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업계에서 이커머스(e-commerce)기업들은 기존 채널들을 위협할 만큼 덩치가 커졌다.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공격적인 영업을 하면서 기존 유통시장을 접수하고 있다. 이 여세를 몰아 최근에는 오프라인 시장까지 진출하고 있다.
기존 유통업체들은 걱정반 호기심반 심정으로 이커머스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다. 시장을 빼앗기고 있는데 대한 우려와 그들의 새로운 시도가 성공해 새로운 판이 만들어질 것인가에 대한 호기심이다. 아직은 이커머스업체들의 시도가 성공할 것이라는 믿음은 약해보인다. 이커머스업체들이 공격적인 투자와 사업확장으로 적자의 늪에서 허덕이고 있기 때문이다. 당사자들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투자를 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언제까지 적자를 감수하고 투자를 계속할 수 있겠느냐"고 평가절하 하는 시각이 여전하다.
◇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누적적자
이커머스 업체들의 선두주자인 쿠팡, 위메프, 티켓몬스터는 최근 작년 실적을 발표했다. 결과는 좋지 않았다. 위메프만이 적자를 줄였을뿐 나머지 업체들은 모두 대규모 적자를 기록했다. 매년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작년 한해동안 3개 업체가 낸 손실 규모는 7713억원에 달한다.
외형은 계속 커지고 있다. 쿠팡의 작년 매출은 1조9159억원으로 지난 2013년대비 약 4000%나 증가했다. 다른 곳도 마찬가지다. 위메프는 395.4%, 티몬은 149.1% 성장했다. 외형은 커지는데 수익성은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 아니라면 상식적이지 않은 수익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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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이커머스 업체들이 대규모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것은 '투자'에 때문이다. 쿠팡의 경우 자체 배송망인 '로켓배송'의 고비용 구조 때문이라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로켓배송은 쿠팡 직매입 상품을 하루만에 배송하는 시스템이다. 쿠팡이 야심차게 내놓은 것으로 소비자들의 큰 호응을 얻고 있다.
하지만 로켓배송은 일반택배 배송에 비해 비용이 많이 든다. 동부증권은 쿠팡의 로켓배송 건당 배송비용이 6000원 가량인 것으로 분석했다. 일반 택배회사를 이용할 경우 건당 1000~1500원선이다. 쿠팡은 '쿠팡맨'이라는 자체 배송인력을 보유하고 있다. 양질의 서비스를 위해서다. 하지만 이를 유지하기 위해 일반택배보다 4배 가량 비싼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배송건수가 늘어날수록 손해보는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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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메프는 작년 하반기 선보인 신선식품 서비스 '신선생'과 신발 편집매장인 '슈즈코치' 등 직매입 관련 서비스들에 대한 투자가 손실의 원인으로 보인다. 다만 위메프는 물류는 아웃소싱으로 해결해 비용을 줄이고 무료배송 비중을 경쟁사보다 높여 더 저렴한 가격에 많이 파는 전략을 취했다. 그 결과 전년대비 적자폭을 줄일 수 있었다. 하지만 실적은 여전히 적자구간에 있다.
티몬의 경우 신규사업 투자에 따른 손실이 컸다. 티몬은 생필품 판매채널인 '슈퍼마트' 취급품목에 냉장냉동·신선식품을 추가했다. 또 서울 장지동 물류센터에 800평 규모의 냉장·냉동창고를 설치했다. 이와 함께 항공권티켓 예약서비스와 세계 호텔예약시스템을 구축했다. 오프라인으로 사업을 확장하기 위한 투자비용이 실적에 부담이 된 셈이다.
◇ "계획된 적자"..통과의례? 포장술?
