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 들어서도 유가 하락세가 좀처럼 멈추지 않고 있다. 배럴당 30달러선을 위협받으며 지난해부터 그려왔던 최악의 시나리오에 가까워진 모양새다. 시장에서는 적어도 1분기까지는 원유 시장이 요동칠 것으로 보고 있다.
일부에서는 1990년대 겪었던 장기 저유가 사이클에 진입했다는 경고도 나온다. 원유공급 과잉과 미국의 달러화 강세까지 흡사하다는 평가다. 반면, 연말로 갈수록 유가가 반등할 것이란 전망도 여전히 맞서고 있다.
◇ 바닥 못 찾는 유가
국제 유가는 지난주 30달러대 초반까지 급락했다. 미국 서부텍사스유는 지난 한 주간 12.17%나 급락하며 32.56달러까지 내려섰다.
지난해도 국제 유가는 부진을 거듭했지만 연초들어 하락속도가 더욱 가팔라지고 있다.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간 갈등으로 유가 반등 가능성이 한때 제기됐지만 공급과잉 상황이 해소되지 못하면서 유가는 아래 쪽을 향하고 있다.
예년보다 따뜻한 날씨에 따른 난방수요 감소, 이란의 원유 공급 재개 등 수급적인 요인만 감안해도 1분기까지 유가 약세 쪽에 무게가 실린다.
게다가 연초부터 중국 증시가 급락하는 등 중국의 경기 둔화 우려가 지속되고 있는 점도 원유를 포함한 원자재 가격을 크게 떨어뜨리고 있다.
▲ 최근 한 달 간 미국 텍사스산 원유 가격 추이(출처:NYT) |
◇ 90년대 장기 저유가 사이클 재현 우려
일부에서는 국제 유가가 1990년대 장기 저유가 국면에 진힙할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글로벌 경기 사이클이 저성장에 빠져있고 미국의 금리인상과 달러가 강세를 보이는 것도 당시와 유사하다는 분석이다. 90년대에도 지금과 비슷한 원유 공급 과잉이 나타났다.
90년대 당시 유가는 수년간 10~20달러 대 사이에서 장기 박스권에 갇혀 있다가 90년대 후반부터 가파르게 오른 바 있다.
하이투자증권은 대개 글로벌 경기와 유가는 높은 상관관계를 보여왔고 현재 글로벌 경기가 90년대 중후반 5차례의 확장국면 중 가장 미약한 속도를 보여주고 있는데 주목했다. 또 90년대에 미국이 글로벌 경제 주도권을 쥐면서 달러화가 강세 사이클을 보인 것이나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결속력이 급격히 약화되면서 원유 공급이 초과된 것도 현재와 유사하다는 설명이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2000년 중후반 원자재 빅사이클을 주도한 중국 투자 약화 역시 장기 저유가 사이클에 힘을 싣는다"며 "다만 유가가 크게 하락하기보다는 20달러대 중후반 수준에서 저점을 타진할 것"으로 내다봤다.
▲ 국제 유가 추이(출처:하이투자증권) |
◇ 연말께 수급 여건 반전 기대감도 '여전'
당장 올해만 놓고보면 어려운 해가 예고되고 있지만 유가 반등을 예상하는 쪽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올해 전체 흐름 상 1분기까지는 유가 하락세가 지속되다가 연말로 갈수록 상승할 것이란 전망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폴 생키 울프리서치 매니징 디렉터는 CNBC에서 "올해 유가 흐름은 현 수준보다 10달러 가량 높은 30달러대를 예상한다"며 "OPEC 회원국들이 감축 등에 결국 합의점을 찾으면 90달러대로 다시 올라서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 등도 비슷한 견해를 제시했다. 포린폴리시는 전문가들을 인용, "올해 미국의 원유 생산이 셰일오일 붐 이후 처음으로 줄어들 것으로 보이고 글로벌 원유 수요가 빠르지는 않지만 여전히 늘어나고 있다"며 "유가가 현 수준의 3배 가까이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올해 말께 원유 수급이 빡빡해지면서 유가가 세자릿수인 100달러대로 되오를 것이란 논리다.
미국 에너지정보청은 올해 미국의 셰일오일 생산이 지난해 4월 정점을 기록한 후 하루 생산량이 100만배럴까지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일례로 미국 다코타주의 셰일오일 생산은 2009년 이후 가장 낮은으로 떨어졌다.
비 OPEC 회원국의 원유 생산증가율도 2008년 이후 처음으로 60만배럴까지 감소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원유 및 천연가스 전문 컨설팅사인 우드 맥킨지는 원유 재고가 올해 중반부터 빠르게 줄어들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