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유가 시대가 장기화될 전망이다. 원유를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나라는 저유가 수혜를 입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오히려 내수경제 침체와 산업 경쟁력 약화 등 타격을 입고 있다. 저유가 악순환의 원인과 피해 산업 등을 진단하고, 이에 대한 해법을 알아본다. [편집자]
저유가 시대는 이제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지난주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의 결과, 산유국들이 감산 합의에 실패하면서 국제유가가 배럴당 30달러 선까지 밀렸다.
전문가들은 저유가 현상이 내년은 물론이고 최대 2~3년까지 지속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특히 저유가가 기대와는 달리 국내 경제를 침체시키는 악순환 구조로 정착됐다. 이를 극복하려면 수출 시장을 다변화하고, 고부가 제품 개발로 경쟁력 강화에 집중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 내년에도 50달러 안팎 예상
연초 배럴 당 40달러까지 밀렸던 국제유가는 미국의 경제지표 개선 및 오펙의 감산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연중 60달러 초반선을 회복하기도 했다.
하지만 글로벌 경제 성장이 예상보다 둔화하면서 원유 수요가 크게 늘지 않았고, 산유량도 줄지 않으면서 유가 상승이 벽에 부딪혔다. 이에 더해 지난주 오펙회의 결과, 추가 하락 가능성도 커졌다. 국제기관들이 내년도 국제유가를 당초 예상보다 하향 조정하는 이유다.
CERA(Cambridge Energy Research)는 당초 내년 유가를 배럴당 60달러 선을 유지하며 점차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지난 11월에는 이보다 9달러 가량 떨어진 배럴 당 50달러 초반 수준으로 하향 조정했다. 미국 에너지정보국(EIA)도 연초보다 20달러 가량 낮춘 배럴당 50달러 선으로 내다봤다. 골드만삭스 역시 내년도 서부텍사스원유(WTI) 가격 전망치를 배럴당 57달러에서 45달러로 낮췄다.
국내 기관의 전망도 다르지 않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지난 11월, 내년 국제유가를 배럴당 50달러 선으로 예상했다. 지난주 있었던 오펙 회의 결과를 감안하면 이보다 더 낮아질 것이라는 게 연구원 측의 설명이다.
정준환 에너지경제연구원 석유정책연구실장은 “오펙 회의를 통해 산유국 간의 입장 차이가 크다는 것이 드러났기 때문에 유가 변동성이 더욱 커질 수 있다”며 “단기적으로 유가가 배럴당 30달러 초반까지도 내려갈 수 있지만 기간은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미국의 원유 채산성과 산유국들의 재정상황을 감안할 때 배럴당 50~60달러 선은 돼야 원유시장이 유지될 것”이라며 “저유가 상황은 2~3년 정도 이어질 것으로 보이고, 2020년 이전에는 종전 수준인 배럴 당 80달러 수준을 회복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동향분석실장은 “지난 해처럼 국제유가가 급락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면서도 “원유 공급이 늘어난 만큼 수요가 증가하지 않아 당분간 저유가 현상은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 유가 리스크 벗어나려면
유가를 비롯한 원자재 가격의 추가 하락은 석유와 조선, 철강 등 국내 주요산업 수출경기 회복시점을 지연시키는 요인이다. 수출단가의 추가 하락과 중동 산유국 등 신흥국의 경기 둔화는 이들 지역으로의 수출에 부정적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우선 조선과 건설 등 수주산업은 특정 지역과 사업에 집중된 상태를 벗어나 다변화를 꾀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국내 건설사들의 수주 텃밭이었던 중동 국가들이 저유가 여파로 신규 발주량을 큰 폭으로 줄였기 때문이다.
조선업계의 경우 오일 메이저 기업들의 해양 플랜트 및 관련 설비 발주가 감소해 신규 수주가 힘겨운 상태다. 이에 더해 저가 공세를 펼치는 신흥국 기업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기술력 확보도 요구되고 있다.
홍세진 나이스신용평가 선임연구원은 “중동지역은 유가하락에 따른 발주규모의 축소와 정정 불안으로 수주환경 개선이 어려운 상황”이라며 “중동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는 시장을 찾긴 힘들지만 동남아시아나 유가와 관련이 적은 나라 등 신규시장 개척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경기침체로 오일 메이저의 해양 플랜트 뿐 아니라 일반 선박 발주량도 크게 감소한 상황”이라며 “저가 공세를 펼치고 있는 중국 조선사와 경쟁하려면 고품질 선박 제조 등을 통해 기술력에서 우위를 점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설명했다.
이는 석유화학 및 소재 산업 등도 마찬가지다. 이들 산업은 올 들어 마진 개선 등으로 이익실현을 하고 있다. 그러나 유가와 환율 등의 요인으로 실적 변동성이 커진 만큼 안정적 이익을 거둘 수 있는 고부가가치 제품이 필요한 상황이다.
문병기 국제무역연구원 수석연구원은 “석유화학 및 소재 부품 산업 등은 유가하락으로 수출 단가도 낮아졌고, 중국 등과의 기술격차도 줄어 수출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며 “이에 대비하려면 기술력을 동반한 제품의 고부가가치화가 필요하고, 각 기업은 자신들의 핵심 역량이 적용된 특화 제품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그는 “국내에선 기술이 동반된 기술집약 산업을 키우고, 해외 생산시설에선 범용 제품을 만드는 구조를 통해 수출 역량을 키워야 한다”며 “합작을 통해 글로벌 기업으로의 판매채널을 확보하는 것도 안정적으로 수출을 유지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 주유소 휘발유 가격은...왜?
일반 국민들이 저유가 시대를 체감할 수 있는 가장 큰 부분은 휘발유와 경유 등 국내 석유제품 가격 하락을 통해서다. 하지만 유가가 하락한 만큼 국내 석유제품 가격이 떨어지지 않아 국민들의 체감도는 크지 않다. 국제유가 약세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난해 10월과 지금을 비교하면 유가는 약 54% 떨어졌지만 국내 주유소 휘발유와 경유 가격은 각각 16%, 23% 하락하는데 그쳤다.
이는 석유제품 가격의 절반 이상이 세금인 탓이다.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지난주 국내 휘발유 가격(리터 당 1456.7원) 중 세금이 60.3%(878.7원)를 차지했고, 경유(1226.4원)의 경우 52.2%(640.7원)가 세금이다.
석유공사 관계자는 “석유제품에는 교통에너지환경세와 교육세, 주행세 등이 붙고, 유통비용과 중간 마진 등이 더해진다”며 “유가 하락이 제품 가격에 바로 반영되는 것은 아니어서 소비자 체감도가 낮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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