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국내 화장품 업계에선 요즘 같은 분위기에서 찾아보기 힘든 일이 벌어졌습니다. LG생활건강이 화장품 로드숍 브랜드인 '더페이스샵'과 '네이처컬렉션'의 온라인 직영 쇼핑몰을 폐쇄했다는 소식인데요. 이제는 대세가 되면서 너도나도 뛰어드는 '온라인' 영업을 접기로 하다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LG생활건강은 이번 조치를 '가맹점과의 상생 차원'에서 결정하게 됐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더페이스샵과 네이처리퍼블릭, 아리따움, 이니스프리, 토니모리 등 5개 화장품 브랜드의 가맹점주들은 앞서 지난 3월 '전국화장품가맹점연합회'라는 단체를 만들었는데요. 이들은 본사가 온라인 마케팅 등에 치중하느라 매장 고객이 줄고 있다며 집단행동에 나섰습니다. LG생활건강이 온라인 판매를 중단한 이유는 이런 목소리를 반영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너무 '극단적인' 선택이 아닌가 싶기는 합니다. 예를 들어 LG생활건강의 경쟁사인 아모레퍼시픽의 경우 온라인몰에서 발생한 매출을 오프라인 매장과 나눠갖는 방안을 마련했다고 하는데 말이죠. 아모레 역시 이니스프리와 아리따움 등의 로드숍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업계에서는 LG생활건강의 이번 선택이 '사업 축소'를 의미한다고 보는 분석이 나옵니다. 가맹점주와의 갈등을 차단하는 동시에 장기적으로는 해당 브랜드 사업을 축소하려는 움직임이라는 건데요. 온라인 사업을 접는다고 소비자들이 오프라인 매장으로 몰려가기보다는, 아예 해당 브랜드를 찾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걸 모를 리 없다는 겁니다.
게다가 가맹점주들의 주장은 온라인 사업을 접으라는 게 아니라 온라인과 가맹점에 동일한 가격을 적용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가맹점에는 더 고가로 상품을 공급하고, 온라인에서는 값싸게 판매하니 고객이 줄어든다는 주장이었는데, LG생활건강은 아예 온라인 사업을 접어버린 겁니다.
이번 '사건'은 국내 로드숍 브랜드들이 점점 벼랑 끝에 몰리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더페이스샵은 지난 2005년부터 온라인 직영몰을 운영해왔는데요. 오프라인 매장들이 '잘 나갔을 때'는 이런 갈등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올리브영 등 헬스앤뷰티(H&B) 스토어의 성장과 중국의 사드 보복, 온라인 시장 확대 등 악재가 겹치면서 불황에 빠져들자 갈등이 불거진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 국내 뷰티 로드숍 시장 규모는 지난 2016년 2조 8000억원가량으로 정점을 찍은 뒤 이듬해에는 2조원, 지난해에는 1조 7000억원 등으로 급격하게 쪼그라들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업계에서는 생존 전략을 마련하느라 분주한 모습입니다. 예를 들어 미샤를 운영하는 에이블씨엔씨은 멀티숍 '눙크(NUNC)를 론칭했습니다. 기존 미샤의 경우 '원브랜드' 로드숍이었는데요. 눙크는 에이블씨엔씨 브랜드 외에도 150여 개 브랜드 3000여 제품을 판매하는 '멀티브랜드' 숍입니다. H&B 스토어처럼 헬스, 뷰티 제품도 판매하고요.
스킨푸드의 경우 지난 2017년 말부터 제품 공급 차질과 유동성 악화를 겪으면서 지난해 말 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갔는데요. 최근 사모펀드인 파인트리파트너스가 2000억원에 인수하기로 하면서 변화를 예고하기도 했습니다.
LG생활건강이나 아모레퍼시픽이 네이처컬렉션과 아리따움 등 화장품 편집숍을 강화하는 것도 더 이상 단일 브랜드 매장으로는 경쟁이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들의 변신은 성공할까요. 업계에서는 변신하더라도 경쟁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습니다.
우선 H&B스토어 시장조차 포화했다는 분석이 나오는데요. 지난 2014년 7000억원대 규모였던 H&B 스토어 시장은 5년 새 2조1000억원으로 세 배가량 증가했습니다. 여기에 더해 세계에서 가장 큰 뷰티 편집숍인 '세포라'가 올 하반기 국내에 진출하기로 하는 등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 2015~2016년 이른바 'K-뷰티' 열풍의 한 축을 담당했지만 급격하게 불황에 빠진 로드숍의 부활이 가능할지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