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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배와 아톰, 그리고 과학재단

  • 2016.09.01(목) 15:44

서경배 회장, 3천억 사재들여 과학재단 설립
기초 생명과학분야 지속 지원

"지금도 아톰을 정말 좋아합니다. 다양한 아톰 모형을 나란히 모아놓을 정도죠."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53·사진)은 1일 서울 광화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서경배 과학재단' 발표회에서 기자와 만나 이렇게 말했다. 서 회장은 '아톰' 이야기에 눈을 반짝이며 "어렸을 적 아톰을 보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이었다. 아톰 덕분에 과학에 대한 흥미와 관심을 가지게 됐다"고 말했다.

'우주소년 아톰'은 국내에서 지난 1970년대 동양방송에서 방영된 로봇 애니메이션이다. 천재 과학자 텐마 박사가 만든 로봇 아톰이 21세기를 배경으로 활약하는 내용이다. 인간처럼 따뜻한 마음을 가진 아톰이 과학을 통해 세상을 밝고 아름답게 만든다는 줄거리다.

서 회장에게 과학은 아톰같은 존재다. 지난 1990년대 휘청이던 아모레퍼시픽을 구원해줬다. 서 회장은 지난 1991년 총파업으로 인해 회사가 거의 망할뻔 했다가 이듬해 1992년에 들어 가장 먼저 했던 일이 중앙연구소를 만드는 것이었다고 회고했다.

"90년대 회사 사정이 너무 어려워서 돈빌리는 것도 너무 힘들고, 물건이 너무 안팔려서 거래처에서 야단 맞는 것도 지겨울 때였습니다. 강한 상품을 만들자고 생각했죠. 과학에 희망을 걸었습니다."

그후 아모레퍼시픽은 1990년대 중반부터 당시 약(藥)으로 쓰이던 '레티노이드'라는 비타민 유도체를 화장품으로 만드는 연구를 시작했다. 연구소는 공기 중에서 산화되는 이 물질을 캡슐로 감싸는 기술을 개발했다. 수백번의 실험을 거쳐 지난 1997년 출시한 제품이 '아이오페 레티놀 2500'이다. 이 제품이 잘 팔린 덕분에 자금사정에 숨통이 트이며 회사가 일어서기 시작했다. 서 회장이 과학기술의 힘을 절실히 체감하게된 계기다.

서 회장은 20여년간 회사의 연구소를 운영하면서 응용과학의 이론적 바탕이 되는 순수과학이 외면받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느꼈던 듯 속내를 털어놓기도 했다. 기초과학은 산업화로 이어지는 주춧돌이지만 국내에서 기초과학의 경쟁력은 해외에 비해 낮은 상황이다.

 

"기업체에서 운영하는 연구소는 돈에 쫓기기 마련입니다. 사실 저희 회사에서도 20년 걸리는 중장기적인 연구는 하지 않습니다. 회사는 대개는 3~5년, 길어야 10년의 중단기적인 연구를 하죠. 하지만 돈에 얽매이지 않고 긴 호흡으로 할 수 있는 연구도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높이 날아야 멀리 볼 수 있는 것처럼 말이죠."

 

▲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이 1일 서울 광화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서경배 과학재단' 발표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아모레퍼시픽]


아톰을 보며 과학으로 풍요로워지는 세상을 꿈꾸던 일곱살 서경배의 꿈은 40여년이 흐른 후 서 회장이 자신의 이름을 넣어 설립한 '서경배 과학재단'으로 현실화됐다. 그는 이날 "오랜 시간 꿈꿔왔던 재단을 세웠다"고 말했다. '혁신적 과학자의 위대한 발견을 지원해 인류에 공헌한다'는 취지다. 이 재단은 지난 8월 미래창조과학부로부터 공익법인으로 정식허가를 받았다.

재단은 향후 20여년간 서 회장이 보유하고 있는 3000억원 규모의 회사 주식을 팔아 운영될 예정이다. 서 회장은 다양한 과학분야 중에서도 평소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던 생명과학분야에 집중해 인재를 육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생명과학분야는 각별히 관심을 가지고 끝까지 밀고 나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잘 안되면 빠져나갈 구멍이 없도록 재단에 제 이름도 걸었습니다."

서경배 과학재단은 매년 공개모집을 통해 3~5명의 과학자를 선발하고, 과제당 5년 기준 최대 25억원의 연구비를 지원할 예정이다. 전문성을 갖추기 위해 생명과학 분야 교수와 연구원 등으로 심사위원단을 구성한다는 계획도 세워놨다. 과학자의 지속적이고 자율적인 연구를 지원하겠다는 목표다.

서 회장은 "3000억원으로 시작했지만 사업을 더 잘해서 1조원을 지원하는 방안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재단이 정말로 오래가기를 원합니다. 세계 최고의 연구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창의적인 신진 과학자를 육성하는데 노력을 기울이겠습니다"고 덧붙였다.

그는 '하늘 밖에 또 다른 하늘이 있다'는 뜻의 천외유천(天外有天)이라는 사자성어로 말을 끝맺었다.

"젊은 신진 과학자들이 하늘 밖에 무궁하게 열려 있는 세계를 꿈꾸며 새로운 연구에 도전하고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습니다. 당장 성과는 없을지 몰라도 10년, 20년 후에는 새로운 것이 나와 세상을 바꿔줄 지도 모르죠. 저 혼자하면 단지 꿈에 불과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함께하면 현실이 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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