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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적 한끗]바나나맛 우유③ '특별한' 마케팅을 입혔다

  • 2020.09.25(금) 14:31

'알지만 안먹는다' 반응에 마케팅 터닝포인트
친근·익숙한 이미지에서 '특별한' 아이콘으로

역사적인 사건에는 반드시 결정적인 순간이 있습니다. 그 순간 어떤 선택을 했느냐에 따라 역사책의 내용이 바뀌기도 합니다. '그때 다른 결정을 했다면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지 모른다'는 말이 익숙한 것은 이런 이유입니다. 결정적인 순간은 꼭 역사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주변에서 흔하게 접하는 많은 제품에도 결정적인 '한 끗'이 있습니다. 특히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제품들의 경우 결정적 한 끗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절묘한 한 끗 차이로 어떤 제품은 스테디 셀러가, 또 어떤 제품은 이름도 없이 사라지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비즈니스워치에서는 소비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있는 제품들의 결정적 한 끗을 찾아보려합니다. 결정적 한 끗 하나면 여러분들이 지금 접하고 계신 제품의 전부를, 성공 비밀을 알 수 있을겁니다. 그럼 이제부터 저희와 함께 결정적 한 끗을 찾아보시겠습니까. [편집자]  

#통곡의벽 #부동의1위 #김연아 #마동석 #바나나맛우유

예루살렘 서쪽에는 '통곡의 벽'이라 불리는 성곽이 있습니다. 서기 70년 파괴된 제2차 유대인 성전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부분입니다. 유대인들이 모여 기도하는 성지라고 합니다. 통곡의 벽은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상대를 일컫는 관용적 표현이기도 합니다. 영화 '범죄도시' 속 마동석이나 아사다 마오에게 김연아와 같은 존재가 그렇습니다. 

식음료업계에도 이런 통곡의 벽이 있습니다. 경쟁사에서 온갖 수를 다 써봐도 절대 점유율 1위를 내어주지 않는 부동의 인기제품이 그렇습니다. 빙그레 '바나나맛 우유'가 대표적입니다. 바나나맛 우유는 지난 47년 동안 가공유 시장 점유율 1위를 내준 적이 없습니다. 경쟁사로서는 아예 처음부터 싸워볼 생각조차 들지 않을만큼 압도적인 점유율입니다.

현재 바나나맛 우유는 전체 가공유 시장에서 점유율 8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경쟁사들에게는 벽이지만 빙그레에게는 그만큼 효자입니다. 바나나맛 우유는 지난 2018년 단일제품으로 연 2000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습니다. 같은 해 빙그레의 매출액은 8300억 원 수준입니다. 바나나맛 우유가 차지하는 비중이 24%가 넘습니다. 

도저히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했길래 반세기동안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일까요.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겁니다. 맛에 대해서는 이미 살펴봤으니 이번에는 '마케팅' 측면에서 바나나맛 우유를 바라봤습니다. 빙그레의 바나나맛 우유 마케팅에는 어떤 비밀들이 숨겨져 있는 것을까요? 함께 들여다 보시죠.

#옛날제품 #옛날신문 #그때도숙취해소는바나나맛우유 #바나나비쌌지

시작부터 난관에 봉착했습니다. 빙그레에 문의한 결과, 본사에서도 47년 전 상황을 명확하게 설명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바나나맛 우유가 처음 시장에 선보였을 때가 1974년입니다. 회사 이름이 빙그레도 아닌 대일유업이던 시절 처음 나온 제품입니다. 47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으니 당시의 스토리를 아는 사람이 회사에 없는 것도 어찌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증언이 없으니 기록을 뒤져야 합니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서 1970년대 신문에 실린 항아리모양의 바나나맛 우유를 찾아봤습니다. 1975년 2월 26일자 한 일간신문 1면의 대일유업의 광고입니다. 단지 모양의 우유병 모습이 익숙합니다. 당시 브랜드명인 '퍼모스트'는 우유 가공 기술을 전수해준 미국 회사 이름입니다. 대일유업은 1976년 6월 '빙그레'로 사명을 바꿉니다.

