사업 협력에 나서자는 합의를 이끌어냈다.
▲ 이재용 부회장은 지난 3월 중국 CITIC그룹 경영진들과 직접 만나 삼성증권의 금융사업 협력방안을 논의했다. 이 부회장이 금융계열사 해외사업 논의 자리에 직접 참여했다는 점은 이 분야에 대한 그의 관심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
이 부회장이 금융사업에 관심을 갖는 것 역시 '이재용의 삼성'을 의식한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금융분야는 삼성의 주력사업이었지만 여전히 국내사업에 머물러 있다. 부친인 이건희 회장 역시 수차례 금융의 해외진출을 강조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이 부회장 입장에서는 금융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낸다면 의문부호처럼 따라다니는 경영능력에 대한 논란을 잠재울 수 있다. 이 부회장의 관심이 지대한 만큼 삼성생명과 삼성화재 등 주력 금융계열사들의 변화속도가 빨라질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실제 김창수 삼성생명 사장은 올해 초 "미래 성장동력 확보를 위해 해외보험사 M&A와 자산운용 글로벌화에 적극 나서겠다"고 밝혔다. 해외시장 진출을 위해 과감한 인수합병 카드를 꺼낼 수 있다는 전망이다. 삼성자산운용도 미국 뉴욕생명과 합작법인을 설립하는 등 해외사업 확대에 나선 상태다.
재계 관계자는 "이 부회장은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을 축으로 그룹 경영에 나서야 하는 만큼 금융사업 육성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며 "삼성 금융계열사들이 어떤 모습을 보일 것인지에 대한 관심이 높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