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많은 제약사들이 오너 일가의 경영 대물림을 위한 물밑작업에 한창이다. 한국콜마와 보령제약, 삼진제약 등이 연말 승진 인사를 통해 오너 2~3세들을 경영 전면에 배치하면서 대물림을 위한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업계에선 잇단 경영진 세대교체를 통해 제약업종 창업주 세대 특유의 폐쇄적인 경영 방식이 '개방형 혁신'을 내세운 새로운 트렌드로 바뀔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먼저 한국콜마는 지난 10일 윤상현 총괄사장을 부회장으로 선임했다. 윤 신임 부사장은 한국콜마 창업주인 윤동한 회장의 아들이다. 윤 부회장은 서울대를 졸업하고 해외에서 경영학 석사 과정을 마친 후 글로벌 컨설팅업체인 베인앤컴퍼니에 입사해 이사까지 올랐다. 여기서 퇴직한 후 2009년 한국콜마에 합류해 경영 일선에서 업무 경험을 쌓아왔다. 2016년에는 한국콜마 대표이사 사장에 올라 화장품과 제약사업 부문을 지휘하면서 지난해 4월 씨제이헬스케어를 인수를 주도했다.
윤 부회장은 한국콜마 입사 이후 꾸준히 지분을 늘려가면서 차근차근 승계를 준비해왔다. 업계에선 윤 부회장이 내년 3월 임기가 끝나는 김병묵 한국콜마홀딩스 대표의 뒤를 이을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보령홀딩스는 지난 11일자로 신임 대표이사에 김정균 운영총괄 사내이사를 선임했다. 김 대표는 보령제약그룹 김승호 회장의 4녀 중 장녀인 김은선 보령홀딩스 회장의 1남 1녀 중 장남이다. 미국 미시간대 산업공학과를 졸업한 후 중앙대 의약식품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고 2011년 삼정KPMG에 입사했다. 이후 2014년 1월 보령제약에 이사대우로 입사해 전략기획팀과 생산관리팀, 인사팀장 등을 두루 거쳤다. 2018년 1월부터 보령홀딩스 사내이사 겸 경영총괄 임원으로 재직해왔다.
김 대표는 보령홀딩스 경영총괄 당시 지주회사 및 자회사인 보령컨슈머를 설립하고, 각 사업회사를 이사회 중심 체제로 전환했다. 이 과정에서 보다 신속하고 투명한 의사결정 체계를 정착시키면서 업무 능력을 인정받았다.
앞서 보령제약은 지난해 김은성 보령홀딩스 회장이 보령제약 대표이사에서 물러나면서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한 바 있다. 그러나 안재현 보령제약 대표이사가 겸직하던 보령홀딩스 대표이사를 사임하는 동시에 김정균 이사가 대표이사로 승진하면서 오너 일가의 경영권 승계 작업에 속도를 내는 게 아니냐는 관측에 힘을 싣고 있다.
최승주 회장과 조의환 회장이 1968년 공동 설립한 삼진제약 역시 지난 13일 오너 2세들의 승진 소식을 알리며 경영권 승계를 준비하고 있다. 최 회장의 장녀 최지현 상무와 조 회장의 장남 조규석 상무는 전무로 승진했고 조 회장의 차남인 조규형 이사도 상무로 승진했다.
최 전무는 홍익대에서 건축학 석사를 마치고 2009년 입사해 마케팅 업무를 맡고 있다. 조 전무는 텍사스대에서 회계학 석사 학위를 받고 2011년부터 경영관리를 담당하고 있다. 최 전무와 조 전무의 입사일은 다르지만 직위를 맞춰가며 나란히 승진을 거듭하고 있어 오너 2세 체제에서도 공동 경영을 예고하고 있다.
앞서 지난 4월에는 유유제약이 오너 3세인 유원상 부사장을 대표이사로 선임하면서 경영 승계 의 막바지 단계에 접어들었다. 기존 최대주주인 유승필 회장과 지분율 차이도 1.24%에 불과해 경영권 바통을 자연스럽게 이어받을 준비를 모두 마친 상태다.
유 대표이사는 미국 트리니티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컬럼비아대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마쳤다. 지난 2008년 유유제약에 상무로 입사해 2014년 영업·마케팅 총괄 부사장, 2015년 유유헬스케어 대표이사를 거치면서 입지를 다져왔다.
제약업계는 최근 오너 2·3세들의 잇단 경영권 승계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제약업종은 상대적으로 업력이 길다 보니 오너 중심의 폐쇄적인 지배구조가 계속 이어져왔고, 이 때문에 전반적인 경영 쇄신이 쉽지 않았던 탓이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창업주 세대에는 외부와 단절된 폐쇄형 경영이 주를 이뤘지만 최근 오너 2·3세들의 경영방식을 보면 시대의 흐름을 빠르게 따라가는 모습"이라며 "복제의약품 판매에 급급했던 과거와 달리 오픈이노베이션 등을 통한 신약 개발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려는 성향이 엿보인다"라고 기대감을 내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