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총파업을 사흘 앞두고 법원이 노조의 쟁의행위 범위에 사실상 제동을 걸었다. 반도체 생산시설과 웨이퍼 보호 작업, 안전보호시설 운영은 파업 중에도 '평상시 수준'으로 유지해야 한다고 판단하면서다.
생산시설 점거와 출입 방해까지 금지되면서 노조 입장에서는 적지 않은 부담이 걸리게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위반 시 '하루 1억원'의 간접강제 조항까지 붙으면서 재계와 법조계에서는 "사측이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반면 노조는 "법원이 평일 수준 인력 유지까지 요구한 것은 아니다"라며 총파업 강행 방침을 유지하고 있다. 삼성전자 노사는 중앙노동위원회에서 막판 사후조정을 이어가고 있지만, 협상이 최종 결렬될 경우 노조는 오는 21일부터 다음 달 7일까지 총 18일간 총파업에 돌입할 예정이다.
전문가 "사측 손 들어준 결정"
18일 수원지법 민사31부(재판장 신우정)는 삼성전자가 삼성그룹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지부와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 등을 상대로 낸 위법 쟁의행위 금지 가처분 신청을 일부 인용했다.
재판부는 결정문을 통해 방재(재해 예방)·배기·배수시설 등 삼성전자가 주장한 시설 모두를 노동조합법상 '안전보호시설'로 인정했다. 이에 따라 노조는 쟁의행위 기간에도 해당 시설을 쟁의 이전과 동일한 수준의 인력·가동시간·가동규모로 유지·운영해야 한다.
웨이퍼 변질 방지 작업과 작업시설 손상 방지 업무 역시 '보안작업'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반도체 공정 특성상 설비 손상이 발생하면 복구와 재가동에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는 만큼 파업 중에도 정상 수준의 유지 작업이 필요하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초정밀 미세장비에 해당하는 반도체 시설은 설비가 한번 손상되면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소요된다"며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서 삼성전자가 차지하는 비중 등을 고려하면 생산 차질은 자동차·가전·정보통신 산업 전반의 생산 지연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어 "이는 사후 금전 배상만으로 회복될 수 없는 현저한 손해 내지 급박한 위험에 해당한다"고 부연했다.
법원은 초기업노조에 대해 생산시설 점거도 금지했다. 시설 전부 또는 일부를 점거하거나 잠금장치를 설치하고 근로자 출입을 방해하는 행위를 금지했으며, 이를 위반할 경우 노조별 하루 1억원, 노조 간부는 하루 1000만원씩 지급하도록 했다.
법원이 사측 요구를 전부 받아들인 것은 아니다. 전국삼성전자노조와 우하경 위원장에 대한 별도 시설 점거 금지 신청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쟁의 참가를 호소하거나 설득하는 과정에서의 협박 사용 금지, 임직원 방해 금지 등 일부 신청도 기각했다.
법조계는 이번 결정을 사실상 노조 측에 상당한 부담이 걸린 판단으로 해석하고 있다. 권재열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법원이 말한 '평상시와 동일한 수준'은 완전 정상가동을 의미한다기보다 생산라인 자체를 멈추지는 말라는 취지에 가깝다"며 "비상 대기인력까지 포함한 수준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생산과 설비 유지가 가능한 정도는 유지하라는 의미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하루 1억원'의 간접강제 조항도 노조 입장에서는 부담이 적지 않다는 분석이다. 파업이 장기화할 경우 간접강제금 규모 역시 커질 수밖에 없다.
노사 '유지 인력' 해석 놓고 충돌
노조 측은 이번 결정이 실제 쟁의행위에는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며, 의미를 축소하고 있다. 재판부가 노동조합법상 '정상적 유지·운영'의 기준을 "평상시 평일 '또는' 평상시 주말·휴일 수준"으로 해석한 만큼, 반드시 평일 수준 인력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주장이다.
초기업노조는 "법원 결정을 존중해 예정된 쟁의활동을 진행할 것"이라며 "사측은 DS부문 기준 약 7000명 수준의 유지 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해왔지만 재판부 판단에 따르면 실제 필요 인력은 그보다 더 적을 수 있어 쟁의행위에는 큰 영향이 없다"고 밝혔다.
삼성전자 측은 "노조가 법원 결정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회사는 이날 사내 공지를 통해 "'평상시'는 평상시의 평일 또는 평상시의 주말·휴일을 의미한다고 법원이 명확히 판단했다"며 "평일에는 평일 수준 인력을, 주말·휴일에는 해당 수준 인력을 각각 유지하라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 내부에서는 반도체 생산라인의 안전·보안 기능이 멈추는 최악의 상황은 피했다는 안도감이 나온다. 다만 필수 유지 인력만으로 정상 생산까지 담보되는 것은 아니라는 우려도 여전하다.
반도체 공정은 웨이퍼 투입부터 가공·검사·패키징까지 연속적으로 맞물려 돌아가는 구조여서 일부 공정만 병목이 생겨도 수율과 출하 차질이 연쇄적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영업이익 연동 성과급 논쟁 확산
일각에선 노조가 요구하는 '영업이익 연동 성과급' 구조 자체가 단순 임금 협상을 넘어 기업 지배구조와 주주 권한까지 흔들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영업이익은 매출에서 원자재 비용과 임금 등을 모두 제외하고 남는 이익인데, 이런 영업이익을 일정 비율로 떼어 성과급 재원으로 우선 배분하자는 것은 사실상 이익처분 구조에 영향을 미치는 성격이라는 지적이다.
권 교수는 "영업이익을 어떻게 배당하고 처분할지는 원칙적으로 주주총회가 결정하는 영역"이라며 "주총 결정 이전에 일정 비율을 구조적 성과급으로 배분하자는 것은 주주총회 통제를 사실상 우회하겠다는 의미와 다르지 않다"고 진단했다.
재계는 이러한 흐름이 삼성전자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고 보고 있다. SK하이닉스 사례 이후 '영업이익의 N%'를 성과급 재원으로 요구하는 움직임이 산업계 전반으로 빠르게 확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삼성전자 노조는 영업이익의 15%를 성과급 재원으로 배분하고 성과급 상한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또 현대차는 영업이익의 30%, 카카오는 10%, 삼성바이오로직스는 20%, LG유플러스는 30% 수준의 각 성과급 재원을 요구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삼성전자 노사는 18일 정부세종청사 중앙노동위원회에서 성과급 갈등을 둘러싼 2차 사후조정을 이어가고 있다. 노사는 이날 오후 7시까지 접점을 찾지 못할 경우 오는 19일 오전 10시 다시 추가 사후조정에 나설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