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주류가 '처음처럼'의 알코올 도수를 낮춘다. 저도주 트렌드에 맞추기 위해서라는 것이 롯데주류의 설명이지만 사실은 고육지책에 가깝다. 예상치 못한 불매운동과 하이트진로가 선보인 '진로'의 인기에 따른 처음처럼의 판매량 위축과 실적 악화가 주요 배경으로 꼽힌다.
롯데주류는 오는 27일부터 처음처럼의 알코올 도수를 낮춰 리뉴얼한다고 25일 밝혔다. 롯데주류는 "소주를 가볍게 즐기며 마시는 것을 선호하는 소비자들이 꾸준히 증가하는 저도화 트렌드에 따라 처음처럼의 알코올 도수를 16.9도로 내리기로 결정했다"라고 설명했다.
더불어 처음처럼의 대표 속성인 ‘부드러움’을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브랜드 로고를 포함한 디자인 요소를 간결하게 정리하면서 라벨의 바탕색을 밝게 하는 등 젊은 느낌으로 디자인을 리뉴얼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롯데주류의 이번 처음처럼 도수 낮추기를 고육지책으로 보고 있다. 그동안 롯데주류는 하이트진로와 14년 동안 소주 도수 낮추기 경쟁을 해왔다. 한쪽이 도수를 낮추면 다른 한쪽이 그보다 더 도수를 낮추는 식이다. 시작은 롯데주류의 전신인 두산주류가 포문을 열었다. 2006년 두산주류는 처음처럼을 출시하면서 알코올 도수를 하이트진로의 참이슬 후레쉬보다 1도 낮은 20도로 선보였다.
그러자 하이트진로도 같은 해 참이슬 후레쉬의 알코올 도수를 19.8도로 낮췄고, 이때부터 지금까지 양사는 소주 도수 낮추기 경쟁을 이어왔다. 하지만 올해는 양사의 경쟁이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하이트진로는 지난 4월 참이슬 후레쉬의 도수를 17도로 낮췄다. 업계에선 예전처럼 롯데주류도 처음처럼의 도수를 낮출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예상은 빗나갔다. 롯데주류는 처음처럼의 도수를 종전대로 유지했다. 롯데주류가 대응에 나서지 않은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당시 롯데주류의 처음처럼 판매량이 굳이 도수 조정을 하지 않아도 괜찮았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 소주시장은 하이트진로가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그 뒤를 롯데주류가 추격하는 양상이다. 하지만 그 격차는 큰 편이다.
롯데주류는 지방에서 처음처럼의 판매량이 일정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하이트진로와의 도수 낮추기 경쟁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복병이 있었다. 일본의 경제 보복이 시작되면서 국내 소비자들 사이에서 처음처럼에 대한 불매운동이 일어났다. 롯데주류가 일본 기업이라는 유언비어가 확산하면서 롯데주류가 주력으로 내세웠던 처음처럼의 판매가 타격을 입기 시작했다.
실제로 지난 3분기 롯데주류는 205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작년 3분기 영업손실 120억원보다 더 확대된 규모다. 그동안 롯데주류는 손실을 줄이기 위해 전사적으로 노력해왔다. 판관비를 줄이고 고정비를 줄이는 등 비용 절감에 나섰다. 그 결과 상반기 손실액은 전년대비 크게 줄일 수 있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불매운동 등에 휘말리며 적자폭이 오히려 확대됐다.
이뿐만이 아니다. 최근 레트로 열풍에 힘입어 하이트진로가 내놓은 '진로'가 소비자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면서 롯데주류의 판매량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진로의 도수는 16.9도다. 수년간 국내 소비자들 사이에서 저도주가 트렌드로 자리 잡은 데다 레트로 감성이 더해지면서 진로의 판매량은 빠르게 늘어났다. 지난 4월 출시된 진로는 출시 72일 만에 1000만 병이 판매됐다.
이 와중에 롯데주류가 꺼낸 카드가 바로 처음처럼의 도수 낮추기다. 지난 4월 하이트진로가 참이슬 후레쉬의 도수를 낮췄을 당시 대응하지 않겠다던 입장과는 확연히 달라졌다. 처음처럼의 도수를 낮춰 진로에 맞대응하고, 처음처럼의 판매량을 더 늘리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아울러 라벨에도 변화를 줘 좀 더 새로운 느낌으로 소비자에게 다가서겠다는 의지도 표현했다.
업계에선 롯데주류의 이런 움직임에 대해 타이밍 문제를 제기한다. 업계 관계자는 "처음처럼의 도수를 낮추는 것만으로는 이미 시장 저변을 확대하고 있는 진로를 따라잡긴 부족해보인다"면서 "신제품을 출시해 대응하는 것이 최선이었겠지만 현재 롯데주류의 상황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차선책으로 처음처럼의 도수를 내린 것인데 효과는 미지수"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