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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人워치]"송전탑 세워야 하니 땅 다오"…토지수용 없다면?

  • 2025.04.04(금) 06:36

오성익 국토부 중앙토지수용위원회 사무국장
국내 토지수용제도, 공익성 심사 도입해 허들 높여
"에너지 전환 시대, 토지수용제 중요성 커져"
우크라이나 재건 등에 '수용시스템' 수출도 기대

"우크라이나 전후 재건과 알래스카 파이프라인 사업, 독일의 에너지 부족 해결책 등 세계의 굵직한 이슈도 토지수용제도가 없거나 제 기능을 못하면 모두 불가능한 일이다."

오성익 국토교통부 중앙토지수용위원회(중토위) 사무국장은 국내의 토지수용제도가 세계의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는 모델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해양수산부를 거쳐 국토교통부에 몸을 담은 뒤 해외건설, 혁신도시, 공간정보, 지적재조사 업무 등을 총괄한 경험이 있다. 지난해 8월 중토위 사무국장에 보임돼 땅의 활용과 관련된 토지수용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오성익 국토교통부 중앙토지수용위원회 사무국장/사진=비즈워치

오 사무국장은 비즈워치와 인터뷰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 중 하나가 우리나라에 잘 갖춰져 있는 시스템이 외국에도 당연히 구비돼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점이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토지수용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가 우리"라고 강조했다. 이어 "일제 강점기 토지수용령을 폐지하고 1962년부터 우리의 토지수용법을 적용하기 시작했는데, 당시는 보상이라는 것조차 미미했다"면서 "1990년에 중앙토지수용위원회와 사무국이 상설로 설치돼 시스템이 갖춰졌고 지금은 토지의 수용과 국민의 사유재산권 보호 간의 균형을 잡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사유재산 강제 수용? 공익성 심사 도입"

토지수용제도는 국가 등 공익사업의 주체가 공공의 필요를 위해 토지의 소유권 또는 사용권을 강제적으로 취득하는 것이다. 사유재산을 허용하지 않는 체제에서 볼 법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정당한 보상을 하도록 하는 헌법 23조와 122조에 근거해 운용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지난해에만 1176건의 토지수용이 있었고 보상 집행 규모는 3조원에 달한다. 

토지수용의 필요성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공익성을 심사받아야 한다. 공익성 심사제도는 2019년 하반기에 새롭게 도입됐다. 도시계획과 토지행정, 법률 등 각 분야의 전문가가 함께 공익성을 검토해 수용권 부여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다. 사업의 공익성과 개인의 재산권을 저울질하는 것이 토지수용을 지휘하는 중앙토지수용위원회의 일이다. 

오성익 중토위 사무국장은 "민간 토지수용이 원활하지 않으면 도로가 국유지와 공유지에서만 연결돼 구불구불하고 끊기는 등 제 기능을 하지 못했을 것이고, 공사 기간도 길었을 것"이라면서 "다만 토지의 수용은 국민의 재산권을 일부 제약하는 것이기 때문에 신중하게 쓰여야 하는 만큼 개발사업 인허가에 앞서 공익성 심사 등을 거치도록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중토위를 찾는 사업시행자 중에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한국도로공사, 국가철도공단, 한국전력공사 등 대형 사업자가 많다"면서 "중토위에 오기 전에 토지 소유자들과 충분한 협의를 먼저 거치는 것이 순서"라고 말했다.

계속해서 "민간사업시행자들도 신청하는 경우가 있는데, 간혹 골프장이 포함된 관광단지 같은 개발사업은 엄격하게 검토한다"면서 "주택사업이나 도시개발사업의 공익성 심사에는 임대 아파트 건설이나 지역사회에 이익을 환원하는 내용이 있으면 공익성을 상대적으로 높게 본다"고 덧붙였다.

토지수용제도는 단순히 땅에 대한 권리 보상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최근 진행하고 있는 가덕도 신공항 건설 사업에도 수용은 필요하다. 땅 외에 어업보상을 놓고도 말이다.

오 사무국장은 "가덕도 공항사업과 같이 해안가에서 이뤄지는 대형 인프라 사업으로 어업에 영향이 있다면 이것도 중앙토지수용위원회의 수용재결을 거친다"면서 "일반적인 토지보상과 다른 점은 어업의 특수성을 함께 고려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업의 시작(고시)과 함께 전문기관을 통해 1년에 걸쳐 어업에 대한 피해 영향 조사를 면밀히 하고 감정평가를 한 후 재결이 이뤄진다는 것이다.

