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창사 이후 두 번째 총파업 위기를 가까스로 넘겼다. 반도체(DS) 부문 특별성과급 신설과 성과급 상한 폐지를 담은 '2026년 임금협약 잠정합의안'이 조합원 찬반투표를 통과하면서다. 다만 갈등의 불씨가 완전히 꺼지진 않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DS와 완제품(DX) 사업부 간 성과급 격차가 수면 위로 떠오른 데다 복수노조 체제 아래 노노갈등까지 본격화하는 양상이다.
DS 보상 강화에 DX 반발…표심도 두 쪽
27일 삼성전자와 노동조합 공동교섭단은 경기 용인시 기흥 '더 유니버스'에서 2026년 임금협약 조인식을 열었다. 조인식에는 여명구 삼성전자 DS부문 피플팀장(부사장)과 김형로 부사장, 최승호 삼성그룹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지부 위원장, 김재원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 정책기획국장 등이 참석했다.
여명구 부사장은 이날 조인식에서 "이번 임금협약 타결을 시작으로 노사가 한마음이 돼 글로벌 경쟁력 강화에 힘쓰겠다"고 말했다. 최승호 위원장도 "아쉬운 부분도 있었지만 장기간 논의 끝에 의미 있는 합의에 도달했다"고 밝혔다.
이번 협상은 지난해 12월 상견례 이후 167일 만에 마무리됐다. 삼성전자 노사는 총파업 예정일 하루 전인 지난 20일 밤 극적으로 잠정합의안을 도출, 이후 22일부터 이날 오전까지 진행된 찬반투표에서 투표율 95.5%, 찬성률 73.7%로 최종 가결됐다.
내부 표심은 극명하게 갈렸다. 반도체 중심의 초기업노조는 80% 넘는 찬성률을 기록한 반면 DX부문 조합원 비중이 높은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은 찬성률이 20%대에 그쳤다. DS 중심 보상 체계가 사실상 공식화됐다는 DX부문 내부 반발이 표심으로 이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번 합의안은 DS부문 중심 보상 구조 강화에 방점이 찍혔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합의안에 따르면 DS부문은 영업이익의 10.5%를 재원으로 별도 특별경영성과급을 지급받는다. 지급률 상한도 사실상 없앴다. 기존 OPI(초과이익성과급)는 종전처럼 연봉의 최대 50% 한도 내에서 유지되지만, 여기에 DS 특별성과급까지 추가되면서 반도체 사업부 보상 규모는 대폭 커졌다.
업계에서는 메모리사업부 직원의 경우 연봉 8000만원~1억원 기준 최대 6억원 수준의 성과급도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적자인 파운드리·시스템LSI 사업부 역시 최대 1억6000만원 안팎의 성과급이 기대된다. 반면 특별성과급 대상서 제외된 DX부문은 600만원 상당의 자사주 지급에 그친다. "같은 삼성전자 안에서도 보상 체계가 완전히 갈라졌다"는 불만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 DX부문 내부 반발은 협상 막판까지 이어졌다. 비반도체 부문 직원들로 구성된 동행노조는 지난 26일 공동교섭단 참여 여부를 둘러싼 투표권 배제 문제를 제기하며 찬반투표 절차 중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같은 날 수원지법은 별개 사건인 '2026년 단체교섭 중지' 가처분 신청에 대해선 기각 결정을 내렸다. 앞서 삼성전자 DX부문 조합원 5인으로 구성된 '삼성전자 직원 권리 회복 법률대응연대'는 초기업노조가 총회·대의원회 의결 없이 교섭요구안을 확정했다며 절차적 정당성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DS·DX 분리 고민 중"…노조 재편 가능성도
법원은 온라인 설문조사 등을 통한 의견 수렴 절차가 있었다고 판단하면서도 교섭 중단 필요성은 인정하지 않았다. 다만 총회·대의원회 의결 생략 문제와 관련해선 별도 손해배상 청구 등으로 다툴 수 있다는 취지의 판단을 함께 내놨다. 법률대리인 측은 "이번 결정이 단체교섭 절차의 정당성을 확정한 것은 아니다"라며 추가 법적 대응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최승호 초기업노조 위원장은 향후 노조 운영 방향과 관련해 "LSI와 파운드리 개선을 중점으로 계획하고 있고 DS·DX 교섭 분리에 대해서도 고민 중"이라며 "내년 방향에 대해 내부적으로 정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번 협상을 계기로 삼성전자 내부 교섭 구조 자체가 재편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노태문 삼성전자 DX부문장(사장)도 이날 임직원들에게 별도 메시지를 보내 수습에 나섰다. 노 사장은 "많은 분들이 소외감과 박탈감, 회사에 대한 실망과 서운함을 느끼셨으리라 생각한다"며 "DX부문의 경쟁력을 회복하고 다시 성장의 흐름을 만들어내는 일에 더 엄중하게 임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글로벌 수요 불확실성과 치열한 경쟁 속에서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DX부문은 다시 해낼 수 있다고 믿는다"며 "원가 구조와 사업 운영 방식, 상품 경쟁력 전반을 원점에서 재점검하겠다"고 부연했다.
재계는 이번 삼성전자 합의를 단순한 임단협 타결 이상의 신호로 보고 있다. 반도체 호황을 기반으로 한 '영업이익 연동형 고성과급' 모델이 향후 대기업 교섭 테이블 전반으로 확산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현대자동차 노조가 올해 임단협에서 순이익 30% 수준의 성과급 지급 등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삼성 사례가 추가 압박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특히 노란봉투법 시행과 복수노조 체제 확산까지 맞물리면서 대기업 노사관계가 과거보다 훨씬 복잡하고 다층적인 국면으로 들어가고 있다는 분석이다.
삼성은 사실상 '무노조 경영' 체제 아래 성장해온 기업이다. 2020년 이재용 당시 부회장의 '무노조 경영 폐기' 선언 이후 본격적인 노사 체계 전환이 시작됐지만, 파업 경험이나 교섭 시스템은 여전히 초기 단계라는 평가가 많다.
결국 이번 협상은 기업 내부 노사 문제를 넘어 정부·법원·정치권까지 동시에 움직인 이례적 분쟁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크다. 수원지법은 파업 과정에서 안전보호시설 유지 가처분을 인용, 정부는 긴급조정권 가능성까지 언급하며 압박 수위를 높였다. 파업 직전 이재용 회장이 일본 출장을 중단하고 귀국해 공개 사과에 나선 점 역시 막판 협상 타결에 영향을 미쳤다는 해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