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반포 주공1단지 1·2·4주구의 재건축 조합이 아예 이사비 지원을 받지 않기로 결정했다. 시공사 선정 과정에서 벌어진 이사비 과다 지원 논란에 주택당국까지 개입해 위법 소지가 있다며 시정을 지시하자, 아예 무상 이사비 항목을 삭제하기로 한 것이다.
이것으로 반포주공1단지에서 이사비 관련 논란은 일단락된 듯 보인다. 하지만 그냥 끝은 아니다. 무상 이사비를 못 받게 된 일부 조합원 사이에서는 '역차별'이라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앞으로 재개발·재건축 등 정비사업 때 '정상적 지원 조건'으로 제시할 수 있는 이사비 적정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에 대한 논란도 오히려 커졌다.
◇ 조합 "이사비 명목 제시조건 모두 삭제"
반포 주공1단지 1·2·4주구 재건축 조합은 24일 "서초구청의 시정지시에 따라 현대건설이 제시한 '이사비 7000만원 무상 지급 또는 무이자 이사비 5억원 대출 지원'을 받지 않기로 했다"며 "무상지원 특화제공 조건 중 이사비 명목으로 제시된 부분은 조합장이 이사회 및 대의원회 보고를 거쳐 삭제키로 했다"고 밝혔다.
조합 측에 따르면 이번 사업을 관할하는 서초구청은 지난 22일 조합측에 이사비 명목을 삭제하거나 금액을 조정하라는 시정조치를 내렸다. 조합은 이에 따라 해당 건설사와 조건 변경안을 검토했으나 하루 뒤인 23일 다시 이사비 조건을 아예 백지화하라는 지시가 전달된 것으로 전해졌다.
▲ 반포주공 1단지 전경/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
반포주공1단지 이사비 논란은 현대건설이 입찰제안서에 내건 이사비 무상 조건에서 촉발됐다. 상대인 GS건설은 직간접적 다양한 경로를 통해 이게 위법성이 있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반면 현대건설은 법무법인 율촌의 법률자문을 근거로 '정상적 사업조건 제시'라는 입장을 펴왔다.
한 조합원은 "이사비 제공은 서울시 재건축 표준지침에도 허용되어 있는 것이지만 '과도한 금액'은 문제가 된다는 해석에 따라 시정명령을 받아들여 이사비 지원을 아예 안받기로 했다"고 말했다. 다른 한 조합원은 "정부 방침을 거스르다가 괜한 추가 제재를 받을 수 있다는 얘기가 이사회에서 오간 걸로 안다"고 전했다.
반포 주공1단지 1·2·4주구 재건축 조합은 현대건설과 GS건설을 놓고 오는 27일 잠실체육관에서 조합원 투표로 시공사를 가린다.
◇ "합법적 적정 이사비는 얼마?" 논란 가중
하지만 일부 조합원들이 사이에서는 '왜 기대했던 이사비를 받지 못하는 것이냐'는 불만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다른 정비사업 단지에서도 무상 이사비를 지원한 선례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반포1단지가 워낙 관심을 끌다보니 과한 시정조치가 이뤄진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통상 재개발·재건축 등 정비사업 이주비는 기존주택 감정가의 60% 가량 융자 지원이 이뤄진다. 현대건설이 제시한 이사비는 이에 더해 세대당 7000만원 무상 이사비를 지급 받거나, 무이자로 5억원의 이주비용을 대여하는 것 중 선택할 수 있게한 것이다.
현대건설 측은 국토부로부터 시정명령을 받은 뒤 "당초 제안한 이사비는 이주촉진프로그램의 일환으로 8.2 대책 이후 담보범위 축소로 이주비가 부족한 분들이 많아 제안한 것"이라며 "5억원 무이자 대여가 기본이고, 이게 필요치 않은 조합원에게 이자비용 금액에 상응하는 금액을 준다는 취지였다"고 해명했다.
반포주공1단지 공급면적 138㎡의 경우 올해 공시가격이 19억원 안팎, 현 시세는 35억원 안팎이다. 감정가가 이 중간인 25억원 가량일 것으로 추정하면, 60%인 무이자 이주비는 15억원 가량이다. 현재 1단지 인근 전세시세는 '래미안퍼스티지'에서 크기가 기존주택보다 작은 전용 117.12㎡가 18억원, '아크로리버파크' 전용 112㎡가 20억원선이다.
이주가 시작하면 전세시세가 크게 오를 수 있고 또 4년의 공사기간 때문에 필요 비용은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일대 중개업소 설명이다. 반포본동 한 중개업소 관계자는 "이주비는 시세가 아닌 감정가액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감정가 60%로는 모자랄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며 "현대가 이 빈틈을 보고 파격 조건을 제시했는데 무상지급 7000만원이 이슈가 되면서 무위로 돌아간 듯하다"고 말했다.
현대건설 한 관계자는 "반포1단지 조합원들 중 약 40%가 30년 이상 장기 거주자이고 조합원의 절반가량이 평균 74세의 노년층"이라며 "20~30년 거주한 조합원들의 원활하고 신속한 이주를 배려한 조건이었는데 (시정조치를 받아) 아쉽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국토부가 합법적인 이사비의 적정 수준을 제시하지도 않고 무리한 제재에 나섰다고 지적한다. 현대건설은 타사가 반포 일대 및 수도권 등지에서 1000만~4000만원 가량 무상 이사비 지급을 제안한 사례가 있었는데 아무 조치가 없었다고 주장한다. 업계 한 관계자는 "내년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부활을 앞두고 시공사 선정이 이어지는 가운데 적정 이사비 논란이 여기저기서 문제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