이커머스 업체들은 지금의 적자구조를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설명한다. 이른바 '계획된 적자'라는 이야기다. 국내 이커머스 업체들이 진행하고 있는 사업방식은 기존 유통업체들의 그것과는 다르다. 새롭게 포맷을 짜고 있다. 그러다보니 초기 투자비용이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초기에는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시장을 키운뒤 점차 오프라인 시장으로 확대해 나가고 있다. 여기에 소비자들의 니즈를 정확히 파악,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쿠팡이 막대한 손실을 감내하면서도 '로켓배송' 정책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나 위메프, 티몬 등이 신선식품사업, 물류센터 건립, 여행사업 진출 등 다양한 오프라인 사업에 나서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다보니 초기 투자비용이 클 수밖에 없고 성과를 내기까지 버티는 과정에서 손실을 불가피하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쿠팡은 지난해 5653억원 영업손실을 내면서 2년만에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이 투자한 1조원 자금을 모두 날렸다는 비판을 받았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이커머스 업체들의 거품이 빠지기 시작한 징조라고 보고있다. 하지만 쿠팡의 생각은 다르다. 쿠팡 관계자는 "겉으로 드러나는 숫자만 보면 대규모 손실이 맞다"며 "하지만 그 숫자 이면에는 새로운 플랫폼을 구축하고 새로운 시장을 만들기 위한 투자가 담겨있다. 이미 예상했고 감내할 만한 손실"이라고 강조했다.
업계에서도 쿠팡 등 이커머스 업체들이 만들어가는 새로운 시장과 사업 모델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기존 유통채널에서 해내지 못한 것들을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에 대한 관심이다. 한 홈쇼핑 업체 관계자는 "쿠팡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면서 "대규모 적자를 어떤 방식으로 뚫어낼지, 또 어떤 사업 모델을 가져갈지 보고 있다. 만일 성공한다면 좋은 벤치마킹 사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비관적으로 보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일종의 모험을 하고 있다고 본다"며 "아무리 좋은 사업 델이라도 적자 규모가 갈수록 커진다면 쓰러질 수밖에 없다. 이미 한계치에 다다랐다. 그럼에도 끌고 가는 것은 새 플랫폼을 만들어 이를 매각하고 그 차익을 챙기겠다는 것 아니겠냐"라고 지적했다.
◇ 오픈마켓의 반격, 이머커스 끝까지 완주할까
이커머스 업체들은 2015년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잇따라 새로운 사업모델들을 선보이며 시장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2015년 온라인 유통업체들중 이커머스 업체들의 매출 증가율은 46.6%로 독보적인 1위였다.
하지만 작년부터 변화가 생겼다. 작년 이커머스 업체들의 매출 증가율은 13.5%로 둔화됐다. 1년만에 33.1%포인트나 하락한 셈이다. 작년 온라인 유통업체들의 전체 매출은 전년대비 18.1% 증가했다. 이커머스 업체들의 매출 증가율은 온라인시장 전체 성장률에 미치지 못했다. 성장속도가 더뎌졌다는 이야기다.
이커머스 업체들의 성장속도가 줄어든 것은 이들 업체들이 외형확장을 자제하고 수익성 높이기 작업에 돌입해서다. 2015년에는 새로운 사업모델을 선보이면서 다양한 경로로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었고 이것이 매출로 연결됐다. 하지만 작년에는 시설투자가 임계점에 다다르고 마케팅 비용을 줄이면서 적자폭을 관리했지만 더불어 매출도 함께 줄어든 것으로 분석된다.
여기에 이베이코리아, 11번가, 인터파크 등 오픈마켓 업체들의 반격이 거세진 것도 이커머스 업체들의 성장세 둔화 요인으로 꼽힌다. 산업통상자원부의 통계에 따르면 작년 오픈마켓 업체들의 매출 증가율은 전년대비 21.5%를 기록해 이머커스 업체들을 제치고 온라인 유통업체들중 1위를 차지했다. 전체 온라인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0.5%로 이커머스 업체 8.2%와 큰 차이를 보였다.
오픈마켓 업체들이 이커머스 업체들을 제칠 수 있었던 것은 온라인·모바일 중심의 소비패턴 변화를 읽었기 때문이다. 또 오픈마켓에 백화점 등을 입점시켜 소비자들에게 맞춤형 프로모션을 진행했던 것도 주효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집계한 작년 유통업체별 매출추이에 따르면 오픈마켓업체들은 분류기준인 총 9개 품목 모두 전년대비 거래액이 늘었다. 반면 이커머스 업체들은 화장품, 생활·가구, 식품을 제외한 전 품목에서 거래액이 감소했다.
업계 관계자는 "이커머스 업체들이 분명 새로운 채널과 시장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 "문제는 그 과정에서 발생한 대규모 적자구조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에 있는데 현 상황으로서는 낙관하기 어렵다. 지금까지는 가능성으로 성장했다면 이제는 그 가능성을 현실로 보여줘야할 때가 왔다고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