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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하는 자산관리서비스…새 게임체인저는 'AI' 

  • 2023.06.09(금) 06:45

창간10주년기획[DX인사이트]
수익률 광고, 연금시장 확대…로보어드바이저 재부각 
AI 기술 기반 초개인화 투자...'다이렉트인덱싱' 등장 

최근 서울 동작구에 있는 한 도서관은 재테크 관련 희망도서 구입을 당분간 중단한다는 공고를 냈다. 주식투자, 재테크 관련 도서가 사회과학 서가를 잠식하면서 장서 불균형 문제가 심각해졌기 때문이다. 

이는 재테크나 자산관리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얼마나 뜨거운지 보여주는 예다. 지난해 국내 개인투자자 수는 1400만명을 넘어섰다. 금리 인상과 글로벌 경기침체 여파 등으로 주식투자 열풍은 한풀 꺾였지만, 재테크에 관한 관심은 여전히 뜨겁다. 

이런 전 국민적 관심 속에서도 '성공적인 자산관리'는 쉽지 않다. 관련 정보는 수없이 넘쳐나지만 '나에게 꼭 맞는 자산관리 방법'을 찾기 어려운 탓이다. 

고액자산가들은 그동안 은행이나 증권사의 프라이빗뱅킹(PB) 서비스를 통해 이 같은 고민을 해소해 왔다. PB 서비스란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투자방향을 제시해주거나 자산을 일임받아 고객 성향에 맞게 직접 관리해주는 서비스다. 

디지털 금융기술의 발전은 자산가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던 PB 서비스를 더 저렴한 비용으로 더 많은 일반 대중에게 확대하는 길을 열었다. 바로 인공지능(AI)을 활용한 로보어드바이저(Robo-advisor·RA)를 통해서다. 

금융투자산업 전반에 AI가 혁신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되는 가운데 AI 기술의 고도화는 산업 내 자산관리 서비스를 주도할 '게임체인저'로 주목받고 있다. 특히 AI 기술에 기반한 RA는 앞으로 비대면 투자일임 시장 확대와 함께 기존 펀드와 상장지수펀드(ETF) 시장을 대체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직접투자 시장이 RA를 통해 자산관리를 맡기는 간접투자 시장으로 변모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로보어드바이저, 전국민의 PB 서비스로? 

RA는 로봇(Robot)과 투자전문가(Advisor)의 합성어다. 자산을 맡아 대신 투자해주는 전문가 역할을 AI가 대신하는 것이다. 빅데이터 기반 알고리즘을 통해 투자자 성향에 맞는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투자자를 대신해 자동으로 매매하며 시장 상황 등을 고려해 포트폴리오 리밸런싱(자산의 종류, 비중 등을 재조정)도 진행한다. 알고리즘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인건비가 들지 않아 상대적으로 수수료가 저렴하고 데이터를 기반으로 해 안정적 수익 추구가 가능하다. 

일반 공모펀드가 불특정 다수 자금을 한데 모아 운용하는 방식이라면 RA는 일임을 통해 개인계좌에서 별도로 펀드를 만들어 운용하는 식이다. 펀드 자금 이탈에 따른 어쩔 수 없는 포트폴리오 변경이나 편입 종목 등에 제한이 없어 더 개인화된 맞춤화 서비스가 가능하다.

RA는 2016년 알파고 등장 이후 국내에서도 주목받았지만, 당시 비대면 투자일임이 금지돼 시장에 제대로 안착하지 못했다. 그러다 2019년 4월 비대면 투자일임이 허용되면서 본격적으로 투자자들에게 선보이기 시작했다. 지난 8일부터는 RA 상품 수익률 광고가 가능해지면서 RA에 대한 인식과 시장규모가 한단계 성장할 것이란 기대도 나온다. 

RA업체 콴텍 이상근 대표는 "RA라는 좋은 제도가 있음에도 그동안 대중들에게 알리기가 쉽지 않았다"면서 "비대면 투자일임 수익률 광고가 가능해져 RA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 향후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코스콤 로보어드바이저센터에 따르면 지난 4월 말 기준 국내 로보어드바이저(테스트베드 통과 회사 대상) 서비스 계약자 수는 36만7242명으로, 1년 전과 비교해 약 6만명 증가했다. 같은 기간 관리자산(AUM) 규모도 1조8646억원으로 1000억원 가까이 늘었다. 시장 전체 규모가 아닌 테스트베드 통과 회사만 적용한 데이터인 만큼 실제 가입자 수와 시장 규모는 더 크게 성장했을 것으로 예측된다. 

이는 지난해 증시가 크게 하락한 가운데서도 RA가 운용한 일임형 투자상품들이 선방하는 모습을 보인 덕분이다. 2025년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도입 이후에는 펀드시장 수요를 끌어올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상근 대표는 "금투세 도입 시 공모·사모펀드의 매매차익에 대해 최고 27.5%의 세금을 내야한다"면서 "RA는 이런 세금 이슈를 피할 수 있어 향후 펀드, ETF 등의 금융 패러다임을 비대면 투자일임으로 옮겨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금시장을 통한 RA시장 확대도 기대된다. 또 다른 RA업체 파운트의 김영빈 대표는 "RA는 장기간 리스크를 관리해 자산을 믿고 맡기는 맞춤형 자산관리 상품에 적합한 기술"이라며 "장기투자는 RA의 핵심가치를 가장 잘 구현해 낼 수 있는 방법으로, 연금시장에 가장 적합하다"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연금투자는 계속해 리밸런싱을 해줘야 하는 상품인데, 금융사들도 인력 부족으로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퇴직연금 일임이 허용되면 RA 역시 연금시장과 더불어 급격히 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AI 일임 투자서비스 핀트(fint)를 운영하는 디셈버앤컴퍼니자산운용 역시 RA가 연금시장에 최적화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디셈버앤컴퍼니운용 관계자는 "AI 엔진이 알아서 투자를 수행하기 때문에 투자자는 투자를 위해 별도의 시간을 내거나 사전 지식 없이도 최적의 맞춤형 재테크 서비스를 누릴 수 있다"면서 "앞으로 규제 완화 등을 통해 퇴직연금 시장까지 RA 확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AI 활용 초개인화 투자…'다이렉트인덱싱' 등장

