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의 출점 경쟁을 막아왔던 편의점 자율규약이 연말 종료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편의점 본사들과 자율규약 연장 협의에 착수했다. 업계에서도 큰 틀에서의 공감대는 이뤘다. 다만 퀵커머스 시장 경쟁이 본격화 되고 있는 점이 변수다. 더불어 공격적인 출점으로 '규모의 경제' 도달을 눈앞에 둔 이마트24의 움직임도 주목된다.
자율규약 3년의 '명암'은
공정위는 최근 편의점산업협회 및 가맹본부들과 비공개 간담회를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 오는 12월 만료를 앞둔 자율규약 연장에 대한 전반적 의견 수렴이 이뤄졌다. 자율규약은 편의점 가맹점주 경영 여건 개선을 위해 2018년 12월 마련됐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편의점 과밀화 해소 대책을 지시해 만들어진 '정책적 과제'다.
이에 자율규약은 근접 출점을 제한하는 것을 골자로 구성됐다. 대다수 지자체가 50m~100m로 정하고 있는 담배 판매소간 지정 거리를 기준으로 편의점 출점을 막았다. 편의점업계는 자율규약을 최대한 준수해 왔다. 실제로 자율규약이 시행된 2019년 1분기 편의점 전체 점포의 순증률은 전년 대비 36% 줄어들기도 했다.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다. 개점을 희망하는 예비점주가 나타나더라도 적절한 입지를 찾지 못해 개점하지 못했다. 현행법상 담배 판매권을 양도할 수도 없어 기존 점포를 옮길 경우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신규 출점은 제한되지만 브랜드 전환 출점이 가능한 점도 문제였다. 특정 업체와 계약이 만료되는 '자유계약(FA) 점포'를 유치하기 위한 출혈 경쟁이 치열해졌다.
모호한 기준에 따른 혼란도 있었다. 지난해 경기 고양시의 한 아파트 단지에는 CU·GS25·세븐일레븐·이마트24 등이 총 7개 점포를 냈다. 이 중 한 점포가 담배 판매소간 제한거리인 50m 이내에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하지만 측정 방식을 다르게 하자 50m 바깥에 점포가 있는 것으로 나타나 분쟁이 이어지고 있다. 타 업종과의 '하이브리드 점포' 등이 편의점으로 분류되지 않아 근접 출점이 가능해지는 등 한계도 드러났다.
'변수'로 떠오른 퀵커머스
자율규약은 CU·GS25·세븐일레븐·이마트24·미니스톱·씨스페이스 등 참여 기업 사이의 합의만 이뤄지면 연장될 수 있다. 이들은 큰 틀에서 자율규약을 연장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자율규약 체결 당시에 비해 시장 환경이 크게 바뀌어 일부 조항을 수정할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온다. 이 경우 공정위에 재심사를 받아야 한다.
가장 큰 변수는 최근 급성장하고 있는 퀵커머스 시장이다. 퀵커머스는 소규모 근거리 물류센터를 거점으로 빠른 배송을 제공한다. 배달의민족·요기요 등 주요 배달앱이 마트 서비스를 제공하며 시장이 확대됐다. 아직 절대적인 규모는 작지만 오는 2025년 5조원 규모까지 성장할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온다.
퀵커머스는 다수의 소규모 물류센터를 기반으로 운영된다. 때문에 편의점업계의 신사업으로 각광받고 있다. 전국 곳곳의 점포를 물류센터로 활용할 수 있어서다. 퀵커머스에 가장 적극적인 곳은 GS25다. GS25 운영사 GS리테일은 메쉬코리아·요기요의 지분을 잇따라 인수했다. 배달앱을 통해 '판로'를 확보하고 배달대행업체를 통해 '배송역량'을 얻겠다는 전략이다.
경쟁사의 퀵커머스 참전도 활발하다. CU는 최근 멤버십 앱 '포켓CU'에서 '무료배송' 전략을 꺼내들었다. 간편식은 물론 양곡·채소·과일·생필품 등 대부분 상품을 배송 대상으로 확대했다. 세븐일레븐·이마트24도 요기요·카카오톡·위메프오 등과 손잡으며 관련 역량 확대에 주력하고 있다. 편의점이 퀵커머스 사업을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점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출점을 최대한 제한하는 현행 자율규약이 다소 수정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캐스팅보트는 이마트24에
자율규약 연장의 '캐스팅보트'를 쥔 곳은 이마트24다. 이마트24는 지난 2018년 자율규약 체결 당시에도 난색을 표한 바 있다. 후발주자로서 공격적 인시장 확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마트24는 자율규약 체결 이전까지 점포를 연평균 30% 이상 늘려 왔다. 하지만 자율규약 체결 이후 성장세가 20% 미만으로 줄었다.
특히 이마트24는 '규모의 경제'를 눈앞에 두고 있다. 이마트24는 점포 수가 2600여개였던 2017년 517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하지만 5000점을 돌파한 지난해 영업손실은 218억원까지 줄었다. 5500개까지 점포를 늘린 상반기에는 적자 폭을 45억원까지 줄였다. 조금만 더 점포를 늘리면 흑자 전환도 기대해 볼 수 있다. 여기에 퀵커머스 사업 경쟁력도 확보할 수 있다. 이마트24 입장에서는 자율규약 연장이 달갑지 않다.
다만 이마트24가 자율규약 연장을 거절할 가능성은 높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자율규약은 3년 동안 편의점 시장의 '안전장치'로 자리잡았다. 더군다나 이마트24는 '상생'을 가치로 내세우고 있다. 가맹비 대신 매출 로열티를 받고, 24시간 영업을 강제하지 않고 있는 점이 대표적이다. 이마트24는 이 전략을 기반으로 FA 점주 유치 경쟁에서도 성과를 내고 있다. 이마트24가 성장 속도를 조금 높이자고 잘 쌓아둔 '이미지'를 무너뜨리는 선택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자율규약이 3년간 시행되면서 어느 정도 시장의 ‘상식’으로 정착한 만큼, 참여했던 기업이 발을 빼는 등 극단적 상황은 오지 않을 것"이라며 "시장 상황이 3년 사이 많이 바뀐 것도 사실인 만큼 일부 규정을 수정하는 정도의 선에서 협의가 이뤄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