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후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토큰증권(STO) 등이 도입되면 법인 대상 가상자산 수탁시장이 급격하게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글로벌 수탁업체가 국내시장 진출을 본격화하고 있다.
이에 업계에서는 막대한 자본력을 갖춘 외국계 대기업의 진출로 국내기업이 역차별을 받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국내 수탁업체들은 관련법과 당국의 보수적인 기조로 대기업 투자를 받을 수 없는 반면, 외국기업은 이러한 제한을 받지 않아 자본력을 동원해 국내시장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할 수 있다는 것이다.
5일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은행을 제외한 미국계 세계 최대 가상자산 수탁업체 비트고(BitGo)가 한국시장 진출을 본격화한다고 선언했다. 비트고는 올해 4월 비트고코리아를 설립하고 하나금융그룹과 SK텔레콤의 지분 투자를 받았다.
비트고는 부산디지털자산거래소와 양해각서도 맺었다. 양사는 부산디지털자산거래소의 디지털자산 거래 수탁 서비스 등에 대한 다양한 협력 방안을 논의하고 향후 부산디지털자산거래소에 웹(Web) 3.0 기반의 디지털자산 플랫폼 운영 노하우 등을 공유할 계획이다.
비트고코리아는 국내 법인이지만 지분 50% 이상을 본사가 보유하고 이영로 대표도 비트고의 아태지역 대표를 지내 사실상 본사가 직접 지배하는 외국회사에 가깝다. 국내기업 중에는 하나금융그룹이 계열사를 통해 25%, SKT가 10%를 보유하고 있다.
막대한 자금력과 기술력을 갖춘 본사의 직접 지원은 물론 국내 은행과 대기업까지 든든한 우군을 업고 국내 진출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반면, 국내 수탁업체는 대기업 등의 전폭적인 지원 없이 근근이 운영을 이어가고 있다. 가상자산사업자(VASP) 라이선스를 가진 업체는 한국디지털에셋(KODA), 한국디지털자산수탁(KDAC), 인피닛블록 등으로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 시행 이후 분리 보관이 의무화되면서 수탁고와 고객사는 늘고 있지만 수익원이 마땅치 않아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향후 수탁시장이 성장할 것을 대비해 버티고 있지만 인력과 시스템 등 사업 인프라를 구축하고 글로벌 플레이어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금융사나 대기업의 투자가 필수다. 하지만 국내 수탁사들은 은행법 등 관련규정에 따라 투자를 거의 받지 못하고 있다.
수탁사에 투자하는 기업은 주로 시중은행 등 금융권인데, 은행법은 은행이 투자사 지분의의 15% 미만을 보유하게 하고 직접 경영 참여도 제한하고 있다. 계열사 지분과 우선주 등을 포함해 수탁사에 대한 지분 투자를 늘릴 수 있지만 당국의 보수적인 기조로 이조차 활발하지 않은 실정이다.
실제 KODA, KDAC의 은행 지분율은 14~18% 정도에 그친다. 이 밖에 벤처캐피털 등의 투자를 받았지만 지분율은 높지 않고 은행을 제외한 대기업 투자는 거의 없다.
이에 업계는 국내 가상자산 수탁업체들이 글로벌 플레이어로 성장하고 한국에서도 외국계 대기업과 동등한 체급으로 경쟁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업계 관계자는 "외국계 기업은 사업자 라이선스를 받아도 은행법 등이 적용되지 않아 투자 유치 등에서 훨씬 유리하다"며 "국내업체도 외국계 기업과 체급을 맞춰 경쟁하고 몸집을 키워 해외로 진출할 수 여건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비트고 등 외국계 업체의 국내 라이선스 획득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수탁사업 관련 전세계 표준과 국내 표준은 달라 정보보호관리체계(ISMS), 자금세탁방지(AML), 이상거래 감시 등 시스템을 단기간에 갖추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라이선스를 따도 우리나라에서는 보관 외 운영 등 사업이 제한돼 시장 확장에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