197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단편소설 '바다와 나비병'에도 바나나맛 우유가 등장합니다. 주인공이 밤을 함께 보낸 첫사랑에게 줄 '바나나 우유' 한 병을 110원에 사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녀가 소주를 두 병 마셨다는 묘사도 있네요. 서울우유가 1977년에야 바나나맛 우유를 내놓았다는 점에서 자연스럽게 빙그레 제품이 떠오릅니다. 그때도 바나나맛 우유는 숙취 해소에 좋았나 봅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바나나맛 우유의 성공비결을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당시 빙그레가 내놓은 가공유는 초코맛과 딸기맛도 있었지만 왕좌는 늘 바나나맛 우유 차지입니다. 이유가 뭘까요? 당시의 기사와 각종 기록을 종합해보면 처음 바나나맛 우유가 히트한 것은 '바나나'였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야'라고 하실 수 있지만 사실입니다. 

바나나맛 우유가 처음 선보였을 당시 바나나는 최고급 과일 중 하나였습니다. 한 방송인이 TV프로그램에서 "1973년 당시 하숙집의 한 달 하숙비가 9000원이었는데 바나나 한 송이도 아니고 한 개 가격이 2000원이었다"고 전한 바도 있습니다. 이렇게 귀한 바나나를 값싸고 편리하게 맛볼 수 있는 제품으로 나왔으니 인기가 높았던 것은 당연했습니다. 

#추억 #목욕탕 #기차여행 #터닝포인트

경쟁이 치열한 식음료 시장에서 초반의 반짝 인기만으로는 한 시대를 풍미하기 어렵습니다. 바나나맛 우유가 초반 인기를 지금까지 유지하며 부동의 1위가 된 비결은 맛과 디자인을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 덕분입니다. 바나나맛 우유는 출시 이후 지금까지 항아리 모양의 디자인과 진하고 달콤한 바나나 맛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한 세대를 사로잡은 기억은 손쉽게 유전됩니다. 바나나맛 우유에 늘 추억이 따라 붙는 이유입니다. 자연스럽게 마케팅도 추억을 자극했습니다. 2000년대 빙그레의 바나나맛 우유 마케팅 키워드는 '즐거움과 푸근함'입니다. 매년 사연과 추억을 공모해 당첨자들에게는 기차여행을 제공하며 친근한 이미지를 유지하는 데 노력했습니다. 광고에서는 항상 바나나맛 우유를 먹으며 행복해하는 사람들이 등장했습니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해서 이런 방식의 마케팅이 특별한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바나나맛 우유가 오랫동안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것은 압도적인 시장 점유율과 긍정적인 이미지 덕분입니다. 빙그레의 바나나맛 우유는 마치 절벽 위의 독수리와도 같습니다. 독수리는 가끔 날갯짓을 하지 않기도 합니다. 그저 거대한 날개를 펴고 바람의 흐름에 몸을 맡깁니다. 힘들게 날개를 퍼덕이지 않아도 더 높이, 더 멀리 날아갑니다.

어제 일을 오늘 또 해도, 오늘 일을 내일 또 해도 실패하지 않을 위치까지 오른 제품이 바나나맛 우유입니다. 하지만 미래는 보장할 수 없는 법입니다. 아무리 견고한 통곡의 벽이라도 끊임없이 두들기면 깨질겁니다. 경쟁이 치열한 시장에서 안주하는 것은 금물입니다. 빙그레도 깨달았습니다. 변해야 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터닝 포인트'를 맞이합니다.

#젊은세대 #알긴해도안먹어 #변해야산다

빙그레는 지난 2016년 한 대학교의 수업에 참여합니다. 바나나맛 우유에 대한 젊은 세대의 진솔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섭니다. 대부분의 의견은 '익숙하다', '친근하다', '알고 있다' 등 긍정적이었습니다. 한편 일부 의견으로 '원 오브 뎀(one of them)', '어릴 때 우유', '커피가 대세'라는 의견도 나왔습니다. 긍정적인 반응이 많으니 그냥 넘어갈 수도 있었지만, 수업에 참여했던 빙그레 마케팅팀 직원들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특히 모두가 바나나맛 우유를 잘 알고는 있지만 최근에 먹어본 사람은 적다는 것이 충격이었습니다. 실제 젊은 세대가 소비하는 제품이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아는 것과 구매하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앞으로의 반세기가 지난 반세기와 같을 수는 없는 법입니다. 변화가 필요했습니다.

