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정혜인 기자] 메리어트는 전 세계 9000개 이상의 호텔을 운영한다. 힐튼, 하얏트, IHG도 각각 수천 개 규모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갖추고 있다. 이 거대한 시장에서 한국 호텔 기업의 이름을 찾기는 쉽지 않다. 수십 년간 국내 호텔·리조트 시장을 키워온 한국 기업들이 해외에서는 좀처럼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한 것은 그만큼 호텔 기업의 해외 진출이 어렵다는 걸 보여준다.
소노트리니티그룹이 지난해 10월 동남아의 호텔·리조트 기업 ‘크로스호텔앤리조트(Cross Hotels&Resorts)’를 인수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호텔업계는 술렁였다. 소노트리니티그룹은 호주 기반 글로벌 여행기업 플라이트센터트래블그룹(FCTG)으로부터 크로스호텔앤리조트를 인수하고 태국과 인도네시아의 16개 호텔을 한꺼번에 거머쥐었다.
한국 호텔 기업이 해외 브랜드를 통째로 사들인 사실상 첫 사례다. 지난 27일 방콕의 '어웨이 방콕 리버사이드 킨'에서 안지홍 소노호텔앤리조트 아시아(소노 아시아) 대표를 만나 아시아 사업 전략과 향후 확장 계획에 대해 들어봤다.
왜 크로스였나
소노트리니티그룹은 국내 최대 호텔·리조트 기업 소노인터내셔널과 항공사 트리니티항공(티웨이항공)을 거느린 종합 여행·레저 그룹이다. 이에 국내에서 쌓아온 역량을 발판 삼아 글로벌 호텔 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하지만 호텔 기업의 해외 진출은 말처럼 쉽지 않다. 낯선 시장에서 땅을 사고 건물을 짓는 데는 막대한 자본이 필요하다. 브랜드 인지도를 쌓기까지는 더 오랜 시간이 걸린다.
단일 호텔의 위탁 운영 계약을 하나씩 따내는 방식으로는 글로벌 체인들과의 격차를 좁히기에 속도가 너무 느렸다. 안지홍 대표는 "한국 브랜드들이 해외에 나가는 게 쉽지 않고 속도도 오래 걸린다"며 "그러다 보니 직접 짓는 것보다 브랜드를 인수해서 빠르게 가자는 결정이 나왔다"고 말했다.
그래서 소노트리니티그룹은 해외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호텔 기업을 인수하기로 했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이 크로스호텔앤리조트였다. 당시 크로스호텔앤리조트는 태국과 인도네시아에 15개 호텔을 위탁 운영하고 있는 기업이었다.
소노트리니티그룹의 계열사인 티웨이항공이 이미 태국과 인도네시아 노선을 운항하고 있는 만큼 호텔과 항공의 시너지를 내기에 적합하다는 판단이 섰다. 크로스호텔앤리조트의 5개 호텔 브랜드들은 태국 시장에서 라이프스타일·부티크 브랜드로 이미 자리를 잡은 이름이기도 했다. 이 회사를 인수하면 15개 호텔과 인지도 높은 브랜드를 단숨에 손에 넣을 수 있었다.
크로스호텔앤리조트 인수에 관심을 기울인 건 소노트리니티그룹뿐만 아니었다. 소노트리니티그룹을 포함해 글로벌 호텔 운영사 6곳이 크로스호텔앤리조트 인수 입찰에 뛰어들었다. 소노트리니티그룹은 상대적으로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소노인터내셔널은 국내에서 객실 기준 최대 호텔·리조트 기업이지만 해외 인지도는 낮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소노가 경쟁에서 앞설 수 있었던 건 K문화에 대한 동남아의 높은 호감도와 항공사를 함께 보유했다는 차별점 덕분이었다. 동남아에서는 한국 드라마, 음악, 음식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늘면서 한국 기업 자체에 대한 이미지도 달라지고 있다.
안 대표는 "크로스호텔앤리조트의 본사가 위치한 태국에서는 관광 산업이 우리나라의 반도체 산업만큼 중요하다"면서 "그런 시장에 한국 호텔 기업이 진출했다는 것 자체가 현지에서 의미 있게 받아들여졌다"고 말했다.
