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노사가 총파업 직전 임금협상에 잠정 합의했지만 내부에선 '노노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삼성전자 최대 노조인 초기업노조가 DX(디바이스경험) 중심 노조인 동행노조의 찬반투표 참여를 배제하면서다. 초기업노조의 DS(반도체) 직원수가 80%가 넘는 만큼 이번 임금협상안은 과반을 확보할 가능성이 크지만 앞으로 사업 부문별 불신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하루 만에 뒤집힌 투표 방식
업계에 따르면, 지난 21일 초기업노조 측은 "2026년 임금협약 잠정합의는 사측과 공동교섭단 간 체결된 합의"라며 "공동교섭단에 참여하지 않은 타 노조에는 투표권이 없다"고 공지했다. 동행노조 측에도 "현재 확인 결과 공동교섭단을 종료한 상태여서 투표권이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루 전만 해도 각 노조의 투표 참여를 전제로 움직이는 분위기였다. 최승호 초기업노조 삼성전자지부 위원장은 노사 잠정합의 직후인 20일 오후 9시 20분께 동행노조와 전삼노 측에 "22일 오후 2시부터 27일 오전 10시까지 진행되는 잠정합의안 찬반투표를 부탁드린다"는 내용의 메일을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21일 오전 10시쯤에도 최 위원장은 재차 메일을 보내 "각 조합은 잠정합의안 찬반투표를 준비해달라"며 "조합원 명부는 21일 오후 2시 기준으로 일치 부탁드린다"고 안내했다. 이 메일에는 "초기업노조는 각 노조의 투표권을 모두 존중하겠다"는 문구까지 포함됐다.
이 같은 내용이 퍼지면서 DX 부문 직원들을 중심으로 동행노조 가입이 폭증했다. 실제 동행노조는 하루 만에 7000명 이상이 새로 가입하며 조합원 수가 1만명을 넘어섰다. DX 내부에서는 "합의안을 부결시키기 위해서라도 노조에 가입하자"는 움직임까지 확산했다.
하지만 지난 21일 오전 "각 노조의 투표권을 모두 존중하겠다"며 메일 보낸 초기업노조는 그날 오후 돌연 입장을 뒤집었다. 공동교섭단에 참여하지 않은 타 노조에는 투표권이 없다고 선을 그은 것이다. 동행노조 측은 즉각 반발했다. 이들은 "합의안에 자신 있다면 우리 참여가 문제가 될 이유가 없다"며 "조합원 증가를 부담스러워하는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
이돈호 법무법인 노바 대표변호사는 "노조 내부 절차와 권한 위임 구조가 매우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누가 최종 비준 권한을 갖느냐'를 두고도 해석이 갈릴 수 있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공동교섭단을 이미 탈퇴한 상태라면 '왜 이제 와서 투표하느냐'는 초기업노조 측 논리도 일정 부분 법적 근거는 있다"면서도 "동행노조 측에서는 '투표 준비를 요청해놓고 하루 만에 배제했다'는 점을 절차적 문제로 강하게 제기할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갈등의 핵심에는 'DS 편중' 논란이 불거진 성과급 체계가 자리하고 있다. 삼성전자 노사는 DS 부문 사업성과의 10.5%를 특별경영성과급 재원으로 활용하는 내용의 잠정 합의안을 마련했다. 기존 OPI(초과이익성과급)까지 포함하면 사실상 사업성과의 12% 수준이 성과급 재원으로 연결되는 구조다.
합의안에 따르면 DS 특별경영성과급은 지급 상한이 없고 세후 전액을 자사주로 지급한다. 단순 추산 기준으로 메모리 사업부 연봉 1억원 직원은 최대 6억원 안팎의 성과급을 받을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적자인 시스템LSI·파운드리 등 비메모리 사업부는 공통 지급률 중심으로 보상이 제한되지만, 이들 역시 최소 1억6000만원 안팎의 보상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흑자를 내고도 쥐꼬리 성과급을 받는 DX 부문이다. 모바일·TV·가전 등을 담당하는 DX 부문은 600만원 상당 자사주 지급이 사실상 전부다. 같은 삼성전자 안에서도 메모리 사업부와 DX 부문 간 보상 차이가 수억원대로 벌어지는 것이다.
소송전 번지나
DX 내부에서는 "같은 삼성전자 안에서도 사실상 다른 회사가 됐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내부 게시판과 노조 커뮤니티에는 "과반노조 만들 때는 DX 조합원 숫자가 필요하더니 결국 반도체만 챙겼다", "승진 누락보다 DX 발령이 더 무섭다"는 반응까지 올라왔다.
특히 적자를 낸 시스템LSI·파운드리도 최소 억대 보상을 받는데 흑자를 낸 DX는 왜 이번 '성과급 잔치'에서 제외됐느냐는 불만이 커지고 있다. 일부 직원들은 협상 과정에서 당초 논의됐던 전사 공통 보완안들이 대부분 후순위로 밀렸다고 주장한다.
당초 사측이 제안했던 전사 자사주 20주·임직원몰 포인트 100만원 지급안이 최종안에서 축소됐고 야근비 지급 기준이 되는 고정시간 외 추가근무 인정시간 완화안(14시간→12시간) 등도 충분히 반영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DX 진영의 반발은 행동으로도 이어지는 분위기다. 현재 동행노조는 자체 홈페이지에 '2026년 임금협약 잠정합의안 찬반투표' 공지를 올리고 투표 준비를 강행 중이다. 공지에는 투표 기간과 함께 "조합원의 권리가 제대로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문구도 담겼다.
업계에선 잠정 합의안이 부결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보고 있다. 초기업노조 전체 조합원 약 7만명 가운데 80% 수준인 5만5000여명이 DS 소속인 만큼 메모리 중심 찬성표만으로도 과반 확보가 가능해서다.
문제는 투표 뒤다. 이번 임금협상 협상 과정에서 터진 노노 갈등이 사업부문별 직원간 불신으로 자리잡을 수 있다.
주주 반발도 거세지고 있다. 삼성전자 주주단체들은 이번 합의안을 "세전 영업이익 연동 성과급"이라며 위법이라고 주장하며 법적 대응을 예고한 상태다.
주주단체인 '대한민국 주주운동본부'는 지난 21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자택 인근에서 집회를 열고 "영업이익의 약 12%를 성과급 재원으로 연동하는 구조는 주주총회 결의 없이 추진될 수 없는 사안"이라며 "법률상 무효"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향후 이사회 결의 무효 확인 소송과 가처분 신청, 이사 대상 주주대표소송까지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다른 주주단체인 '삼성전자 주주행동 실천본부'도 "반도체 산업을 사실상 인질로 삼은 협상"이라며 노조를 비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