이후 빙그레 마케팅팀은 고민에 빠집니다. 최근 세대는 각자 취향이 있습니다. 이들에게 통하기 위해서는 바나나맛 우유를 친근하게 만들기 보다는 '특별'하게 만들어야 했습니다. 마케팅팀이 바빠지기 시작했습니다. 2016년 한 해 동안 빙그레는 바나나맛 우유에 다양한 마케팅을 시도했습니다. 가장 처음 선보인 마케팅은 'ㅏㅏㅏ맛 우유' 이벤트였습니다. 바나나의 초성을 모두 떼고 인쇄했습니다. 그 여백은 소비자들이 직접 채우도록 했습니다. 바나나맛 우유를 소비자 개인의 개성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도구로 활용토록 한겁니다.

이어 CJ올리브영과 협업해 바나나맛 우유 화장품을 선보였습니다. 제품에는 우유 단백질 추출물이 들어갔습니다. 향기와 포장도 바나나맛 우유를 그대로 재현했습니다. 백미는 '옐로우 카페'입니다. 빙그레는 바나나맛 우유 플래그십 스토어인 옐로우 카페를 열었습니다. 바나나맛 우유를 활용한 다양한 제품을 선보였습니다. 소품과 집기는 모두 바나나맛 우유의 로고와 모양을 사용했습니다. 동대문에 처음 오픈했던 옐로우 카페는 3년동안 바나나맛 우유의 체험공간 역할을 톡톡히 하고 지난해 문을 닫았습니다. 2호점인 제주점은 아직 성업 중입니다.

집중적인 마케팅 활동을 펼친 결과, 2016년 바나나맛 우유의 매출은 전년 대비 15%나 올랐습니다. 이미 압도적인 시장 점유율을 수십년째 유지한 1위 제품이 1년 만에 매출을 15%나 늘리는 것은 이례적인 일입니다. 빙그레는 이듬해에도 바나나맛 우유를 '특별'하게 만들기 위한 마케팅 활동을 펼쳤습니다. 2017년을 대표하는 바나나맛 우유 마케팅은 '마이스트로우'(My Straw)입니다. 하트 모양의 빨대와 링거줄 모양의 빨대, 그리고 두 모금에 바나나맛 우유를 먹어 치울 수 있는 굵기의 대형 빨대 등을 선보였습니다. 

그동안 빨대는 음료를 먹기 위한 도구였을 뿐입니다. 쓰고 나면 쓰레기통 신세였습니다. 하지만 빙그레가 만든 빨대들은 소비자의 소장욕구를 자극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출시하자마자 온·오프라인에서 완판행진이 이어졌습니다. 마케팅 측면에서도 대형 만루홈런입니다. 빙그레의 마이스트로우 캠페인은 세계 3대 광고제 중 하나인 미국 클리오 광고제에서 통합캠페인부문 금상과 제품혁신부문 은상을 받았습니다. 

이후에도 빙그레는 매년 다양한 마케팅을 펼치며 소비자들에게 특별한 제안을 하고 있습니다. 최근 화제를 일으킨 마케팅은 '한정판 바나나맛 우유' 시리즈입니다. 오디맛, 귤맛, 리치피치맛, 바닐라맛, 호박고구마맛, 캔디바맛 등 다양한 맛의 가공유를 만들고 바나나맛 우유의 패키지에 담았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맛에 호불호가 갈리지만 호기심 많은 젊은 세대들에게는 통했습니다. 