트리니티항공과의 시너지도 다른 호텔 운영사들이 내세울 수 없는 카드였다. 그는 "대부분의 호텔 기업들은 호텔만 운영한다"며 "소노트리니티그룹처럼 항공과 결합한 곳은 전 세계적으로 찾기 힘들다"고 말했다.
소노트리니티그룹 경영진들의 해외 사업에 대한 의지도 매우 확고했다. 해외 사업 확대를 논의하던 때에 적합한 매물까지 나오자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안 대표는 "소노트리니티그룹은 글로벌 사업에 대한 의지가 매우 강하다"면서 "내부 의사 결정이 매우 빠르게 이뤄졌고 투자도 아끼지 않았다"고 밝혔다.
소노만 할 수 있다
소노 아시아가 크로스호텔앤리조트를 인수했다는 소식에 호텔 오너들도 반겼다. 이들은 크로스호텔앤리조트의 호텔 사업장을 소유하고 있는 일종의 건물주다. 호텔 소유만 하고 운영은 소노 아시아와 같은 위탁 운영사에 맡긴다. 운영사가 바뀌면 호텔 오너의 동의가 필요한 만큼 소노 아시아는 인수 직후부터 오너들과의 신뢰를 쌓는 데 공을 들였다.
오너들이 신규 위탁 운영사인 소노 아시아에 만족하는 이유는 글로벌 체인보다 대응 속도가 빠르다는 점도 있다. 글로벌 체인 호텔들은 오너가 무언가를 요청했을 때 현지 지사에서 지역 헤드쿼터에게, 다시 글로벌 총괄에게 보고를 하다 보니 대응이 느릴 수밖에 없다.
반면 소노 아시아의 경우 의사결정의 속도가 매우 빠르다. 안 대표는 "오너들이 원하는 건 빨리빨리 대응하는 것인데 글로벌 체인들은 아직까지 그 부분이 부족하다"며 "우리는 법인장에서 부대표, 대표, 회장으로 이어지는 단순한 구조라 의사결정이 빠르다"고 설명했다.
오너들과의 관계는 소노 아시아의 사업 확장에도 필수적이다. 소노 아시아의 목표가 크로스호텔앤리조트의 기존 태국·인도네시아 사업을 운영하는 것뿐만 아니라 소노 브랜드를 해외에 널리 확산시키는 데 있기 때문이다.
기존 호텔의 브랜드를 소노로 바꾸고 나아가 새로 진출하는 호텔에도 소노 브랜드를 달기 위해서는 오너들의 동의가 뒷받침돼야 한다. 소노 아시아가 오너들을 한국으로 초청해 소노호텔앤리조트의 국내 사업장을 직접 소개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안 대표는 "해외에서는 아직 소노가 낯선 이름이지만 국내 사업장을 직접 보면 소노가 어떤 브랜드인지, 얼마나 탄탄하게 운영하고 있는지 알게 된다"며 "오너들이 한번 국내 사업장을 보고 나면 브랜드 전환에 동의하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글로벌 브랜드가 된 소노
소노 아시아는 현재 운영 중인 16개 호텔 중 오너가 동의할 경우 호텔 브랜드를 소노 브랜드로 전환할 예정이다. 소프트 브랜드 호텔도 마찬가지다. 소프트 브랜드는 호텔 오너사의 독자 브랜드와 콘셉트를 유지하되 체인 호텔의 글로벌 예약망을 활용할 수 있는 제휴 방식이다. 크로스가 운영하던 '크로스 컬렉션'이라는 소프트 브랜드 역시 '바이 소노'를 붙이는 방식으로 바꿔 갈 예정이다.
이런 방식으로 올해 안에 3~4곳의 기존 크로스 호텔이 소노 브랜드를 달 예정이다. 첫 번째 브랜드 교체 호텔은 인도네시아 발리에 위치한 '어웨이 발리 레기안 카마킬라'다. 이 호텔은 발리 레기안 지역에 위치해 있어 가까운 호주의 여행객들 사이에서 오랫동안 사랑받아 왔다.
