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눈에 띄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세계 최대 명품 브랜드인 프랑스 루이비통이 국내 시내면세점에서 철수하기로 했다는 소식입니다. 많은 여행객이 면세점에 들르면 꼭 한 번씩 명품 코너를 둘러보고는 합니다. 명품을 실제 구매하는 이들도 있지만 '아이쇼핑'을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다가 구매로 이어지기도 하고요. 면세점 업체에 명품 브랜드 점포는 매출뿐만 아니라 집객 효과를 위해서도 꼭 필요합니다.
루이비통의 철수 검토, 이유는?
우리나라 면세점들은 중국의 '다이궁(代工)', 즉 보따리상들에 매출을 의존하고 있습니다. 특히 코로나19가 터진 이후 여행객이 급감하면서 이런 경향은 더욱 강해졌습니다. 업계 안팎에서는 우리나라 면세점들이 보따리상의 '공급 기지'로 전락한 것이 루이비통이 철수를 결정하게 된 계기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한마디로 고급 브랜드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한 판단이라는 겁니다.
반론도 있습니다. 사실 루이비통은 한국 시장뿐만 아니라 홍콩 등 전 세계 대부분 국가의 시내면세점에서 철수하기로 했다고 알려졌는데요. 이를 고려하면 루이비통의 경영 전략에 따른 것일 뿐 한국 면세점의 독특한 매출 구조 때문만은 아니라는 지적입니다.
실제로 면세점 업체들에 따르면 다이궁이 한국 면세점에서 대량 구매하는 품목은 대부분 화장품이라고 합니다. 보따리상들이 명품을 사서 되파는 경우는 많지 않기 때문에 루이비통이 '이미지 관리상' 철수한다는 건 수긍이 가지 않는 게 사실입니다.
다만 분명한 점은 있습니다. 한국 시내면세점에서 루이비통 제품의 매출이 크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코로나19로 관광객이 끊겼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겁니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경우 코로나19 이전에도 중국인 단체관광객의 발길이 끊기면서 명품이 판매가 전반적으로 부진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야말로 코로나19는 엎친 데 덮친 격이 된 겁니다.
루이비통도 결국 기업입니다. 이미지 관리도 중요하겠지만 매출이 가장 우선적인 고려 사항일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면세점 업체들에 따르면 루이비통은 아직 구체적인 철수 계획을 밝히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아직 한국 면세 업체들에 공식적으로 알리지도 않았고요.
루이비통이 '철수'를 검토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국내 면세 업체들과 협의를 거쳐야 할 겁니다. 결국 남게 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아무리 명품 브랜드가 '갑'이라고 하지만, 한국 면세 시장은 여전히 큰 시장이니까요.
코로나19 이후도 문제…회복 가능할까
다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한국 면세점 산업의 위상이 달라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습니다. 오랜 기간 호황을 누려온 한국 면세점 시장이 중국의 사드 보복과 코로나19 등 잇단 악재로 예전만 못하다는 인식이 확산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루이비통을 비롯한 명품 브랜드들과의 협상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결국 국내 면세점의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는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장기적으로는 관광지로서 한국의 매력이 줄어들 가능성도 큽니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한국을 찾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쇼핑이었기 때문입니다.
중국의 면세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는 점도 걱정입니다. 중국은 그간 우리나라 면세점 시장이 성장하는 데 가장 큰 도움이 된 국가입니다. 보따리상뿐만 아니라 단체 관광객들이 면세 쇼핑을 하러 한국에 많이 왔던 것이 사실입니다.
중국은 자국의 해외 소비를 내수를 돌리기 위한 방안의 일환으로 면세 시장을 전략적으로 키우고 있습니다. 특히 휴양지로 유명한 하이난 지역을 대대적으로 육성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지난해 7월부터 하이난에서 면세 한도를 1인당 10만위안으로 3배 상향했습니다. 또 자국민에게는 하이난 방문 후 180일 동안 온라인으로 면세품을 살 수 있도록 했습니다.
한 면세점 업체 관계자는 "중국이 코로나 19 시대를 오히려 기회로 만들고 있다"며 "오랜 고민이었던 해외 소비를 내수로 돌리는 데 총력을 기울이는 모습"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실제로 지난해 중국의 면세 산업은 급성장했습니다. 영국 무디 데이빗 리포트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면세 시장에서 중국면세점그룹(CDFG)이 매출 기준으로 1위를 기록했습니다. 2019년 4위에서 세 계단이나 올라섰습니다. 국내 선두 업체인 롯데면세점의 경우 2위 자리를 유지했고요. 전년도 1위였던 스위스 듀프리는 코로나19 등의 영향으로 4위로 내려앉았습니다.
중국 면세 시장이 커지면 브랜드들에 대한 협상력이 높아져 가격경쟁력을 갖출 수 있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중국 보따리상이나 단체 관광객이 굳이 쇼핑을 하러 우리나라에 올 이유도 줄어들 겁니다. 코로나19 사태가 종식된 이후에도 국내 면세 산업이 예전 같은 호황을 맞지 못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국내 면세점 업체들은 이런 이유로 정부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지난해까지 한시적으로 허용했던 '제3자 국외반송'을 다시 도입하거나 면세 구매 한도를 늘려주는 등의 방안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업체들은 코로나 19 사태가 완전히 종식될 때까지만이라도 과감한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매출 규모를 어느 정도 유지해야 코로나 이후에도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또 다른 면세점 업체 관계자는 "코로나19가 끝나고 여행이 자유로워지면 국내 면세 시장이 다시 살아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면서 "다만 그 전에 중국 등에 주도권을 뺏길 우려가 있는만큼 우선 급한 불만 꺼달라는 것"이라고 하소연했습니다.
물론 정부로서는 개별 사기업들을 일일이 도와줄 수는 없는 노릇일 겁니다. 하지만 면세점은 국내 관광 산업 활성화를 위해서 전략적으로 키워야 하는 산업인 것도 사실입니다. 정부와 업체들이 머리를 맞대고 하루빨리 해결책을 찾아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