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그룹이 부천시 상동에 조성되는 부천영상문화산업단지에 백화점을 세우겠다는 계획이 또 무산됐다. 신세계는 부천시가 백화점 부지 매매 계약 데드라인으로 제시한 이달 30일을 지키지 못했다. 신세계 관계자는 "최근 정용진 부회장이 말한 그대로"라며 "사업을 진행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최근 정 부회장은 한 행사장에서 "지방자치단체간 갈등이 해소돼야 우리가 들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정 부회장이 말한 갈등은 인천시와 부천시간의 신경전을 말한다. 부천시는 신세계와 함께 부천영상문화산업단지를 개발할 계획이었지만 인천시의 반발에 부딪혀 사업이 전면 중단된 상태다. 백화점이 들어설 부천 상동과 인접한 인천시 부평·계양 중소상인이 반발하면서다.
이런 상황에서 인천시가 청라에 신세계 종합쇼핑몰인 '스타필드' 개발 허가를 내주면서, 부천시는 '모순행정'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부천시는 신세계에 빨리 토지 매매 계약을 맺자고 재촉하고 있지만, 신세계는 인천시 눈치를 보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 그래픽=유상연 기자/prtsy201@ |
◇ 부천·인천 사이에 끼인 신세계
신세계와 부천시가 처음 손잡은 때는 2015년 10월이다. 당시 부천시는 부천영상문화산업단지 복합개발 민간사업 우선협상자로 신세계 컨소시엄을 선정했다. 신세계는 이 단지에 백화점과 이마트 트레이더스 등이 들어서는 복합쇼핑몰을 짓겠다는 계획이었다.
계획은 난관에 부딪혔다. 부천 전통시장 등 지역 중소상인들이 반대하면서다. 골목상권이 붕괴되고 교통체증이 유발된다는 주장이었다. 예상치 못한 복병도 만났다. 부천영상문화사업단지가 들어서는 부천시 원미구 상동과 맞닿아 있는 인천시 부평·계양 지역 상권들이 들고 일어났다.
부천시는 1년 만에 계획을 수정했다. 2016년 10월 김만수 부천시장은 "부천영상문화산업단지 개발계획을 축소·변경할 것을 신세계 측에 요구할 것"이라며 "이마트 트레이더스와 쇼핑몰을 제외하고 계획을 다시 작성해 제출하라"고 말했다.
여론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는 2016년 8월 '부천 신세계복합쇼핑몰 방지법'을 발의했다. 그해 11월 인천시는 '부천 신세계복합쇼핑몰 철회시까지 총력 대응'이라는 보도자료까지 냈다.
1년 뒤 신세계는 개발 계획을 축소했다. 2017년 12월 신세계는 대형마트와 복합쇼핑몰을 제외하고 사업규모도 7만6000㎡에서 3만7000㎡로 절반 이상 줄이는 협약을 부천시와 체결했다. 신세계와 부천시가 한발 물러섰지만 개발 반대 목소리는 더 커졌다.
◇ 이웃에서 원수로
부천시와 인천시, 신세계 3자간 입장도 미묘하게 갈리기 시작했다.
골목상권 보호라는 공통된 명분을 내세운 부천시와 인천시가 등을 돌렸다. 인천시가 부천영상문화산업단지에 신세계가 들어오는 것은 반대하면서 청라에 스타필드 개발을 허가해주면서다.
김만수 부천시장은 2016년 "인천 부평구는 우리 시가 화장장 문제로 곤란을 겪을 때 문제가 해결되도록 도왔고, 앞으로 경인고속도로 지하화 등 협력할 사안이 많은 이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최근에는 페이스북에 "인천시가 하남스타필드 보다도 훨씬 더 큰 청라 스타필드를 허가했군요. 자기들은 할거 다 하면서 왜 옆동네 일에는 그동안 반대한건 지 어이가 없네요"라는 글을 남겼다.
인천시는 16만3000㎡(약 4만9000평)규모의 청라 스타필드 건축을 허가했다고 밝히면서 "부평에 인접한 부천 영상문화단지에 계획된 신세계복합쇼핑몰 건립 사업에 대해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한다"고 발표했다.
▲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사진 = 이명근 기자] |
인천시와 부천시가 싸우면서 그 틈에 낀 신세계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가 됐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주도하고 있는 스타필드가 인천시 청라에 들어서기 때문이다. 정 부회장은 최근 "지역단체장끼리 갈등이 해소돼야 들어갈 수 있다"며 "기다리라면 끝까지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부천시는 중립을 지키고 있는 신세계를 압박하고 있다. 신세계가 청라에 들어서는 스타필드 탓에 인천시 눈치를 보며 부천 개발 사업을 미루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신세계는 부천시와 토지매매 계약을 4차례 미뤘다. 최근 부천시는 "신세계가 8월말까지 토지매매계약을 체결하지 않으면 협약이행보증금 약 115억원, 사업추진 과정서 집행된 비용과 기회비용 청구 등 중대한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30일 신세계가 부천시의 '최후통첩'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신세계와 부천시의 갈등의 골은 더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