현재 '소노벨'로 브랜드를 전환하는 작업이 마무리 단계에 와 있다. 안 대표는 "이 호텔은 오랜 시간 인기가 있었던 곳인 만큼 브랜드보다 위치로 기억하는 고객들이 많을 것"이라며 "소노로 브랜드를 바꿔도 기존 고객이 크게 흔들리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소노 아시아는 소노 브랜드를 단 신규 호텔도 추진하고 있다. 현재 운영 중인 16개에 더해 2029년까지 아시아에서 13개 호텔을 추가로 열기 위한 계약을 이미 마무리 지었다.
우선 다음달 1일 일본 나고야에 오픈하는 '소노문 나고야'가 처음으로 소노 브랜드를 달고 새롭게 문을 연다. 나고야역 도보 7분 거리의 130실 규모로 비즈니스와 관광 수요를 동시에 겨냥했다.
연내에는 베트남 하노이 올드쿼터에도 '소노벨 하노이'가 들어선다. 하노이 오페라하우스에서 걸어서 5~7분 거리의 부티크 호텔로 프랑스 식민지 시대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골목 안에 자리를 잡는다. 또 인도네시아 발리 짱구에도 90실 규모의 '소노펠리체 발리 짱구'가 오는 2028년 7월 오픈을 확정했다.
아시아 호령
소노 아시아는 특히 인도네시아 시장 확장에 공을 들이기로 했다. 개관을 확정한 13개 호텔 중 9곳이 인도네시아에 몰려있다. 기존 크로스호텔앤리조트의 호텔들이 많이 운영되던 태국의 경우 GDP 내 관광산업 비중이 약 15%에 달할 정도로 성숙한 관광 시장을 갖고 있다.
글로벌 호텔 브랜드들까지 이미 촘촘히 들어와 있어 소노 아시아가 새로 파고들 공간이 많지 않다. 반면 인도네시아의 경우 관광 자원은 풍부하지만 아직 관광 산업이 태국만큼 성숙하지 않은 상황이다. 글로벌 호텔 브랜드의 진출도 태국만큼 많지 않다.
안 대표는 "인도네시아는 수천 개의 섬으로 이뤄져 있고 정글, 바다 등 다양한 관광 자원을 보유하고 있지만 홍보가 부족한 데다 가격도 저렴한 편"이라며 "성장 가능성과 잠재력 높은 시장"이라고 강조했다.
소노 아시아가 인도네시아에서 준비하는 호텔들은 각기 다른 콘셉트를 갖추고 있다. 발리에서 배로 30분 거리에 있는 누사페니다 섬에는 글램핑 빌라 콘셉트의 호텔이 내년 상반기 오픈을 준비하고 있다.
발리 남서부 울루와투에도 100m 길이의 수영장을 갖추고 절벽 위에서 일몰을 내려다볼 수 있는 호텔이 들어선다. 싱가포르와 페리로 20분 거리인 바탐섬에는 럭셔리 빌라부터 가족 단위 복층 호텔, 젊은 층을 겨냥한 비즈니스 호텔까지 성격이 다른 호텔 3개를 한꺼번에 열 예정이다.
이들은 모두 아직 국내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관광지이지만 이미 호주 등에서는 조금씩 인기가 높아지고 있는 지역이다. 신규 호텔들은 모두 소노호텔앤리조트의 '소노벨', '소노캄', '소노 펠리체' 등의 브랜드를 달 예정이다.
소노트리니티그룹은 향후 트리니티항공을 해외 호텔 사업과 연계해 시너지를 내기 위한 방안도 논의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항공과 호텔을 연계한 통합 로열티 프로그램이다. 글로벌 호텔 체인들은 대부분 로열티 프로그램을 도입해 충성 고객을 확보하고 있다.
이와 함께 소노 아시아는 중장기적으로 아시아에서 약 50개 호텔을 확보한다는 목표다. 현재 운영 중인 16개에 추가 예정인 13개를 더하면 이미 29개의 호텔을 확보했다. 현재 협의 중인 건까지 더하면 40개에 육박한다.
안 대표는 "숫자도 중요하지만 소노 브랜드를 제대로 알리는 것도 중요하다"며 "현재는 비즈니스 호텔 브랜드가 많지만 앞으로는 소노의 브랜드 성격에 맞는 호텔을 골라 소노만의 색깔을 만들어가는 데 집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