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인의 가상자산 투자에 대한 논의가 물꼬를 트면서 커스터디(수탁) 사업이 유망 먹거리로 부상하고 있다. 은행 자본을 업은 전문 수탁업체들이 시장 선점에 속도를 내고 있는 가운데, 사업 기반과 기술·운영 노하우까지 갖춘 거래소들은 정작 뒷짐을 지고 있어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진다.
28일 업계에 따르면 현재 수탁서비스를 직접 제공하거나 자회사 등을 통해 관련사업을 영위하는 거래소는 한 곳도 없다. 코빗만 한국디지털자산수탁(KDAC)의 지분을 보유해 연결고리를 마련해뒀을 뿐 업비트와 빗썸은 수년전 서비스 중단 후 이렇다할 재개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거래소들은 시장 초기부터 수탁사업에 관심이 많았다. 업비트 운영사 두나무는 지난 2019년 자회사 DXM을 통해 업비트세이프를 운영했고, 빗썸도 이듬해 자회사 볼트러스트를 통해 '빗썸커스터디'를 론칭했다. 또 코인원은 스테이킹 방식을 활용했고 코빗은 KDAC을 설립했다. 당시 거래소들은 재단과 투자사, 일반기업들의 보유 가상자산 관리와 투자를 위해 법인 대상 수탁사업에 진출했다.
하지만 높은 관심과 유리한 입지에도 불구하고 거래소들은 2021년경 수탁사업을 잇달아 접었다. 사업 전망, 비용문제 등 사정은 다양했지만 개정 특정금융정보법 시행과 사업자(VASP) 신고제 도입 영향이 컸다.
거래소의 수탁사업을 직접 금지하는 법규정과 행정지도는 없었지만 원화 실명계정 도입 과정에서 은행의 힘이 더 셌고, 당시에도 거래소 쏠림과 업계 불균형 심화에 대한 당국과 업계의 우려가 사업 확장을 가로막았다.
이 밖에도 수탁업에 대한 별도의 사업자 라이선스를 따는데 부담이 컸다. 또 테라·루나 사태 발발로 가상자산 업계에 대한 부정적 시각과 당국이 규제 일변도 스탠스를 취하면서 거래소들이 움츠러든 면도 있다.
그렇게 거래소가 수탁업을 내려 놓은 사이 여수신 사업 기반을 갖추고 신사업에 목말라 있던 은행이 주도권을 쥐게 됐다. 현재 신한, KB국민, NH농협, 하나은행 등 시중은행들은 한국디지털애셋(KODA), KDAC, 해외업체 비트고 등 주요 수탁업체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다만 향후 법인 투자가 허용되고 관련규정이 구체화되면 거래소들이 다시 한번 수탁업에 뛰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미 수탁업으로 확장이 가능한 스테이킹과 렌딩, 고액자산가 대상 서비스 노하우와 데이터를 축적해 길만 열리면 빠르게 시장을 장악할 가능성도 있다.
거래소 관계자는 "법인 투자에 대한 규정도 없고 거래소 쏠림에 대한 우려 등으로 먼저 나서서 수탁업을 하겠다는 거래소는 없을 것"이라며 "다만 지금도 거래소로 유입되는 재단 물량을 관리하기 때문에 어느정도는 수탁업과 비슷한 기능을 갖추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대부분 거래소는 수탁업에 대한 경험과 노하우가 있고 현재 스테이킹, 예치, 고액투자자 대상 서비스 등 커스터디와 연관된 사업을 하고 있어 규제가 명확해지고 분위기가 조성되면 언제든 수탁 시장에 진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거래소가 향후 은행과 손잡거나 수탁업체 지분 투자 등을 통해 시장에 진출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거래소들은 이전부터 커스터디에 관심이 많았다"며 "자금력 있는 대형거래소들은 지분 투자나 은행과 협업을 통해 수탁사업에 뛰어들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