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 값이 다시 떨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1월 바닥을 친 뒤 반등하는가 싶더니 5월 초 정점(두바이유 65.06달러)을 찍은 뒤 7월부터 하락 폭을 키우고 있는데요.
25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에서 10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중질유(WTI)는 39.31달러로 마감했습니다. 하루 전인 24일에는 38.24달러까지 떨어졌습니다. 2009년 2월 이후 최저 수준입니다. 우리가 주로 수입하는 두바이유 현물 유가도 42.66달러까지 떨어졌죠.
#왜 떨어지나
국제 유가가 떨어지는 이유는 공급은 넘쳐나는데 수요는 줄어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원유를 많이 사용하는 중국의 경기 둔화로 수요가 크게 줄어들었습니다.
공급 쪽에서는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오일 패권을 지키기 위해 생산량을 유지하고 있고, 미국 셰일오일 업체들도 채굴 기술이 좋아져 공급을 줄이지 않고 있습니다. 여기에 내년 초 미국의 경제 제재가 끝나는 이란이 수출 대열에 동참하면 공급 과잉은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블룸버그통신 “중국 경제 약화로 석유시장의 공급과잉이 더 심화돼 올 연말까지 유가가 배럴당 35달러 선이 무너질 수 있다.”
시티그룹 “WTI가 배럴당 32달러까지 떨어질 수 있다.”
컴버랜드어드바이저스 공동설립자 데이비드 코톡 “유가가 배럴당 15~20달러까지 갈 수 있다.”
#체감 효과는
기름 값이 떨어지면 호주머니 사정이 좋아집니다. 특히 자동차를 많이 사용하는 자영업자들에겐 가물에 단비겠죠. 쏘나타를 타는 직장인의 경우(1년 주행거리 1만5000km, 연비 13.4리터) 기름 값이 리터당 1600원일 때는 연간 180만원이 들지만 1500원으로 떨어지면 168만원으로 줄어듭니다. 한 달에 1만 원을 아낄 수 있는 겁니다.
유가 하락은 장바구니 물가도 떨어뜨립니다. 생활용품의 태반을 차지하는 플라스틱 제품의 원료가 석유이기 때문입니다. 석유에서 나프타를 뽑아내고 나프타에서 폴리에틸렌을 추출해, 이걸로 플라스틱을 만듭니다.
한국개발연구원·산업연구원·에너지경제연구원 등이 공동으로 펴낸 ‘유가 하락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 분석’ 보고서(1월)에 따르면 유가가 10% 떨어질 때 생산비용 감소폭은 제조업 1.04%, 서비스업 0.28%입니다. 또 경제성장률과 소득은 각각 0.2%포인트, 0.3%포인트 상승합니다.
전문가들은 이론적으로는 국제유가 하락은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자칫 디플레이션 심리를 부추겨 소비와 투자를 감소시키면 경기를 가라앉게 할 수도 있다고 지적합니다.
☞소비자들 사이에선 주유소 기름 값이 국제유가가 떨어진 만큼 인하되지 않는다는 불만이 많습니다. 또 기름 값이 오를 땐 국제유가 인상분보다 더 오른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정유사들이 올릴 때는 빨리 올리고 내릴 때는 천천히 내려, 소비자들의 호주머니를 턴다는 겁니다.
이와 관련, 정유 업계는 기름 값의 절반이 세금이어서 소비자 가격을 탄력적으로 조정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말합니다. (8월 3째주 전국 주유소 휘발유 평균 판매가격은 리터당 1543.76원. 이 가운데 세금은 916.99원으로 59.4%를 차지한다.) 또 최근에는 환율이 크게 올라 기름 값 인하분을 상쇄했다고 해명합니다.
#산업에는 어떤 영향 줄까
저유가가 모든 산업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닙니다. 업종에 따라 이득이 되기도 하고 손해가 되기도 합니다.
맑음
원가에서 유류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업종은 혜택을 봅니다. 원가 부담이 떨어지기 때문이죠. 항공업과 해운업이 대표적입니다. 항공업은 원가에서 유류비(항공유 사용)가 차지하는 비중이 40%에 달하고 해운업(등유 사용)은 20%가량 됩니다. 특히 9월부터는 유가 하락으로 국제선 유류할증료를 내지 않아도 됩니다. 승객 유치에 유리한 조건이죠. 8월 기준 미주·유럽 노선 유류할증료는 편도 1만7000원입니다.
흐림
조선업은 선박(컨테이너·벌크선 등)과 해양플랜트(석유 생산·저장 설비)가 주력인데요. 저유가가 지속되면 바다에서 기름을 채굴할 필요가 없어져 해양플랜트 발주가 줄어듭니다. 요즘이 그런 상황입니다.
우리나라 건설업체는 중동이 주 활동무대인데요. 중동 산유국에 정유플랜트를 지어주거나 토목공사를 해주는 게 중심이죠. 그런데 저유가로 오일 머니가 감소하면 자연히 발주 물량도 줄어들게 됩니다.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올 들어 7월 말까지 중동지역 수주 금액은 69억8081만 달러로, 작년 같은 기간(256만3556만달러)의 27.2%에 불과합니다.
비
원유를 직접적으로 사용하는 정유와 석유화학 업종은 저유가가 되레 독이 됩니다. 유가 하락과 함께 제품 가격도 떨어지기 때문이죠. 산지에서 원유를 들여와 제품을 만들기까지는 2~3개월의 시차가 발생합니다. 그 기간 동안 가격이 떨어지면 고스란히 손해를 보게 되죠. 이른바 재고 손실로 앉아서 돈을 까먹게 되는 겁니다.
이들 업종은 국내 제조업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에 달하는데 제품 가격이 떨어지면 전체 수출 금액도 줄어들게 됩니다. 올 들어 지난달까지 석유제품 수출액은 198억7800만 달러, 석유화학 제품은 229억99만 달러로 작년 동기보다 각각 34.9%, 18.7%나 줄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