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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년 만에 '구매한도 폐지'에도 못 웃는 면세점

  • 2021.12.23(목) 06:40

낡은 규제 사라졌지만 '면세한도' 7년 제자리
"OECD 평균 맞춰" vs "시장 경쟁 고려해야"
업계 "산업 발전 이끌 실질적 지원책 절실"

/그래픽=비즈니스워치

코로나19로 고사 위기에 처한 면세점산업의 숨통이 다소나마 트였다. 무려 43년만에 '내국인 면세 구매한도 제한 규제(구매한도 제한)가 폐지되며 업계에서는 환영하는 반응이 많다. 명품 등 고가 품목을 자유롭게 판매할 수 있게 되면서 이를 통한 시장 활성화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조치가 '반쪽짜리'라는 비판도 나온다. 600달러(71만원) 수준인 '면세한도'가 그대로 유지돼서다. 정부는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평균과 조세 형평성을 고려한 정책이라고 밝혔다. 반면 업계는 글로벌 경쟁 국가인 미국, 중국 등과 비교해야 한다고 반박한다. 향후 면세산업 경쟁력 유지에 필요한 실질적 지원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43년만에 풀린 빗장

기획재정부는 지난 20일 '2022년 경제정책방향'에서 내년 3월부터 면세점 구매한도 제한을 풀기로 했다. 구매한도 제한은 외화 유출 및 과소비 방지를 이유로 1979년 도입됐다. 당시 500달러였던 구매한도는 1995년 2000달러, 2006년 3000달러로 늘어났다. 현재는 2019년 결정된 5000달러가 한도로 적용되고 있다.

구매한도 제한은 국내 면세산업의 발전을 가로막는 규제로 꼽혀왔다. 내국인 면세 구매 총액을 제한하는 국가는 우리나라가 유일했다. 더불어 국민 소득 증가에 비해 한도 상향도 더뎠다. 시장도 악영향을 받았다. 고가 품목에 대한 내국인 쇼핑 수요가 구매한도가 없는 외국과 백화점으로 쏠렸다. 업계 역시 구매한도를 이유로 가격이 다소 낮은 화장품·건강식품 등에 마케팅 역량을 집중해야 했다.

구매한도 제한 폐지는 면세점에게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래픽=유상연 기자 prtsy201@

고광효 기획재정부 조세총괄정책관은 "그간 낮은 구매한도 때문에 고가품을 해외에서 구매할 수밖에 없었던 문제를 개선했다. 해외 소비를 국내로 전환함으로써 면세업계의 운영 활성화를 기대한다"며 "고가품의 해외 현금 구매시 적발·관리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국내 면세점에서 소비가 촉진된다면 세수 확보 절차도 수월해질 것"이라고 평가했다.

업계에서는 이번 조치를 환영하는 반응이 많다. 코로나19에 따른 시장 위축을 조금이나마 해소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평가다. 구매한도가 폐지되며 고가품의 내국인 대상 마케팅이 가능해졌다. 혼수 등 목돈이 들어가는 구매 수요의 일정 부분도 면세점이 흡수할 수 있다. 상품의 판매·매입 순환도 활발해져 재고 관리의 효율성도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 시장 규모가 커지면서 고용활성화 효과 등도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는 예상이다.

형평성인가, 산업 경쟁력인가

다만 아쉬운 목소리도 나온다. 면세점과 해외 구매 품목에 대한 면세한도가 증액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정부는 2014년부터 1인당 600달러(약 72만원)의 면세한도를 적용하고 있다. 2018년 입국장면세점 도입 시 증액이 논의됐지만 불발됐다. 구매한도만 늘었을 뿐, 세 부담은 전혀 완화되지 않은 셈이다. 때문에 내국인의 면세점 소비 진작 효과가 기대보다 크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다.

