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지난 '9·7 공급대책'을 통해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고, 사업 추진 속도를 높여 서울 등 수도권 내 주택 공급을 늘리겠다고 공언했습니다. 공급 부족이 집값 불안의 근본 원인이라는 인식 아래 정비사업을 공급 해법의 한 축으로 삼겠다는 취지였는데요.
이 과정에서 내놓은 대책 중 하나가 내년 1월부터 정비사업조합과 추진위원회에 대한 기금 융자 지원을 확대하는 것입니다. 정비사업 관건이 '속도'인 만큼 자본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조합에 초기사업비 부담을 낮춰 사업 추진을 앞당기기 위해서죠.
조정지역 제외…서울 전역 정비사업 지원 막힐 뻔
하지만 불과 한 달여 만에 발표한 '10·15 안정화 대책'으로 앞서 내놓은 대책이 공염불에 그칠 '뻔'했습니다. 서울 전역과 경기 12곳을 규제지역(투기과열지역, 조정대상지역)으로 묶으면서 정비사업 기금 융자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상황이 벌어졌기 때문이에요.
정부가 올해 초 공표한 '2025년도 주택도시기금 운용계획'에는 정비사업 조합에 최대 50억원 규모의 초기사업비를 주택도시기금 융자로 지원하는 방안이 담겼습니다. 다만 조건으로 '주택법상 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된 지역은 제외한다'는 단서가 붙어 있죠.
결과적으로 10·15 대책으로 서울 전역과 경기 12곳 등 수도권 내 주요 공급책인 정비사업 지원 통로가 사실상 막히는 구조가 만들어진 셈입니다.
이 같은 내용은 지난 11일 열린 내년 정비사업 제도 개편 방향을 공유하는 권역별 주민설명회 자리에서 언급됐어요. 국토교통부와 한국부동산원이 나서 실제 조합원 등을 대상으로 실무적인 설명을 해주는 자리였죠. 부동산원은 '정비사업 정보 비대칭 해소'를 취지로 이런 자리를 마련했는데요. 부동산원의 미래도시 지원센터의 정비사업 컨설팅과 공사비계약 사전컨설팅 등도 소개됐습니다.
참가자들의 관심은 '기금 지원'에 몰렸어요. 주택도시보증공사(HUG) 한 관계자는 "원칙대로라면 서울 전체가 조정대상지역으로 묶여 기금 융자를 내줄 수 없는 상황이었다"면서 "10·15 대책 발표 이후 정부에서 문제 있는 부분들이 있는지 혹 점검하라는 지시가 있었고 그 과정에서 충돌 지점을 확인했다"고 말했어요.
이에 정부는 지난 10월 2025년도 주택도시기금 운용계획을 다시 수정했어요. '조정대상지역은 제외한다'는 문구 앞에 '2025년 1월 기준'이라는 단서를 넣은 건데요. 10·15 대책으로 새롭게 지정한 조정대상지역을 반영하지 않겠다는 의미예요.
대책이 잇따라 나오면서 사실상 정책 간 충돌이 발생한 셈이에요. 다행인 것은 기금 운용계획을 수정하면서 내년부터 정비사업 현장에서 비교적 낮은 금리로 초기사업비 부담을 덜 수 있게 됐다는 점이에요.
2025년 1월을 기준으로 할 경우 지원에서 제외되는 지역은 서초·강남·송파·용산구 등 4곳이에요. 이들 지역을 제외한 21개 자치구와 과천, 광명, 하남 등 경기 주요 지역은 정비사업 기금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됐어요.
다만 기준 시점을 올해 1월로 잡은 데 뚜렷한 정책적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에요. 10·15 대책 영향을 배제하려다 보니 끼워 맞춘 기준에 가깝다는 평가도 나와요. 업계 관계자는 "원칙적으로는 2023년 1월이 기준이 되는 게 맞지만 운용계획을 수정하면서 2025년 1월로 정리됐다"면서 "자칫 서울 전역이 모두 지원대상에서 제외될 뻔하다가 다시 가능해졌다"고 말했어요.
내년부터 기금 융자 조건 완화
국토교통부는 9.7 공급대책 후속 조치로 주택도시기금 융자 대상을 추진위까지 확대하고, 한도를 늘리며 금리는 낮추는 방안을 추진합니다.
조합의 경우 기존 융자 한도가 18억~50억원이었는데요. 내년부터는 최소 기준이 30억원으로 늘고 최대 60억원까지 기금 융자가 가능합니다. 최대 3%였던 금리도 2.2%로 낮췄어요.
자금조달이 어려운 추진위 단계에서도 동일한 금리가 적용됩니다. 융자 한도는 연면적에 따라 차등되며, 최소 10억원에서 최대 15억원까지 대출받을 수 있습니다.
단 용역비, 추진위 운영비, 총회비 등 증빙이 가능한 자금 용도로만 활용이 가능하고요. 융자 기간은 첫 융자일로부터 5년입니다. 조합설립인가가 나지 않은 경우는 조건부로 최대 2년간 더 만기를 미룰 수 있고, 시공사가 선정됐다면 만기 전이라도 30일 이내 융자금을 상환해야 합니다.
재건축 사업장에서 이주하는 소유자와 세입자도 재개발 구역과 마찬가지로 버팀목 전세자금 대출도 받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부부합산 소득 5000만원 이하 소유자·세입자가 대상입니다. 가로주택·자율주택 정비사업의 경우 임대주택을 일정 비율 이상 공급하면 총사업비의 60%까지 융자받을 수 있는 특례도 신설됐습니다.
단 기존에는 조합장과 조합 임원 전원이 연대보증을 서야 했지만, 내년부터는 조합장만 연대보증을 맡도록 제도가 바뀝니다. 대신 조합원 전체가 채무를 승계한다는 내용을 총회 의결을 거쳐 정관에 명시하도록 했어요. 임원 개인의 부담은 줄어든 반면, 책임이 조합원 전체로 분산된 셈이에요.
이번 사안은 규제 완화와 규제 강화 정책이 동시에 작동하면서 정부 스스로 정책 충돌을 만든 사례로 볼 수 있어요. 공급을 늘리기 위해 정비사업을 지원하면서, 한편으로는 시장 안정을 이유로 규제를 강화해 구조적으로 충돌을 일으킨 건데요.
대책 발표 이후 뒤늦게 수습에 나서기보다, 사전에 정책 간 충돌 가능성을 점검하고 조율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부동산 정책은 속도보다 정합성이 중요하고, 서두를수록 후폭풍이 커질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