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의약학회 행사가 신약 후보물질과 임상 성과를 국내외에 알리는 주요 창구로 자리잡고 있다.
해외 반응을 파악하는 동시에 글로벌 제약사의 눈에 띄면 기술수출로 이어지는 등 글로벌 진출 가능성을 더 높일 수 있어서다. 실제로 국내 제약사들은 내로라하는 해외 의약행사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일부에선 이런 행사에 참석하지 않는 제약사들은 뭔가 뒤처지고 있는 게 아니냐는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4일까지 미국에서 열린 미국임상종양학회 연례학술대회(ASCO 2019)에도 다수 국내 제약사들이 참석해 현재 개발 중인 신약 후보물질 연구내용을 발표했다. 이번 학술대회 발표 내용을 위주로 최근 국내 제약업계 신약 후보물질 연구 흐름을 짚어봤다.
◇ 유한양행, 폐암 신약 '레이저티닙'
이번 ASCO에서 국내 제약사 중 가장 핫이슈는 유한양행이었다. 유한양행은 비소세포폐암 치료 신약 후보물질인 '레이저티닙'의 한국 임상1/2상 결과를 발표했다. 전체 127명의 환자 중 암의 크기가 30% 이상 감소해 객관적 반응을 보인 비율(ORR)이 54%에 달했고, 환자 3명은 암이 완전히 사라진 완전관해(CR) 상태를 보였다. 레이저티닙과 동일한 기전의 폐암 치료제인 '타그리소'의 경우 임상 1/2상 반응률이 51%였던 점과 비교하면 레이저티닙의 효과가 더 좋았다.
유한양행은 이번 임상 결과 발표와 함께 지난달 30일 미국 FDA에서 임상1상 시험을 승인받았다. 글로벌 진출에 한발 더 다가선 셈이다. 미국 임상은 이르면 올해 3분기 중 환자 모집을 진행할 예정이다.
레이저티닙이 더 주목받는 이유는 국내 오픈이노베이션의 대표적 사례로 꼽히기 때문이다. 레이저티닙은 원래 미국 바이오벤처 오스코텍의 자회사인 제노스코가 개발한 물질이다. 유한양행이 지난 2015년 7월 10억원의 계약금을 주고 기술도입했다가 지난해 11월 글로벌 제약사 존슨앤드존슨의 자회사인 얀센 바이오테크에 총 12억5500만달러(약 1조4000억원) 규모로 다시 기술수출했다. 반환 의무가 없는 계약금으로 5000만달러(약 550억원)를 이미 수령했다. 이중 40%를 제노스코에 분배하긴 했지만 결론은 싸게 사서 비싸게 되판 셈이다.
폐암 치료제 시장에선 기존 치료제에 내성을 보이는 환자들이 점차 많아지고 있다. 그런데 현재 내성 환자들에게 투여 가능한 치료제는 타그리소뿐이라는 점에서 레이저티닙이 대항마로 주목받고 있다.
◇ 한미약품, 기술수출 신약 물질 대거 발표
대규모 기술수출의 포문을 연 한미약품도 기술수출한 신약 후보물질들의 신규 데이터를 대거 발표했다. 한미약품에 따르면 고형암 치료제 '벨바라페닙'은 국내 임상1상에서 유전자 돌연변이를 지닌 전이성 고형암 환자들에게 안전성 및 항암효과를 확인했다. 벨바라페닙은 한미약품이 지난 2016년 로슈그룹 자회사 제넨텍에 기술수출한 바 있다.
한미약품이 미국 스펙트럼과 아테넥스사에 기술수출한 '롤론티스'와 '오락솔' 등의 임상연구 결과도 포스터로 게재했다. 스펙트럼은 글로벌 제약사인 암젠의 호증구감소증 치료제 '뉴라스타'와 롤론티스를 대조한 임상3상 결과 유사한 약효와 안전성을 입증했다고 밝혔다. 바이오신약인 롤론티스는 약효를 지속시키는 한미약품의 독자적 플랫폼 기술인 랩스커버리를 적용한 파이프라인이다. 스펙트럼은 현재 미국 FDA에 롤론티스에 대한 바이오의약품 허가신청(BLA)을 준비 중이다.
아테넥스는 한미약품으로부터 기술도입한 오락솔과 '오라테칸', '오랄 에리불린' 등 3개 후보물질에 대한 임상결과를 발표했다. 모두 주사용 항암제를 경구용 제제로 바꿀 수 있는 한미약품의 플랫폼 기술인 오라스커버리를 적용한 물질이다.
오락솔의 경우 전이성 유방암에서 '파클리탁셀'과 안전성 및 내약성, 반응률을 비교한 임상3상을 오는 8월 완료할 예정이다. 오락솔은 또 오랄 에리불린과 병용요법에서 종양 감소 효과가 나타났고, '사이람자'와 병용요법 중간결과에서도 위암과 식도암 환자에게서 부분관해(호전)를 확인했다.
◇ 에이비엘·삼성바이오 등 바이오기업 발표도 잇따라
에이비엘바이오는 신생혈관억제 이중항체인 'ABL001'에 대한 임상1a상 결과를 공개했다. 투여 용량을 늘리는 과정에서 심각한 독성이나 부작용 없이 종양이 더 커지지 않는 안정병변과 부분관해 등 긍정적인 결과가 확인했다. 에이비엘바이오는 지난해 11월 트리거테라퓨틱스에 ABL001를 5억9500만달러 규모로 기술수출한 바 있다.
이밖에 삼성바이오에피스는 로슈의 항암제 허셉틴을 복제한 바이오시밀러 '온트루잔트'에 대해 2014년부터 2017년까지 3년간 추적 임상결과를 발표했다. 동일한 성분임에도 오리지널 허셉틴보다 주요 생존율 지표에서 오히려 다소 높은 수치가 나타나 큰 관심을 모았다.
올해 ASCO에선 지난해 참석했던 국내 제약사들의 일부 파이프라인은 빠졌다. ▲한올바이오파마 자회사 이뮤노멧테라퓨틱스의 항암치료제 'IM156' ▲보령제약이 지난해 11월 스페인 제약기업 파마마(PharmaMar)사로부터 기술도입한 백금요법 저항 난소암치료제 '잽시르' ▲테라젠이텍스 자회사 매드팩토의 항암신약인 '백토서팁' ▲신라젠의 항암신약 '펙사벡' 등이다.
일각에서는 임상 등 약물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는 오해도 받고 있지만 해당 제약사들은 새로운 임상 데이터가 아직 도출되지 않은 시기적 문제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업계 관계자는 "해외 대규모 학술행사가 상·하반기에 다수 열리는데 보통 신규 데이터가 나오는 시기에 맞춰 참여한다"면서 "특히 최대 행사로 꼽히는 JP모건 헬스케어에 참석하지 않으면 큰 문제가 있는 줄 아는 분도 있는데 단순한 투자행사인 만큼 투자가 필요없는 기업은 참석하지 않는다"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