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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스토리]제약사에 모든 책임 떠넘긴 식약처

  • 2019.11.26(화) 09:21

발사르탄에 이어 발암 추정물질 잇따라 검출
식약처, 실효성보단 면피성 대책 마련에 급급
제약업계 "일회성 아닌 지속가능한 대책 필요"

질병을 치료하려고 꾸준히 먹어온 약에 발암 위험물질이 들어있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 실제로 벌어졌습니다. 고혈압 치료제에 이어 위궤양 및 역류성 식도염 치료제에서 발암 위험물질이 잇따라 검출된 건데요. 지난해 7월 유럽의약품안전청(EMA)이 중국에서 제조한 고혈압 치료제의 원료의약품 '발사르탄'에서 발암 추정물질인 NDMA(N-니트로소디메틸아민)를 검출한 것이 시초였습니다.

NDMA는 공업용 화학물질로 심한 간 독성을 유발하고 장기복용 시 간암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세계보건기구(WHO)가 발암 추정물질인 2A군으로 분류하고 있는데요. A군은 동물실험에서 발암성에 대한 증거는 밝혀졌지만 사람을 대상으로 암을 일으킨다는 근거가 불충분한 단계입니다. 벤조피렌, 석면 등과 같이 명확하게 발암 유발이 확인된 1군보다는 수위가 약한 거죠. 그러나 발암 위험의 수위를 떠나 일단 암에 걸릴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불안한 것이 사람의 심리입니다.

당시 환자와 의료진, 제약업계 할 것 없이 충격과 공포에 휩싸였습니다. 정부는 어떤 의약품에 NDMA가 들어있는지 하루빨리 확인을 해야 했고, 의료진은 정부 지시에 따라 의약품을 재처방하고 제약업계는 판매 중단과 그에 따른 반품 처리 등에 몇 달을 시달렸는데요. 무엇보다 고혈압 치료제를 복용하고 있던 환자들의 불안감은 말할 것도 없었죠.

몇 달에 걸쳐 겨우 사태가 정리되고 안정을 찾아가고 있던 중 올해 NDMA 공포가 재발했습니다. 이번엔 위궤양 및 역류성 식도염 치료제의 원료의약품인 ‘라니티딘’에서 NDMA가 검출됐죠.

의약품 속 발암물질에 대한 공포가 확산하면서 정부는 유사한 화학구조를 지닌 의약품들을 대상으로 NDMA 검사를 확대했는데요. 같은 위장약 계열인 '니자티딘' 93개 완제의약품 중 13개 품목에서 또 다시 기준치를 초과한 NDMA가 발견돼 제조‧판매 중지 조치가 내려졌습니다.

의약품에서 발암 추정물질이 잇따라 발견되면서 정부는 대대적인 '원료의약품 불순물 안전관리 대책'을 꺼내들었는데요. 제약사들에 전체 합성 원료의약품에 대한 NDMA 발생 가능성 평가 결과를 내년 5월까지, NDMA 검출 시험 결과를 2021년 5월까지 제출하도록 한 상태입니다. 정부 입장에서는 발사르탄, 라니티딘 사태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최선책을 편 셈이죠.

그러나 지난 2017년 국가통계 기준으로 원료의약품은 7002개 품목에 달합니다. 대형 제약사의 경우 수백 개가 넘는 제품들의 원료의약품에 대한 조사를 진행해야 하는 만큼 부담도 상당한데요. 특히 해외에서 수입하는 원료의약품이 골칫거리입니다. 해외 제조업체와 협의되지 않으면 수입한 이후 자체적으로 검사를 진행해야 하는 불편하고 부담스러운 상황인 거죠.

제약업계는 정부의 이번 '원료의약품 불순물 안전관리 대책'에 아쉬움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가뜩이나 발사르탄 사태의 재진료‧처방 부담까지 떠안은 상황에서 전국에 출고한 품목들을 반품하랴, 이제는 판매 중인 모든 원료의약품의 불순물 검사까지 해야 하니까요.

물론 국민들이 복용하는 의약품의 안전성을 확보하려면 불순물 검사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다만 단기간에 그 많은 원료의약품을 다급하게 시험하다 보면 시간적인 제약으로 허술하거나 잘못된 검사 결과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기업 입장에선 한 번에 많은 비용을 투입해야 하는 부담도 큽니다. 그러다 보니 이번 조치가 발암 추정물질 검출에 따른 책임을 일방적으로 제약업계에 떠넘기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지적도 나옵니다. 식약처가 실효성에 초점을 맞추기보단 면피성 대책 마련에 급급했다는 건데요.

업계에선 불순물 검사를 확대하는 건 맞지만 수입 품목과 국산 품목을 나누거나 불순물 포함이 유력한 품목들을 단계별로 나눠 기간을 두고 순차적으로 진행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야 제약사들이 검사계획을 더 면밀하게 세울 수 있고, 원료의약품의 안전성도 보다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는 얘기죠.

제약업계 관계자는 "일회성 대책이 아닌 지속가능한 의약품 안전관리 대책이 필요하다"라며 "품목별로 나눠 몇 년마다 검사를 진행하도록 장기 계획을 세우는 것이 업계 부담을 줄이면서 의약품 안전성을 확보하는데 더욱 효과적일 것"이라고 꼬집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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