올해는 '선한 영향력'이 바나나맛 우유 마케팅의 화두입니다. 소신있는 발언과 행동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젊은 소비자들에게 다가가는 전략입니다. 이번에는 제품이 아니라 환경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빙그레는 쓰레기 분리배출 규칙을 잘 지키자는 일환으로 '분바스틱(분리배출이 쉬워지는 바나나맛우유 스틱)'을 만들어 배포했습니다. 분바스틱을 만드는 재료는 바나나맛 우유 공병입니다. 공병을 제공하거나 크라우드 펀딩에 참여한 소비자들에게 분바스틱이 제공됐습니다. 수익금은 전액 기부됩니다.

지난 5년 동안 바나나맛 우유가 펼친 마케팅 활동은 앞선 40여 년과 크게 다릅니다. 그 결과는 통곡의 벽이 '통곡의 철벽'으로 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국내에서 제조되는 음료 중 바나나맛 우유와 같은 브랜드 파워를 가진 제품을 찾기는 힘듭니다. 빙그레는 이런 마케팅이 가능했던 이유를 조직의 유연함 덕분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조직의 이야기는 조직 관계자에게 직접 듣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입사 이후 13년 동안 바나나맛 우유를 담당해온 이수진 빙그레 DAIRY 제품팀장을 만나봤습니다.

#13년 #한우물 #이수진빙그레마케팅팀장

-입사 이후 지금까지 담당한 바나나맛 우유는 부동의 1위 제품이다. 오히려 쉬운 면이 있지 않았나?

▲ 바나나맛 우유는 기성세대 덕분에 매출은 높았지만 세대가 내려오면서 가치가 희석되는 상황이었다. 바나나맛 우유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목욕탕, 기차여행 등 '추억'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시대는 변했다. 우리도 변해야 했다.

-그렇다면 바나나맛 우유는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가?

▲ 맛과 포장, 그리고 제품의 색은 달라지지 않았다. 앞으로도 바꾸지 않을 것이다. 이 세 가지는 바나나맛 우유가 지켜야 할 정체성이다. 잘 보면 진짜 달라지는 것은 '고객'이다. 그에 맞춰 고객과 커뮤니케이션을 달리 하는 것이 바나나맛 우유 마케팅의 본질이다. 개인의 취향과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다양해졌다. 이에 맞춰 세대 타게팅을 펼치는 것이 최근 바나나맛 우유의 마케팅이다.

-지난 2016년 이후 바나나맛 우유를 두고 정말 다양한 마케팅이 펼쳐지고 있다. 큰 조직에서 어떻게 이런 의사결정과 실행이 가능했나?

▲ 2015년에 조직에 큰 변화가 있었다. 마케팅은 3개의 '실'이 각 분야별로 구분된 5개의 '팀'으로 바뀌었다. 7~8명의 실 규모는 4명의 팀으로 작아졌다. 기존에는 한 조직이 담당하는 제품의 수가 많았지만 이제는 적다. 조직개편과 함께 의사결정 과정도 짧아졌다. 기존 실장은 수많은 제품을 다 파악하고 결정을 내려야했지만, 이제 실무자급의 팀장이 곧바로 결정을 내리고 실행에 옮길 수 있다.

-오랫동안 바나나맛 우유의 마케팅을 봐온 경영진들도 최근 마케팅을 이해하고 있나?

▲ 경영진은 나이와 경험이 많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 젊은 감성에 대한 공감은 어려울 수 있다. 2016년에 펼친 다양한 마케팅이 성공하면서 믿음을 샀다. 이후에는 믿고 맡겨주는 분위기다. 담당자의 아이디어는 실무자급에서 실행이 결정된다.

-마케팅 전략을 세우는 비결이 있다면?

▲ 우리는 없는 트렌드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트렌드를 어떻게 우리 브랜드로 '힙'하게 연결시키는냐가 중요하다. 지난해는 먹방, 올해는 소신이 트렌드라고 분석했다. 이에 맞춰 지난해에는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와 바나나맛 우유 레시피를 개발했고 올해는 환경에 대한 소신을 내세웠다.

-마케팅 활동이 성공했는지는 무엇을 보고 판단하는가?

▲ 옛날에는 매출증가가 가장 큰 잣대지만 최근 마케팅의 목적이 모두 다르다. 하나의 기준을 세우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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