정부는 OECD 면세한도 평균을 고려했다는 입장이다. OECD 국가의 평균 면세한도는 500달러(약 60만원) 수준으로 우리나라보다 낮다. 정부는 해외여행을 가기 어려운 국민과의 형평성도 고려했다고 강조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은 "일각에서 면세 한도에도 변화를 줘야 한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전세계적 면세한도 등을 고려해 현행 600달러를 유지키로 했다"고 밝혔다.

국내 면세한도는 OECD 평균보다 높지만, 경쟁 국가 대비 낮다. /그래픽=유상연 기자 prtsy201@

업계의 입장은 다르다. 시장 경쟁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면세산업 경쟁국들의 면세한도는 우리나라에 비해 높다. 미국과 중국은 원화 기준 약 95만원, 일본은 약 210만원의 면세한도를 적용한다. 특히 중국은 내수진작·외화유출 방지를 목표로 면세산업을 지원하고 있다. 지난해 7월 하이난 면세특구의 면세한도를 원화 기준 1871만원까지 늘렸다. 하이난을 방문한 내국인이 이후 6개월간 온라인으로 면세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하기도 했다.

파격적 조치의 효과는 곧바로 나타났다. 면세한도 증액 후 한달간 하이난 면세점을 찾은 여행객은 코로나19 이전보다도 43%나 늘었다. 같은 기간 1인당 구매액은 두배 넘게 증가했다. 이에 힘입어 중국 국영면세품그룹(CDFG)는 지난해 전년 대비 8.8% 늘어난 8조8882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전세계 면세점에서 유일하게 매출이 늘었다. 그 결과 롯데·신라 등 국내 업체를 제치고 글로벌 1위 자리에 올랐다. 면세한도 증액에 대한 요구가 꾸준히 나오는 이유다.

경쟁 이제부터…'실질적 지원' 필요

업계에서는 산업 경쟁력 육성을 위한 실질적 지원을 요구하고 있다. 하이난의 성장을 기점으로 시작될 중국과의 경쟁에서 불리해질 수 있다는 불안감에서다. 실제로 중국 면세산업 성장은 이미 국내 면세시장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최근 국내 면세점이 중국인 보따리상(따이공)에게 지급하는 수수료 비중은 역대 최대 수준인 매출의 30% 이상으로 치솟았다. 때문에 면세점들은 상반기 매출 회복세에도 저조한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이런 '내실 저하'는 코로나19와 강한 국내 규제의 결과다. 코로나19로 해외여행길이 막히며 면세점 매출 대부분이 따이공에게서 나오고 있다. 면세점은 어떻게든 상품을 팔아야 한다. 소진하지 못한 재고가 곧 손실이어서다. 하지만 중국에 비해 국내 면세산업의 규제 강도가 높다. 게다가 따이공에게는 하이난이라는 대안이 있다. 자연스럽게 더 많은 수수료를 지급해서라도 따이공을 유인하는 출혈경쟁이 펼쳐질 수밖에 없다.

중국 면세산업의 급성장은 국내 면세산업의 큰 위협이다. /그래픽=유상연 기자 prtsy201@

물론 따이공 수수료는 코로나19 이후 정상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도 중국 의존도를 낮추려 노력하고 있다. 롯데면세점은 해외 6개국, 12개 시내면세점을 운영중이다. 신라면세점은 하이요우면세점과 협약을 맻고 하이난에 직접 진출했다. 하지만 단기간 내 사업 구조를 바꾸기는 어렵다. 향후 국내 면세산업의 중국 대비 우위도 향후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면세한도 상향, 외국인 온라인 역직구 허용 등 정책적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구매금액 한도 등 시대착오적 규제를 없앤 것은 다행이지만, 산업 경쟁력 제고를 위한 지원책은 아직 마련되지 않은 점이 아쉽다. 이번 조치에도 무착륙 비행 시행 시기 연장 등 업계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우리나라 면세산업이 경쟁하고 있는 국가와 비교해 실질적 지원책을 마련하고, 면세산업 매출 구조가 변할 때까지 '버틸 힘'을 만들어 줘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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