직접투자를 원하는 투자자들을 위한 초개인화된 맞춤형 투자방법도 새롭게 등장했다. 바로 '다이렉트인덱싱(Direct Indexing)'이다. 

지금까지 개인투자자는 개별 주식을 종목별로 거래하거나 증권사나 은행 등 판매사가 종목, 펀드, ETF 등을 조합해 만든 포트폴리오에 맞춰서만 투자할 수 있었다.

다이렉트인덱싱은 이런 틀을 깨고 투자자가 자신만의 포트폴리오를 직접 구성해 투자할 수 있다. 인덱스는 우리나라 코스피나 미국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처럼 시장의 흐름을 알 수 있도록 만들어진 지수를 의미하는데, 투자자가 직접 종목을 선택하고 비중을 조절해 나만의 지수(인덱스)를 만들어 투자하는 방식이 바로 다이렉트인덱싱이다. 

예를 들어 2차전지 지수에 똑같이 투자한다고 해도 종목 비중을 달리하거나 종목 일부를 빼고 더할 수 있다. 또 미세조정을 통해 배당수익률 5% 이상, 주당순이익(EPS) 증가율 6% 이상 등의 조건을 걸어 투자종목을 거르고 투자금액이나 리밸런싱 주기, 투자 강도 등을 달리해 차별화된 초 개인화된 상품을 만드는 게 가능하다.

코로나19로 비대면 활동이 급증하고 AI기술 발전과 직접 투자시장이 확대되면서 다이렉트인덱싱 시장은 단기간에 급속도로 커지고 있다. 

미국 리서치기관 세룰리(Cerulli)는 자산관리 시장에서 향후 5년간 다이렉트인덱싱 부문이 연평균 12.4%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ETF(11.3%), 개인자산관리계좌(9.6%), 뮤추얼펀드(3.3%) 대비 높은 성장률이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올리버와이먼은 전 세계 다이렉트인덱싱 시장 규모가 2018년 1300억달러, 2020년 3500억달러에서 2025년에는 1조5000억달러 규모로 커질 것으로 추정했다. 

미국에서는 2020년 찰스 슈왑을 시작으로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뱅가드 등 글로벌 금융기업들이 다이렉트인덱싱 서비스 관련 스타트업을 인수·합병(M&A)하면서 시장 선점에 나서고 있다. 국내에서는 NH투자증권과 KB증권·KB운용이 다이렉트인덱싱 서비스를 선보였다. 

NH투자증권은 기존 시장지수와 자체 개발한 지수를 포함해 총 14개 지수를 제공하고 고객이 맞춤제작할 수 있도록 했다. 지수를 그대로 추종하거나 비중을 변경할 수도 있고 테마나 업종을 추가하거나 성장성·배당·밸류 등 투자성향을 추가할 수도 있다. 

NH투자증권 MTS 내 '다이렉트인덱싱' 지수(인덱싱) 만들기 화면 

선택사항별로 기간수익률을 제공하고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직관적인 사용자 경험·인터페이스(사용자 접근 편의 UX·UI)를 제공해 초보자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했다. 다만 항목별로 3개씩만 선택할 수 있고 국내주식만 편입이 가능하다. 구성종목 수에 따라 최소투자금은 200만원에서 1600만원까지 늘어날 수 있는데, ETF 등과 비교하면 투자금액에 따른 진입장벽이 높은 셈이다. 

KB증권·KB운용의 서비스는 테마와 업종, 국내지수를 포함해 대가들의 투자 전략 등 600여개에 달하는 지수를 선택할 수 있다. 특히 대가들의 투자전략은 주가수익비율(PER), 부채비율, 자기자본이익률(ROE), 총자산이익률(ROA), 순이익성장률, 배당수익률, 매출증가율 등 대가들이 정한 기준의 투자전략을 제공하고 여기에 투자종목, 투자금액, 리밸런싱 주기 등을 추가로 선택하는 게 가능하다.

KB증권 MTS 내 '다이렉트인덱싱' 나만의 전략 만들기 화면

NH투자증권에 비해 선택의 폭이 훨씬 넓은 것이 장점이지만 반대로 초보자 등은 선택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투자금액은 100만원부터 설정이 가능하지만, 전략을 많이 넣을 경우 예상 수익률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을 여지가 있다.

두 곳 모두 투자 전 시뮬레이션을 통해 수익률 추이를 살펴보거나 다른 투자자들이 만든 지수와 비교해 보고 다른 지수를 따라 투자하는 것도 가능하다. 펀드나 ETF 일임투자(1~1.5%)에 비해 수수료가 0.5%로 절반 수준인 것도 강점이다. 단, 미국처럼 절세효과나 소수점투자를 통해 적은 비용으로 투자가 어려운 것은 단점이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다이렉트인덱싱은 선진금융시장의 개인화된 투자방식의 게임체인저로 등장한 상품"이라며 "시장이 확대되면 국내 자본시장에도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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