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칩스법(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이 9부 능선을 넘었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의 조 단위 세금 혜택이 기대된다. 하지만 연구개발(R&D)인력의 주52시간 근로 제외 여부를 두고 지지부진한 공방이 이어지면서 반도체특별법은 아직 첩첩산중이다.
여야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아 지원방안이 늦춰질 경우 국내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이 후퇴할 것이란 우려는 더욱 깊어진다. 반도체 산업이 경제를 넘어 국가 안보의 핵심축으로 자리 잡으면서 세계 각국에서 정부 차원의 지원이 이어지고 있는 시점이다.
일단 52시간 근로 제외 여부를 뺀 나머지 지원 방안은 우선 처리하자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는 있지만, 여야가 좀처럼 이견을 좁히지 못하면서 국회 문턱을 넘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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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세액공제먼저…'K칩스법' 통과
18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전체회의를 열고 반도체 기업의 통합투자세액공제율을 기존보다 5%포인트 상향하는 내용이 담긴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심의·의결했다. 이번 개정안은 미국의 '칩스법'과 내용이 유사해 그간 'K칩스법'이라는 명칭으로 불려왔다.
향후 국회 본회의에서 해당 개정안이 통과되면 반도체 기업이 시설에 투자할 경우 대기업과 중견기업의 세액공제율은 20%, 중소기업은 30%로 올라간다. 이와 동시에 반도체 R&D 시 세액공제 일몰기한도 2031년까지 연장되는 법안도 동시에 통과됐다. R&D 투자 시 대기업과 중견기업은 30~40%를, 중소기업은 40~50%의 세액 공제 혜택이 부여된다.
아직 국회 본회의 통과라는 문턱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상임위원회에서 여야 간 합의가 있었던 만큼, 다음 절차는 무리 없이 진행될 것이란 게 정치권 및 업계의 시각이다.
이번 법안이 통과되면 세액공제로 자금의 여유가 생기는 만큼 기업들 역시 R&D, 설비투자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설 여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여진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경우만 하더라도 수조원 대의 세금을 절약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과 대만의 경우 이미 이번 개정안에 준하는 수준의 세액공제를 진행하고 있었는데, 이제서야 우리나라가 균형을 맞출 수 있게 됐다"라고 설명했다.
세액공제는 '시작'…주 52시간 줄다리기 언제까지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국가 차원에서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고 이에 따라 세액을 공제하는 조세특례제한법과 보조금 지급, R&D 인력에 대한 주52시간 근로 제외 등의 내용이 담긴 반도체특별법이 발의됐다.
이날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이 상임위원회의 문턱을 넘기는 했지만, 반도체특별법의 경우는 좀처럼 진전되지 못하고 있다. 여야가 R&D 인력 주 52시간 근로 제외 내용의 포함 여부를 두고 이견을 좁히지 못하면서다.
지난 17일 있었던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서도 주 52시간 근무 제외 포함 여부 때문에 반도체특별법은 상임위원회의 문턱조차 넘지 못했다.
업계에서는 단순 '돈'뿐만 아니라 인력들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동시에 추진돼야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을 키울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야당을 중심으로 주 52시간 근무라는 우리나라 근로제도의 근간을 헤칠 수 있다고 우려하며 이를 반대하고 있다.
합의점을 찾을 수는 있지만, 문제는 이번 법안이 정쟁의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비상계엄과 탄핵 이후 이제서야 정치권이 제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는데, 반도체 특별법의 경우 주52시간 근무 제외 여부가 각 당의 핵심 가치와 맞물리면서 정쟁의 요소로 자리잡은 모습"이라고 평가했다.
결국 주52시간 근무 제외 여부 때문에 나머지 지원방안까지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고 업계는 토로한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겸 경제부총리도 이날 국무회의에서 "주 52시간 특례가 포함되면 장시간 노동을 조장할 수 있다는 우려는 진정성을 가지고 소통하면 해소될 수 있다"라며 여야간 합의점을 찾아달라고 호소했지만, 상황이 진전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이 관계자는 "조기 대선 가능성이 염두되면서 이번 사안이 대선의 가늠자가 되는 상황"이라며 "합의점을 찾기에는 적지 않은 시일이 소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