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이 화제입니다. 주주로서 본격적인 행동에 나서고 있어서입니다. 국민연금은 그동안 국내 수많은 기업의 주주로 참여해왔습니다. 그런데도 주주로서 그다지 큰 목소리를 내지 않았던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졌습니다. 주주로서 권리를 찾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국민연금이 주요 주주로 있는 기업들도 잔뜩 긴장하고 있습니다.
최근 국민연금이 주장하고 있는 대표적인 화두는 '배당 확대'입니다. 기업의 주주라면 누구나 배당 확대를 원합니다. 자신이 투자한 기업이 성과를 내고 투자한 만큼 배당을 받는 것은 주주로서 누려야 할 당연한 권리입니다. 최근 국민연금 행보의 저변엔 이런 인식이 깔려 있습니다. 일각에서 국민연금의 주주행동에 대해 "당연한 일"이라고 평가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하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국민연금의 움직임이 달갑지 않습니다. 특히 오랜 기간 배당금을 올리지 않았거나, 실적이 좋지 않은 기업의 경우 더욱더 그렇습니다. 그동안은 아무 일 없었던 듯, 늘 조용히 지나갔지만 국민연금이 나서면서 배당금에 대해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는 것이 반갑지 않은 일임은 당연합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남양유업입니다.
국민연금은 최근 남양유업에 대해 주요 주주 자격으로 '배당정책 수립 및 공시와 관련해 심의∙자문하는 위원회'를 이사회와 별도로 설치하는 내용의 정관 변경을 제안했습니다. 이 위원회를 통해 남양유업의 고배당 정책을 유도하겠다는 생각입니다. 국민연금은 현재 남양유업의 지분 6.15%를 보유하고 있는 주요 주주입니다.
사실 국민연금의 경고는 예전부터 있었습니다. 지난 2015년 국민연금은 합리적인 배당 정책을 수립하지 않은 기업을 지정해 대화를 추진하고 3년이 넘도록 개선하지 않으면 이를 공개하기로 한 바 있습니다. 이에 따라 국민연금은 지난 2016년 남양유업을 '대화 대상기업'으로 선정했습니다. 이어 이듬해에는 '비공개 중점관리기업', 작년에는 '공개 중점관리기업'으로 지정해 압박 수위를 높여왔습니다.
국민연금이 남양유업을 이처럼 압박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남양유업의 순이익 중 배당금으로 지급된 비율인 현금배당성향은 2015년 3.21%, 2016년 2.30%에 불과했습니다. 2017년엔 17.02% 크게 높아졌지만 상장사 평균인 33.81%와 비교하면 여전히 턱없이 낮은 수준입니다. 여기에 남양유업은 지난 2011년부터 8년간 주당 배당금을 1000원으로 고수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국민연금은 남양유업을 저배당 기업으로 본 겁니다. 더불어 남양유업은 최근 몇 년간 이슈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이제는 남양유업의 주홍글씨가 된 대리점 갑질 논란에서부터 최근엔 어린이 주스 용기에서 곰팡이가 발견되는 등 이런저런 사건사고가 많았습니다. 지속적인 저배당에 이미지 실추까지 겹쳐있으니 국민연금 입장에서는 지적하기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는 셈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실적도 좋지 않습니다. 지난 2016년 418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뒀지만 다음 해인 2017년에는 50억원으로 급감했습니다. 작년에도 분기별 영업이익은 여전히 부진했습니다. 국민연금으로서는 공격할만한 꺼리가 더 생긴 겁니다. 업계에선 국민연금이 굳이 남양유업을 겨냥해 배당 확대 압박을 가하는 데는 이런 복합적인 요인들이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남양유업도 항변할 명분은 있습니다. 실적이 부진한 상황에 배당금을 높이라는 국민연금의 주장은 무리일 수 있습니다. 또 배당금을 높일 경우 오너 일가의 배만 불린다는 비판을 받게 될 것이란 점도 부담입니다. 실제로 남양유업의 경우 최대주주인 홍원식 회장이 51.68%의 지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홍 회장 가족 등 특수관계인 지분까지 합하면 오너 일가의 지분은 53.85%까지 높아집니다.
그래서일까요? 남양유업은 공식적으로 국민연금의 제안을 거부했습니다. 남양유업은 지난 11일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의 지분율이 총 53.85%로 배당을 확대한다면 증가된 배당금의 50% 이상을 가져가는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이 혜택을 보게 된다"며 "사내유보금으로 기업가치 상승을 견인하기 위해 낮은 배당 정책을 유지해 온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어 “지분율 6.15%를 보유한 국민연금이 주주권익을 대변한다는 논리는 이치에 맞지 않다"면서 "오히려 합법적인 고배당 정책을 이용해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의 이익 증대를 대변하는 역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아울러 "저배당 기조를 통한 회사 이익의 사외유출을 최소화해 IMF 외환위기부터 무차입 경영이 가능했고 이후 재무구조 건전성이 높아지고 기업의 가치는 더욱 상승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남양유업의 주장을 요약하면 저배당 구조를 유지한 덕분에 사내 유보금을 쌓을 수 있었고 이것으로 그동안 기업가치를 올려왔다는 겁니다. 또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의 지분율이 높아 고배당을 할 경우 오너 일가가 많은 이득을 가져가는 구조여서 이를 막기 위해 저배당 기조를 고수했다는 논리입니다. 남양유업 입장에서는 저배당 기조를 유지한 나름의 타당한 이유가 있었던 셈입니다.
양측의 주장을 들어보면 모두 수긍이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결국 명분 싸움인데, 남양유업이 공개적으로 거절 의사를 분명히 했지만 국민연금도 물러서지는 않을 겁니다. 일단 국민연금의 주주제안은 오는 3월 주주총회 안건으로 상정될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통과될 가능성은 낮습니다. 남양유업의 지분구조상 홍 회장의 우호 지분이 압도적이기 때문입니다. 남양유업이 국민연금의 제안을 단칼에 거절한 이유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남양유업이 거절했다고 해서 국민연금이 체면을 구긴 것은 아닙니다. 남양유업의 거절은 국민연금도 이미 예상했을 겁니다. 다만 그동안 수면 아래에 있던 남양유업의 저배당 기조와 논리에 세간의 관심을 쏠리게 했다는 것만으로도 국민연금의 전략이 일정 부분 성공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남양유업엔 부담일 테니까요. 더불어 국민연금은 자신들이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부각할 수 있습니다.
물론 국민연금이 최근 잇달아 주주로 참여하고 있는 기업의 경영권에 관여하면서 우려와 불만의 시선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실제로 국민연금의 재채기 한 번에 몇몇 기업들은 이미 배당 상향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재계에선 국민연금이 각 기업의 특성이나 수익구조 등에 대한 면밀한 검토 없이 무작정 수익성 확보를 위해 기업들의 팔 비틀기에 나서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합니다.
어찌 됐건 분명한 사실은 국민연금이 본격적인 행동에 나섰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업계에선 이런 국민연금의 행보에 고도의 계산이 깔려있다고 보는 시선이 많습니다. 업계 관계자는 "국민연금도 남양유업의 배당 확대를 기대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약점이 있는 남양유업을 수면 위로 부각해 시선을 끌고 나아가 비슷한 유형의 기업들에 경고의 메시지를 주려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말했습니다.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떠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