/그래픽=비즈워치

2조달러 목표 K-건설, 수용 수출로 더 탄탄하게

오성익 중토위 사무국장은 지난 2022년 해외건설정책과장에 있으면서 검토했던 '우크라이나 전후 재건' 관련 사업에서도 국내 토지수용제도의 수출 가능성을 엿봤다. 전후 재건 단계에서 국가 주도의 대규모 인프라 복구 및 신설이 필수적인데, 이 과정에서 사유지의 권리확보를 놓고 갈등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다.

오 사무국장은 "우리 건설사들이 해외 사업을 수주 해놓고 진전시키지 못하는 경우가 간혹 있는데 땅에 대한 권리가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사례가 있다"면서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이 현실화할 경우, 안정적인 토지 확보를 위한 고민이 사전에 있어야 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세계적으로 쟁점 되고 있는 '저렴한 도시주택 공급', '안정적 송전망 건설', '국방력 강화' 등을 위해 토지수용이 필요성이 커지고 있는데 국내 토지수용제도나 해외의 여러 사례를 참고해 세계적인 토지수용 표준모델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본다"면서 "이 표준모델을 각 나라에서 현지맞춤형으로 변환해 활용한다면 당면한 문제해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토지수용에 대한 미국과 협력 구상도 밝혔다. 한국의 경제발전을 위한 인프라 건설에 토지수용제도가 역할을 했던 점을 들어 미국과 공동으로 토지수용 관련 연구 프로그램을 만들 것을 제안하고 싶다고 했다. 

오성익 중토위 사무국장(가운데)이 가덕도 신공항 사업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사진=비즈워치

에너지 전환 시대, 토지수용 중요성 더 커진다

송전탑, 공항, 도로, 항만 등 모두가 이용하는 사회기간시설(인프라)는 결국은 땅을 필요로 한다. 오성익 중토위 사무국장은 "에너지 전환 시대에 토지수용은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오 사무국장은 "반도체 클러스터만 하더라도 공장 가동에 필요한 전력을 어디서 끌어오느냐가 문제인데 에너지를 전달하는 송전탑도 결국은 땅 위에 설치하고 송전선은 남의 땅 위를 지나간다"면서 "토지수용제도가 없다면 송전탑을 짓고 송전선을 연결하는 사업도 지지부진할 것이고 산업경쟁력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독일의 토지수용에 대한 입장 변화도 주목했다. 그는 "독일은 원자력발전소 폐쇄와 러시아산 천연가스 공급 중단 등으로 에너지 확보가 어려워져 북부에서 신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전기를 남부의 산업도시들로 끌어오는 것에 신경 쓰고 있다"면서 "토지수용에 소극적이었던 독일이 최근 전략적 목적을 위해서라면 적극적으로 제도 활용에 나서겠다고 선언한 것도 에너지를 염두에 둔 것"이라고 말했다.

오 사무국장은 지난 2월 '처음 공부하는 석유가스산업'이라는 책을 출간하면서 알래스카 LNG 파이프라인 사업에서 토지수용제도 활용성도 살폈다. 그는 알래스카 LNG 파이프라인이 국유지 외에 사유지도 통과해야 하는데, 국내에서는 대륙붕에서 천연가스를 생산하게 되면 해당 가스처리시설을 해안가 육상부에 사유지를 수용해 설치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때 토지수용제도가 기능해야 한다는 거다.

오 사무국장은 "해외건설 누적 2조달러 시대를 향해 나아가는 지금이야말로 고부가가치 건설이 핵심인데, 석유가스 설비와 시설 사업의 역할을 무시할 수 없다고 본다"면서 "알래스카 같은 극한지에서 공사를 위해서는 석유와 가스의 온도부터 파이프라인의 강도까지 다양한 정보를 숙지하고 기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번에 책을 출간한 취지로 "석유가스산업에 대한 이해없이 하는 단순 플랜트 건설은 사실상 단순하도급이나 다름없는 사업구조가 될 것이기 때문에 해당 영역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사업을 주도적으로 기획하는 데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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