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이 보유한 '하이니켈 전구체 제조' 기술이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되면서 적대적 M&A를 추진 중인 MBK파트너스의 셈법이 복잡해졌다.
MBK 측은 고려아연의 핵심기술을 유출하지 않겠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시장과 업계에서는 자회사 및 계열사 매각과 분리 매각, 중국 등 해외업체와의 기술공유 및 기술연수 등으로 핵심 기술이 해외로 빠져나갈 가능성이 여전히 크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20조원에 육박하는 고려아연의 시가총액 등을 고려할 때 통째로 국내에 매각하는 게 쉽지 않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에 따라 국가핵심기술과 연관되지 않은 사업을 쪼개서 파는 등의 방식을 고민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MBK가 고려아연 적대적 M&A에 활용하는 자금은 6호 바이아웃 펀드다. 기업 경영권 인수 뒤 이를 재매각하는 방식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게 일반적이다. 이에 따라 시장 논리를 따라야 하는 사모펀드 특성상 MBK가 고려아연을 인수할 시 최종적으로는 가장 비싼 값을 지불할 곳을 찾아 회사를 되팔아야 한다.
문제는 시가총액이 20조원에 달하는 비철금속 제련 기업을 높은 가격에 사들일 곳은 막강한 자금력을 무기로 하는 중국 기업들이 유일하다는 점이다. 그간 MBK 측의 여러 차례 해명과 부인에도 불구하고 줄곧 '중국 매각 위험성'이란 꼬리표가 붙어 다닌 이유다.
하지만 고려아연의 전구체 제조 기술이 지난 13일 국가핵심기술과 국가첨단전략기술로 지정되면서 MBK가 '플랜B'를 가동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IB 업계에서는 고려아연의 하이니켈 전구체 제조 기술이 국가핵심기술 지정된 데 대해 MBK가 '기술의 해외 유출'을 하지 않겠다고만 강조한 점에 주목하고 있다. 분리매각이나 쪼개팔기, 자회사 및 계열사 매각 등 해외 매각에 대해서는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고려아연은 기존 제련 사업은 물론 '트로이카 드라이브'로 대변되는 성장동력이 그물망처럼 연결돼 있는 상황에서 분리매각이나 쪼개팔기, 자회사 매각 등이 이뤄질 경우 고려아연의 경쟁력이 훼손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고려아연은 한 언론보도를 인용, "이런 우려가 지속하자 MBK 측은 고려아연을 장기 보유하겠다는 주장까지 내놓고 있다"며 "사모펀드에 출자한 주주들을 위한 높은 요구수익률을 맞추기 위해 매각 대신 배당액과 각종 운영 수수료율을 늘리는 방식으로 투자금을 대거 회수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결국 단기든 장기든 지속적으로 투자금과 수익률, 각종 이자를 넘어서는 금액을 회수해야만 하는 사모펀드 특성상 국가기간산업으로서 고려아연의 기업가치와 경쟁력이 크게 악화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미래 먹거리를 위한 장기 투자나 과감한 투자 역시 모두 중단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당장 수익을 내지는 못하더라도 장기적인 비전으로 투자를 해야 경쟁력을 갖출 수 있지만, 이는 MBK와 영풍 모두 당장 원하는 상황이 아니며 다른 고려아연 주주들과의 이해관계가 크게 상충될 수 밖에 없는 지점이기도 하다.
고려아연은 "특히 MBK 측은 고려아연의 자원순환사업 등 신사업을 문제삼으며 공세를 퍼붓고 있다"며 "이를 고려하면 MBK가 당장 돈이 되지 않는 사업을 빠르게 정리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전망"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MBK가 고려아연을 장기적으로 보유하면 할수록 미래 성장 가능성은 점점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영풍 석포제련소를 보면 지속 성장을 위한 투자는 기피하고 공장 노후화로 인한 각종 환경오염과 중대재해로 벼랑 끝에 몰려 있다"며 "사모펀드가 온산제련소를 팔지 못하고 장기간 운영하게 된다면 결국 제2의 석포제련소가 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